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독서] 봉준호·박찬욱, 최고의 감독 뒤에는 ‘책’이 있었다
[리더의 독서] 봉준호·박찬욱, 최고의 감독 뒤에는 ‘책’이 있었다
  • 장서진 기자
  • 승인 2023.05.2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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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영화 <의리적 구토>를 시작으로 한국영화가 탄생한 지 104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실 국내에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상승한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오락거리가 없던 시기, 단체관람 영화는 관객들에게 결속력을 만들어줬다. 아울러 고전영화 특유의 신파성은 관객들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전하면서 영화는 점차 사랑받기 시작했다. 특히 1950~60년대는 한국영화의 황금기라고도 불리면서 <자유부인>, <오발탄>, <마부> 등 한국의 대표적 고전영화를 쏟아내기도 했다.

황금기가 지속되면 좋았겠지만, 1970년대 정부의 검열이 강화되면서 한국영화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많은 영화들이 정부의 탄압과 법령으로 검열되고, 삭제되며, 상영조차 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영화가 <바보들의 전쟁>. 영화는 당시 사회를 풍자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담겨 논란이 됐다. 수차례 검열과 삭제를 통해서 겨우 상영될 수 있었지만, 감독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 1980년대 5차 개정된 영화법으로 영화 제작이 자유화가 되면서 다시 한번 한국영화의 황금기가 시작됐고, 이후 임권택의 <씨받이>, 이창동의 <오아시스>,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등 시대별 다양한 영화들이 나오면서 점차 한국영화는 해외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탄생했다. 국제 영화제의 메카라 불리며, 거대한 필름마켓을 자랑하는 칸 영화제. 무려 그 칸 영화제에서 당당하게 한국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차지했다. 이뿐이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한국영화 최초로 6개 부분에 후보로 오르면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과거 봉준호 감독이 로컬 시상식이라 비난했던 곳에서 이룬 쾌거였다.

봉준호 감독뿐만이 아니다. 박찬욱 감독 또한 작년 <헤어질 결심>을 통해 제75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헤친놈(헤어질결심에미친놈)’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영화의 파급력은 엄청났고, 국내외로 수많은 팬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이 하나 있다.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둘다 ‘책’을 가까이 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책은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마법 같은 도구며, 영화는 상상력 없이 만들어질 수 없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EBS 독서 캠페인 ‘책갈피’를 통해 책을 “우주 공간 혹은 무인도에 표류해도 몸에 꼭 지니고 가고 싶은 단 하나”라고 표현할 정도로 책에 대한 사랑을 보여왔다. 그래서일까,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책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많다. <살인의 추억>은 『프롬 헬』이라는 그래픽 노블에서 영감을 받았고, <설국열차>와 곧 개봉할 <미키7> 또한 원작 책이 존재한다. 아울러 그는 모든 작품의 각본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평소의 독서 습관이 만든 결과이다. 그에게 책, 그리고 글이란 영화의 원천이다.

그는 앞서 인터뷰를 통해 관객들에게 두 권의 책을 추천했다. 비행 청소년들의 모습으로 사회의 어두운 내면을 보여주는 『나쁜 친구』(창비)와 청소년 또래 특유의 음울한 고민과 비뚤어진 망상을 담은 『블랙홀』(비즈앤비즈). 두 책은 청소년이 학교에서 겪는 차별적 문제를 기반으로 사회 전반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학교는 사회에서 가장 먼저 계급이 나뉘는 곳이다. 외모, 성적, 재력 등으로 계급이 나눠지는 시기. 봉준호 감독은 이런 계급사회를 언제나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설국열차>는 열차 앞칸과 뒤 칸, <기생충>은 지상과 지하로 계급사회를 비유했던 것처럼 그의 작품은 언제나 계급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결국 감독의 영화 속 주제 의식은 책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박찬욱 감독 또한 『박찬욱의 몽타주』(마음산책)라는 저서를 통해 책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그의 독서는 직업병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 계속해서 영화화 가능성을 따져보고, 소설 원작 영화를 볼 때는 책이 어떤식으로 영화화 됐는지 연구한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 또한 책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올드보이>, <공동경비구역 JSA>, <아가씨> 등 많은 영화들이 책을 기반으로 각색돼 탄생했다.

독서광 박찬욱 감독이 대중에게 추천한 도서만 100권 이상.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사브리나』(아르테)이다. 사라진 여자친구의 행방을 찾는 그래픽 노블로, 단순한 그림체와 반대로 인물들의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은 박찬욱의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헤어질 결심>과 <아가씨>. 두 작품은 절제된 인물을 통해 사랑, 욕망 같은 감정을 더욱 격정적으로 그려낸다. 한편 그가 표현하는 감정은 때때로 소설체와 비슷하여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영화를 인상 깊게 본 관객들은 감정을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그의 각본집을 구매하곤 한다. 박 감독의 각본집이 언제나 인기 있는 이유다.

바야흐로 한국영화의 황금시대. 국내외를 걸쳐 한국영화는 사랑받고 있으며, 작품을 만든 감독들에게 관심과 시선이 집중된다. 여기서 하나 기억하자. 우리가 사랑하는 감독들의 손에는 언제나 ‘책’이 있었다는 것을.

[독서신문 장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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