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와인 연구 권위자 김동준 교수 “와인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먹힙니다”
[명사에게 듣다] 와인 연구 권위자 김동준 교수 “와인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먹힙니다”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7.2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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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책’과 닮았다. 오랜 시간 어두운 골방에서, 홀로 치열하게 성숙되어야 비로소 세상에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 숙명이다. 그래서 와인은 ‘에고’가 강하고 색이 진하다. 에고가 강하고 색이 진할수록 세상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열광하기 시작한다. 그리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열광했고, 이어 미국, 호주가 열광했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이 열광하고 있다.

특히 과거 중장년층이 주로 향유하는 술로만 인식됐던 와인은 이제 2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주류로 자리 잡았다. 국제와인기구(OIV)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와인 소비는 2001년 850리터에서 2021년 4,910리터로 20년 만에 6배나 성장했다. 물론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하면 아직은 그 규모가 작지만, 와인 소비가 점점 줄어드는 유럽과 달리 지속적인 소비 증가세를 보여 세계 와인 업계가 한국 시장을 주목할 정도다.

와인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맛이나 분위기, 적당량 마시면 건강에 유익하다는 속설까지 모두 유혹적이지만,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만큼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프랑스에 본부를 둔 38개국 와인 전문가 단체 세계 와인기사단 총연합(이하 FICB)의 한국 총사령관이자 국내 와인학 최고 권위자인 김동준(53) 영남이공대 호텔‧항공서비스 전공 교수에게 ‘와인 읽는 법’을 물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김동준 교수

Q. ‘와인기사단’이나 ‘총사령관’ 같은 명칭이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할 것 같습니다. FICB라는 단체와 직책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중세 프랑스에서 유래한 와인기사단은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대가 목숨을 바쳐 가며 전투를 하듯이, 포도밭을 지키기 위한 기사들의 단체를 의미합니다. 1855년 와인기사단의 전통을 이어 설립된 FICB는 와인 관련 가장 큰 국제 비영리 조직으로 와인 전문가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고, 2년마다 세계 컨벤션 및 와인 테이스팅 대회를 개최합니다. 한국도 2026년 컨벤션 대회 유치를 목표로 대회 참석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총사령관(그랑 꼬망되르, Grand Commander)은 연합에 속한 38개국의 대표 성격으로 각국에 1명씩 임명되는 영구직입니다. 저는 한국 총사령관으로서 매년 기사 작위식 및 승급식을 진행하며, 국내외 와인 연구와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기사 작위는 총 5단계인데, ‘슈발리에-오피시에-꼬망되르-그랑 오피시에-그랑 꼬망되르’ 순입니다. 한국 와인기사단은 2018년 제1기 기사 작위식을 시작으로 슈발리에 24명, 오피시에 6명, 꼬망되르 1명을 배출했습니다.”

Q. 한국 총사령관이 임명된 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과거 한국은 와인에 대한 전문성이 다소 떨어졌던바 FICB 공식 멤버로 활동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쉐라톤워커힐 호텔 지배인으로 10여년간 일한 경험을 시작으로 꾸준히 와인 실무와 연구에 매진했고, 특히 유럽 와이너리 투어 등 해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7년 핀란드에서 한국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Q. 국내에서는 미개척 분야였던 와인 연구에 매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호텔리어를 시작할 때부터 와인을 접했는데,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산업이 점차 성장하며 와인이 하나의 문화로 부상하는 경향을 포착했습니다. 호텔‧관광 서비스의 다양한 특화 분야 중에서도 와인은 매력적인 매개체입니다. 사람을 연결하고 콘텐츠를 구성하며 비즈니스까지 이어지는 파급효과를 가지니까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러한 힘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Q. 와인 연구라면 주로 어떤 연구를 말하나요.

“와인 연구는 최근 들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주로 와인의 특성과 고객 서비스의 관계에 관한 연구가 많습니다. 호텔, 레스토랑, 바 등에서 와인을 구매한 고객에 대한 것이죠.

저는 세계 최초로 올드 빈티지 와인 디캔팅 및 테이스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대표 논문으로 「프랑스 보르도 5대 샤토 연구: 올드 와인을 중심으로」(관광레저연구), 「올드 와인의 디캔팅 연구: 스페인 와인을 중심으로」(호텔경영학연구) 등이 있습니다.

올드 와인은 오픈 후, 충분한 시간 동안 디캔팅을 해야 합니다. 빈티지에 따라 며칠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시음해 보면 부케(bouquet, 원래 포도에서 나는 향이나 양조 과정에서 발생한 향)와 아로마(aroma, 병 숙성 과정에서 추가된 향)가 전혀 다른 맛을 보여줍니다. 최적기의 와인을 가장 맛있게 마시는 디캔팅 방법을 과학적으로 검증해 공식으로 만들었고, 와인 마케터 및 소비자에게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했습니다.

지역별로는 프랑스의 보르도, 부르고뉴 등 대표 지역 연구를 마쳤고, 현재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인 비교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후 토스카나, 베네토 지역을 연구한 뒤 스페인, 독일 등으로도 연구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2018년 5월 12일 서울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제1회 KOV 한국와인기사단 기사작위식’

Q. 디캔팅 이야기가 나왔는데,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와인을 마실 때 ‘이것만은 꼭 지켜야 한다’ 하는 사항이 있을까요?

“병에서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포도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와인을 오픈해서 바로 마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레드 와인의 경우, 가격이 싼 와인이라도 충분히 공기와 접촉하는 브리딩 시간을 주면 와인의 맛을 한층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최종 조건 두 가지는 와인 잔과 와인을 마시는 장소의 온도입니다. 스파클링, 화이트, 레드, 스위트 등 와인의 종류에 맞는 잔을 선택해서 본래 포도의 풍미를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테이스팅에 적절한 온도는 와인에 따라 다르지만, 고가의 와인은 약간 온도를 높이고, 저가의 와인은 약간 차갑게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마시기 전, 잔을 흔들어 주는 스왈링을 하면서 맛의 변화를 발견하는 재미도 찾아보길 바랍니다.”

