제26회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에서 부천만화대상 수상자 대담이 진행됐다. 지난 17일 경기 부천 만화비즈니스센터 5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요나단의 목소리』로 신인상을 수상한 정해나 작가가 경일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원현재 교수,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쓴 박상영 소설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정해나 작가는 2018년 창작자 오픈 플랫폼 ‘딜리헙’에서 『요나단의 목소리』 비정기 연재를 시작했다. 3년간의 연재를 마칠 즈음인 2021년, 만화 독립 출판 지원사업에 선정됐고 텀블벅에서 단행본 출간 펀딩을 시작했다.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펀딩 목표액의 1,740%를 달성하며 그해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연재 초기에는 거친 스케치 같은 작화였지만,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수채화 채색을 입혔다.
정해나 작가는 『요나단의 목소리』를 그리기 시작하는 데에는 자신의 성장 배경이 바탕이 됐다고 했다. 그는 “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목회자의 자녀가 주인공인 단편 만화를 그렸다. 그러고 나서 제 안에 이 소재에 대해 더 이상 남아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아직 이 종교 사회에 대해서 할 얘기가 남아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일요일 오전에 교회에 안 가고 스타벅스에 가서 이 만화를 그렸다”라고 말했다.
또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을 한 권 가지고 싶어서 웹툰 방식이 아닌 출판 만화 형식으로 연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해나 작가는 “처음부터 종이책으로 만들 생각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연출 방식을 선택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딜리헙’에서 연재를 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딜리헙이 페이지 뷰어를 제공하는 유일한 오픈 플랫폼이었다”라고 말했다. 원현재 교수는 “저도 출판 만화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처음부터 출판 만화 형식으로 연재하길 잘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웹툰 방식으로 연재가 됐으면 다시 편집하더라도 이 느낌을 살리기가 힘들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박상영 작가는 『요나단의 목소리』의 매력으로 담백함을 꼽았다. 그는 “이 작품은 동치미 같다고 해야 하나, 동치미처럼 슴슴하고 계속 들이키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자극적인 전개가 없이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다 읽게 된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오버하지 않는 점이 좋았다. 그림체가 미니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토리를 다루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슬픔도 과장하지 않고 즐거움도 과장하지 않고 비극이나 사랑에서 오는 감정도 과장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전개해 나가면서도 몰입을 놓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라고 말했다.
『요나단의 목소리』는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는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목회자 아버지를 둔 선우와, 기독교가 아님에도 기독교 학교에 진학한 의영이 룸메이트로 만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 선우는 크리스천 퀴어 청소년이라는 특수한 입장에 놓여있다. 정해나 작가는 “선우처럼 종교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혹은 버리지 못하는 소수자들이 있다. 그런 교차성을 가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극 중에서 관찰자 역할을 맡고 있는 의영은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의영은 선우에게 선우가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선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준다. 선우는 의영에게 “나는 네가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 같아”라고 말한다. 그만큼 의영은 우리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동시에 한없이 선하고 순수하다.
정해나 작가는 다윗과 영원한 우정을 나누는 요나단 같은 친구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 사회는 신이라는 존재를 필두로 모인 집단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 신은 그렇게 개입하지 않는다. 종교 사회에서 사람들이 상처받는 이유는 인간 개개인의 욕심과 몰이해 때문이다. 그 안에서 받은 상처를 신앙으로 치유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종교가 원하는 방향일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성인이라고 부르는 극소수의 사람뿐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과 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인간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정해나 작가는 “많은 독자분들이 ‘주변에 선우 같은 친구가 있다면 나도 그 친구에게 의영이 같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라는 감상평을 남겨주셨다. 의영이 같은 친구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이 만화를 그렸는데 오히려 반대로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고 하시니까 무척 감동적이었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 만화가 ‘내 안에도 그런 마음이 있구나’ 하고 깨닫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