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OF 『도박중독자의 가족』 대담 “도박중독만큼 무서운 건 관계 중독”
BICOF 『도박중독자의 가족』 대담 “도박중독만큼 무서운 건 관계 중독”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3.09.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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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에서 부천만화대상 수상자 대담이 진행됐다. 지난 17일 경기 부천 만화비즈니스센터 5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도박중독자의 가족』으로 대상을 수상한 이하진 작가가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전공 김병수 교수, 연세대학교 미래융합연구원 인공감성지능융합연구센터 센터장 권수영 교수와 함께 관계심리학적으로 본 『도박중독자의 가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7일 경기 부천 만화비즈니스센터 5층 세미나실에서 부천만화대상 대상을 수상한 이하진 작가와의 수상자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만화, 마음을 열다’를 주제로 한국만화박물관 일대에서 진행된 제26회 부천국제만화축제는 17일(일) 프로그램을 끝으로 4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지난 17일 경기 부천 만화비즈니스센터 5층 세미나실에서 『도박중독자의 가족』으로 부천만화대상 대상을 수상한 이하진 작가와의 수상자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부천국제만화축제]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실제 자신의 가족이 겪은 이야기를 명랑만화 그림체로 덤덤하게 풀어나간 작품이다. 만화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평범하게 살다 난생처음 ‘도박중독’이라는 병을 맞닥뜨린다. 주식투자자에서 도박중독자로 변해버린 남편의 셋째 동생을 끝까지 믿고 싶었던 가족들은 ‘공동의존증’(Codependent)에 걸리게 되고, 결국 이들의 삶은 산산이 부서져 내리고 만다.

이하진 작가는 2004년 대원씨아이에서 스토리 작가로 데뷔하여 『팡야』, 『거상』, 『시골 의사 이야기』, 『노녘의 아리아』, 『저주 해제자』 등 작품을 발표했다. 2012년 카카오웹툰에서 <카산드라> 연재를 시작했다가 휴재를 했다. 이후 8년만인 2022년, 카카오 웹툰에 <도박중독자의 가족>으로 돌아왔다. 같은 해에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도박중독자의 가족』 단행본을 출간했다.

김병수 교수는 “지금까지 부천만화대상 대상은 그래픽노블처럼 그림이 뛰어난 작품이나 작가로서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을 때 주어졌다. 그런 면에서 『도박중독자의 가족』의 수상은 의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울컥했다. 감동과 여운이 지금도 남아있다”라고 운을 뗐다.

이하진 작가는 “저도 이렇게 될지 정말 몰랐다. 사실 집안 사정 때문에 휴재를 너무 오랫동안 해서 카카오웹툰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다.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원래 블로그에서 에세이 형식으로 연재하던 작품이다. 만화를 다시 그리기 전 독자분들께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알려드리고, 손을 풀기 위해 그린 작품인데 반응이 좋아 카카오 웹툰에서 정식으로 연재를 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지난달 14일 오후 경기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부천만화대상 수상작 展에서 관람객들이 이하진 작가의 『도박중독자의 가족』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부천만화대상 수상작 展’에서 관람객들이 이하진 작가의 ‘도박중독자의 가족’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부천국제만화축제]

권수영 교수는 “이 만화는 ‘공동의존증’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 병이 어떤 병인지 잘 표현된다. 만화의 첫 부분에 ‘공동의존증’은 ‘도박중독자의 가족이 겪는 병’이라고 간단히 설명되지만, 사실 공동의존증은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개념이다. 저도 미국 유학 시절 처음 접했다. 그런데 이 공동의존증을 잘 설명하는 말이 있다. 바로 ‘관계중독’이다. 건강한 관계가 아닌, 병리적인 관계에 중독된 상태를 뜻한다. 한국은 관계와 참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관계중독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하진 작가는 작품에서 ‘나는 지극히 한국식으로 자라났다’고 고백한다. 권수영 교수는 “한국에서는 일단 어떤 관계가 맺어지면 그 관계에서 나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시월드’라고 불리는 시댁살이에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다행히 주인공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 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심리치료에서 치유된다는 것은 내 목소리를 찾는 것이다. 설득되든 안 되든 내가 느낀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내 주장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 치유의 첫 단계이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며느리가 되었던 거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경기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로비에서 열린 부천국제만화축제 개막식에서 ㅇ도박 중독자의 가족ㅇ 이하진 작가가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지난 15일 경기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로비에서 열린 부천국제만화축제 개막식에서 『도박중독자의 가족』 이하진 작가가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사진=부천국제만화축제]

권수영 교수는 도박중독자와 도박중독자의 가족 모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화에서 전문가는 주인공에게 ‘당신이 잘하는 게 뭐냐,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 주인공이 ‘만화 그리는 일’이라고 답하자 ‘다시 시작해 보라’고 조언하는데 참 좋은 제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짚었다. 실제로 이하진 작가는 힘든 상황에서 만화 그리는 일이 위안이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실 이 만화는 살려고 그린 만화다. 만화 작업이 힘들고 고되다고 하지만 오히려 힘들 때마다 마음의 안전기지를 찾듯, 만화를 그리게 되는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귀여운 그림과 대비되는 살벌한 이야기로 픽션보다 더한 현실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김병수 교수는 “만화의 마지막에 정신이 확 드는 부분이 나온다. 보통 남성들이 도박중독을 겪으면 온 가족이 일어난다. 온 가족의 일이 되고 모든 가족 구성원이 연루된다. 가족들은 그 남성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이 도박 중독자인 경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이하진 작가는 망설임 없이 반문했다. “반대로 제가 도박중독자였다면 어떻게 됐을지 바로 상상이 되지 않으세요?”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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