Q. 와인을 주제로 한 일본의 베스트셀러 만화 『신의 물방울』에는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만큼 와인은 한식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2019년 세계 와인 테이스팅 대회에서 김치‧불고기 마리아주 콘셉트 와인을 개발해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영천, 영동 등 국내 여러 지역 와인을 블렌딩해 한국 대표 음식인 김치와 불고기에 곁들여 마시기에 적합하도록 개발한 와인인데, 해외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현재 호텔에서 요청한 오마카세 형태의 ‘한식과 올드 빈티지 와인 프로모션’을 준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와인이 매운 음식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스파클링 와인은 김치, 매운탕 등의 음식과도 어울립니다. 힘차고 시원한 기포가 매운맛을 날려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김치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맵지 않은 백김치, 동치미, 보쌈김치, 굴김치도 있지요. 게다가 김치만 먹는 게 아니라, 반찬과 함께 요리를 먹는 것이 한식입니다. 밥상이라는 한상차림과 와인은 최고의 궁합이 될 수 있습니다. 한식은 양념이 강한 음식입니다. 새콤함, 짭조름함, 달콤함이 어우러진 맛에 와인은 풍미를 더해 줍니다.

예를 들어 독일 리즐링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해물파전, 제육볶음, 잡채, 조기구이, 계란말이 등과 어울립니다. 리즐링의 향긋함, 산미, 바디, 구조감이 한식 및 아시안 요리와 잘 조화를 이룹니다. 삼겹살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산지오베제 포도로 만든 레드 와인이 어울립니다. 부드러운 베리향과 적절한 산미가 감칠맛을 극대화시켜 줍니다.”

Q.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기존에 와인을 즐기지 않았던 젊은 세대도 와인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와인의 어떤 매력이 젊은 세대의 취향을 사로잡았다고 보시나요?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 소주에 비해 부드럽고, 종류가 많아 음식에 따라 다른 와인을 찾아가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스위트한 와인, 드라이한 와인, 탄닌, 산미, 바디, 복잡성 등 와인의 다양한 속성을 이야기하며 추억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그저 한 잔의 술이 아니라 공감하는 문화 공간을 만드는 매개체입니다. 모든 와인은 제각기 다른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 용기, 인내, 자존심이 담긴 와인을 마시며 역사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Q. 반면 와인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에서는 와인 소비가 줄어든다는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와인을 포함한 주류 문화의 세계적이고 장기적인 추세라고 봅니다. 건강에 대한 인식과 트렌드 변화가 수요와 공급의 경제 논리,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과 맞물리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서유럽 각국은 철저한 분석과 새로운 마케팅으로 다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겁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구세계의 와인 소비 감소는 우리에겐 기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문화 트렌드 변화에 따라 한국 등 다른 국가의 주류 문화가 요리와 함께 전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국내 와인 소비 행태에 대해 전문가로서 조언하고 싶은 부분도 있을 듯합니다.

“한국 와인 시장은 아직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초보 단계에 있습니다. 와인을 자주 접하고, 모임을 하면서 함께 공유하는 행복감이 중요합니다. 수많은 와인을 전부 마실 수는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찾아가며 음식과 페어링하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와인을 시작으로 미국, 호주, 칠레, 남아공 와인을 마셔 보세요. 저가에서 고가로, 스위트한 맛에서 드라이한 맛으로 서서히 변화를 주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다음 포트 와인, 귀부 와인, 슈퍼 투스칸, 보르도 5대 샤토와 같은 지식으로 시선을 넓혀 가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길 바랍니다.”

Q. 와인을 더 깊이 있게 즐기고 싶은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 주세요.

“서적은 다양하게 있지만 와인은 문화라는 관점에서, 초보자에게 장홍의 『와인 인문학 산책』을 추천합니다. 와인을 역사적으로 재미있게 소개한 내용입니다.”

Q. 와인 실무와 관련된 서적을 집필하기도 하셨는데, 추후 일반인 독자를 대상으로 와인 관련 서적을 집필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한국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주를 다룬 책을 쓸 예정입니다. 앞서 한식과 어울리는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대구의 향토 음식 ‘뭉티기’는 한우 생고기를 뭉텅뭉텅 썰어서 다진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장에 곁들여 먹는 음식입니다. ‘뭉티기’는 피노누아 포도로 만든 부드럽고 향기로운 레드 와인과 가장 잘 어울립니다. 이처럼 한식 중에서도 지역별 대표 음식을 중심으로 어울리는 와인을 매칭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올드 빈티지 와인에 대한 지식 등 인문학적 내용도 담고자 합니다.”

Q. 앞으로 한국 와인 시장에 어떤 형태로 기여하고 싶으신가요?

“와인을 진정으로 맛있게 시음하는 것이 유통과 소비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에 각국 와인들을 직접 시음하고 설명하는 영상을 올리는 등 대중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와인 애호가들에게 쉽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와인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어울리는 음식뿐만 아니라 모임의 성격, 기념일, 추억에 따라 와인을 매칭시켜 전국적인 동호회를 조직하면 어떨까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와인기사단 한국 총사령관으로서 와인 연구와 국제 홍보 활동도 이어 나갈 것입니다. 한국 와인기사단은 2026년 FICB 컨벤션 대회 한국 유치를 위해 2024년 2월 프랑스 총회, 5월 헝가리 대회에 참석합니다. 많은 응원 바랍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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