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네게 평화를 주노라: 김종삼, 「민간인」
[시민 시인의 얼굴] 네게 평화를 주노라: 김종삼, 「민간인」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3.05.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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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의 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境界線) 용당포(浦)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嬰兒)를 삼킨 곳.
스무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김종삼, 「민간인(民間人)」

네게 평화를 주노라

우리 문학은 여전히 분단 문학입니다. 분단의 사슬을 끊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휴전 상태이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우리 문화 모두는 분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 문화의 핵심에 분단의 비극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는 김종삼의 자화상이자 우리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표현이 많겠지만 이보다 더 극명한 것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嬰兒)를” 수장시키고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김종삼은 사무쳐 고백합니다.

이 시는 1970년 <현대시학> 11월호에 발표됩니다. 이 시로 김종삼은 현대시학사 주관 제2회 ‘작품상’을 받습니다. 분단문학의 대표 격인 이 시의 백미는 전쟁과 분단의 실상이 무엇인지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만 죽음 같은 분단의 벽을 허물고 평화를 되찾자는 절규입니다. 시인은 예언자적 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외칩니다. 곧 어둠이 찾아오리니 이제 그만 파국으로 가는 발걸음을 멈추자고 소매 끝을 잡고 매달리고 있습니다. 김종삼이 평화를 선구하였지만 1972년 10월 유신 정권은 분단을 고착화하는 전쟁 선포를 합니다. 그렇게 역사는 악몽에 빠졌습니다.

김종삼은 황해도 은율 출신으로 월남인입니다. 일본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디아스포라이기도 합니다. 남한에서 변변히 인맥을 맺지 못한 주변인입니다. 소수자이기에 그의 시는 타자 되기로 가득합니다. 그의 삶은 전쟁과 분단과 가난으로 점철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음악에 의지해 비극 속에 갇힌 사람들의 목소리를 시에 담아냈습니다. 이 시는 그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몇 마디 말로 우리의 존재 의식을 일순간 불러일으키는 시적 영감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김종삼의 얼굴에는 갓난아기의 울음이 가득합니다. 어떻게 아직도 외면한 채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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