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봐르, 철학과 사랑에 빠지다
보봐르, 철학과 사랑에 빠지다
  • 신금자
  • 승인 2008.04.2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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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드 보봐르

▲ 신금자[수필가·본지 편집위원]     ©독서신문
생각의 탄생


 여섯 살 때부터 시몬느 드 보봐르의 꿈은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21세기가 기억하는 보봐르는 어떤가. 샤르트르와 함께 20세기 중반, 세계를 풍미했던 실존주의 철학의 큰 별로 자리매김했다. 실로 그녀의 철학과 문학의 지적 편력을 헤아리기에도 숨이 차다. 애당초 사람들은 그녀의 삶이 정신이상자처럼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무릇, 여자이기에 언제나 그 여성성이 복잡하게 얽혀 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녀는 철학적 신념으로 삶을 이끌어나갔다. 이를테면 그녀는 소설가와 극작가로 진로를 열며 그에 버금가는 열린 논객이 되었다. 더 나아가 여성문제와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는 맹렬한 운동권 지식인을 자처했다. 
 
 
계약결혼

 보봐르는 1929년 샤르트르를 만났다. 두 사람은 꽤 까다로운 철학교수시험을 통과하고 2차 시험 준비를 하면서 만나 계약결혼을 했다. 이 두 사람의 관계 또한 충분히 세상 사람들에게 흥밋거리였다.

  “나의 생애에는 하나의 ‘필연적인 사랑’이 존재하며 그것은 바로 보봐르와의 사랑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우연적인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보봐르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샤르트르가 보봐르에게 동의를 구한 결혼계약서다. 곧 일부일처제를 거부하며 두 사람 이외의 다른 사람과도 성적인 관계를 열어두겠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평자들은 그녀의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 그가 제시한 계약서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다.
 
 실제 샤르트르가 갖고 있는 ‘결혼함으로 인한 구속에 대한 두려움’을 대강 눈치 챌 수 있다. 그런데 그녀는 그를 떠나보낼 용기가 없었다. 그 곁에 머무르고 싶었으니 그 자유를 얼마간 보장해 주어야 했다는 말이다. 대신 그녀가 요구했을지도 모를 똑같은 자유가 그녀에게도 주어졌다.
 
 그렇더라도 이를 평생 지키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들은 놀랍게도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허름한 호텔 아래위층을 전전하면서 결코 결혼도 동거도 가사일도 아이를 낳은 적도 없다. 그러면서 평생 계약의 끈을 놓지 않고 인생의 반려자로 살았다.
 

그녀의 속정

 둘은 파리 몽파르나스 거리 ‘생제르맹 데 프레’ 다방에서 거의 시간을 보냈다. 그 곳에서 늘 토론하고 글을 쓰고, 서로의 원고를 읽어주고 밥을 시켜먹으며 사랑을 하였다. 분명한 것은 샤르트르의 원고는 그녀를 거치지 않고 책을 낸 일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샤르트르는 그녀를 믿었고 그녀는 그를 진정으로 도우며 함께 컸다. 그러다 그녀나 그의 주변에 가까운 사람이 생기면 초조한 심정을 드러내기보다 쾌히 연인으로 인정해주고 가족처럼 모여 지내기도 했다. 그와 그녀의 이런 속정은 요란하지 않게 내내 이어졌다.
 
 다만 두 사람의 끄나풀은 그 누구도 끊지 못했다. 마음이 초조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원고를 정리하고 책을 쓰는 일과  철학과 신념이 다른 일로도, 심지어 연인과 함께 서로를 찾기도 했다. 한번은 그녀가 미국에서 사귄 친구랑 브라질을 여행하며 밀월을 즐기고 있을 때이다.
 
 샤르트르가 책을 써야 한다고 보봐르에게 전화를 하자 그녀는 바로 그를 버려두고 샤르트르에게 달려왔다. 그를 끔찍하게 사랑하였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샤르트르의 원고와 자료 찾는 일을 도우며 같이 지냈다. 그 연인은 그들의 작업실에 찾아와 차라리 결혼을 해버리자고 졸랐다.

 하긴, 그들은 서로 우발적인 애정행각을 이해한다지만 제3자는 어째야 되는가. 미리 계약결혼을 했다고 밝혔지만 트러블이 전혀 없을 수가 없다. 그 트러블들을 포함하여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보봐르는 소설을 썼다. 집필이 보봐르의 가장 좋은 여행이고 피난처였다. 그 피난처에서 시차를 둔 이기적인 삶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녀가 쓴 대부분의 책이 그렇게 씌어졌다.
 
 
내 가장 소중한 작품은 내 인생이다

 그랬다. 그녀의 작품이 곧 행동이다. 보봐르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법은 행위의 한 형태인 대화다. 그녀는 작품 ‘제2의 성’과 ‘만다린’에서 세밀하고도 깊게 여성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실제 여성들의 역할, 삶의 단계에 따른 특성들 그리고 여성의 성적인 문제까지 괴기스럽게 탐사하였다.
 
 긍정적인 여주인공이 없다. 원래 이 사회는 남성이 만들었다. 때문에 체계적이고 권위주의적 동물인 남성이 만들어낸 사회가 유동적이며 감성이 자유로운 여성에게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보봐르가 뽑아든 핵심 내용은 “사람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였다. 이 구절은 지금껏 그녀를 대변한다. 그리고 초기 여성운동을 펼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보봐르와 샤르트르는 자유롭고 열린 관계를 지향했기에 그녀는 연인 알그렌, 란츠만, 그리고 실비 르 봉과 같은 여성과도 말년을 허허롭지 않게 보냈다. 그러니 보봐르를 지속적으로 지켜보지 않았다면 편협적인 판단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개개인의 관심분야에 따라서 충분히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 보봐르 자신이 그 어떤 오해도 개의치 않았고 어디까지나 사회적 중재자로서 그 범주를 넘나들었다. 마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는 신념에서 그리 한 것도 같다.
 
 그러다보니 미친 여자 취급은 물론, 페미니즘, 레즈비언, 부도덕한, 그리고 기인으로 묘사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녀는 여자로서 보기 드문 자서전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면서 당당히 말했다. “내 가장 소중한 작품은 내 인생이다.” 라고.
 
 지금쯤 파리 몽파르나스 역 떼제베가 내달린 꽁무니에 마로니에 꽃이 한창이겠다. 낮게 깔린 안개비 탓일까. 샤르트르와 보봐르가 죽치던 다방에 가서 차라도 한잔 마시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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