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기획이 안겨주는 선물
인생, 기획이 안겨주는 선물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3.04.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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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현대는 평판의 시대다. 기업 및 정치, 인간도 평가에 따라 성공의 사활이 가늠된다. 기업의 경우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품평에 따라 매출이 좌우되기도 한다. 대통령도 국민의 지지도가 국정 수행 능력 평가의 지표가 되잖은가. 이와 달리 인간은 어느 일면만 보고 섣불리 인격을 가늠해선 안 될 일이다. 그럼에도 한 인간의 됨됨이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어린 시절 성향을 잠시 엿보면 대략 알 수 있단다. 위인전이나 비범한 면모를 지닌 사람들 이야기를 꺼내려면 꼭 어린 시절 이야기가 서두에 등장하는 게 이 때문일 것이다. 이것으로 미뤄봐 ‘싹수가 있다’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성싶다.

필자의 싹수는 과연 어떠했을까? 어린 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여느 아이들과 별다른 점이 없다. 굳이 내세울 게 있다면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점이다. 또 있다. 어렸을 때부터 오지랖이 꽤나 넓었나 보다. 덥수룩한 머리나 너무 길이가 길어서 간수 못하는 반 아이들 머리를 보면 서슴지 않고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잘라주곤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로 기억한다. 시골에서 잠시 학교를 다닌 적 있다. 이때 학교에서 웅변, 글짓기, 노래, 미술 다양한 분야에 드러낸 두각보다는 아이들 머리를 다듬어 주고 입고 있는 해진 옷들을 잘 꿰매주기로 친구들 사이에 유명했다.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할 때다. 줄넘기 안에 둘이 들어가서 하늘 높이 뛰어오를 즈음이다. 명자의 긴 머리가 줄넘기 줄에 말리자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이것을 본 필자는 명자를 나무 그늘로 데려갔다. 그리고 준비물로 집에서 챙겨온 무쇠 가위를 가방에서 꺼냈다. 당시만 하여도 학교 준비물로 대부분 바느질 가위를 갖고 갔었다. 그 가위로 명자의 줄넘기 줄에 말린 머리를 싹둑 잘랐다. 그러나 균형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아예 그 아이의 긴 머리를 단발로 깎아주기 시작했다. 얼마를 자르고 보니 어린 눈에도 모양새가 제법이었다. 머리칼 한 올 삐져나오는 곳 없이 단정하게 머리를 잘 잘랐다.

명자는 긴 머리를 자른 후 어머니한테 혼날 거라며 울먹이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학교 정문 앞에 명자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혹시 명자 머리를 잘라줘서 혼내주려고 그러나?’ 겁이 잔뜩 나서 머뭇거리며 걸음을 옮길 때였다. 명자 어머닌 환하게 웃으며 쑥버무리 떡을 건네주었다. 그리곤, “네가 명자 머리를 예쁘게 잘 잘라줘서 고맙구나. 친구들이랑 나누어 먹으렴”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제야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명자 어머니는 나중에라도 명자 머리가 길면 또 잘라주기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 말을 잊지 않고 가끔 명자 머리를 도맡아 잘라준 기억이 새롭다.

어디 이뿐인가. 그때는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인지라 아이들은 언니나 형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고 다니기 예사였다. 또한 무릎이 해진 바지, 몸에 맞지 않는 치마를 입고 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해 집에서 자투리 옷감을 어머니 몰래 가져와 구멍 난 바지에 덧대어 꿰매주곤 했다. 큰 티셔츠, 치마 등은 길이 및 품을 줄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손을 댄 옷은 신기하게도 몸에 꼭 맞아 아이들이 몹시 기뻐했다.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새롭게 변형시키는 것을 좋아했다고나 할까. 언젠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내용이 인상 깊다. 오랜 불황을 겪던 어느 식당 주인이 기존의 틀을 벗어난 음식을 개발하여 연매출 수억대의 갑부가 됐다고 한다. 그 식당 주인은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움에 도전하는 의식을 지닌 까닭에 음식으로써 성공한 셈이다. 이것으로 보아 인생사는 어떻게 기획하느냐에 따라서 그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듯하다.

“기획은 어떠한 문제점이나 과제에 대해 현황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검증하여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라고 어느 문헌엔 적혀있다. 한편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도 기획의 한 부분이란 평소 생각이다. 인류의 문명이 이렇듯 눈부시게 발전한 것도 끊임없이 어떤 사안에 도전하고 창의적 발상을 멈추지 않은 결과일지 모를 일이다.

비근한 예로 처음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전 세계인은 망연자실했다. 별다른 예방에 대한 매뉴얼도 미처 갖추지 못하고 치료약도 개발되지 않은 상태여서 더욱 불안감이 증폭됐었다. 그러나 현재는 어떤가. 예방주사를 비롯, 치료약도 등장하여 그토록 우리의 삶을 위협하던 코로나19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고 있잖은가. 이는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에 의해서다. 뿐만 아니라 다각적으로 기획하는 인간의 사고 능력이 가져다 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

미래에는 자신의 삶을 시대적 변화에 맞게 다양하게 기획하고 도전하는 자가 사회로부터 혹은 주위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런 상상에 잠기노라니 오늘도 순간순간 주어지는 삶을 남다른 관점으로 기획하는 일에 깨어있는 의식을 지녀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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