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년째 열다섯』 김혜정 작가 “열다섯은 영원하지 않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오백 년째 열다섯』 김혜정 작가 “열다섯은 영원하지 않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3.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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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경선 PD]
[사진=안경선 PD]

열다섯 살. ‘중2병’이라는 말도 있듯,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불화하기 가장 쉬운 질풍노도의 시기다. 사춘기의 한가운데에서 일찍이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열다섯 청소년들은 어떤 이야기로부터 위안을 얻고 있을까. 

지난해 초 출간된 청소년소설 『오백 년째 열다섯』은 당초 속편 출간 계획이 불확실했으나 독자들의 열띤 반응에 힘입어 최근 후속편 『오백 년째 열다섯 2: 구슬의 무게』가 나오면서 시리즈물이 됐다. 독특하게도,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군 신화를 살짝 비튼 상상에서 출발한다. 그때 동굴에는 곰과 호랑이 외에도 여우가 있었는데 여우의 후손들을 야호족이라 하고, 호랑이의 후손들을 호랑족이라 한다. 야호족은 분리된 동물계와 인간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역할을 부여받아 신묘한 구슬을 삼켜 인간의 형상을 한 채 늙지 않고 살아간다. 이 구슬을 둘러싸고 야호족과 호랑족, 그리고 인간 사이에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는데, 열다섯 살 소녀의 모습을 한 주인공 가을은 야호족으로서 구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야기의 비밀이 궁금했다. 지난 15일, 서울 합정동 위즈덤하우스 사옥에서 김혜정 작가를 만났다.

[사진=안경선 PD]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008년에 『하이킹 걸즈』로 제1회 블루픽션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청소년소설과 초등학교 고학년 대상 동화를 주로 쓰는 작가입니다. 학교 강연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묶은 에세이집을 내기도 했고요.”
  
Q. 청소년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처음부터 ‘청소년소설을 써야지’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때는 지금 같은 청소년소설이 없었거든요. 우리나라에는 2007년, 2008년 무렵 출판사들이 대대적으로 공모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청소년문학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어요. 그 전에는 청소년문학이라고 하면 청소년이 직접 쓴 작품, 아니면 청소년 권장도서로 유명한 『데미안』 같은 세계명작이었죠. 저도 그냥 소설을 습작하다가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을 모집하는 공모전이 있길래 내 본 거예요.

당선이 되고 나서 책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때 미국이나 일본 청소년소설을 읽게 됐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왜 10대 때 이렇게 재밌는 걸 몰랐지’ 하며 억울할 정도로요.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제가 습작하면서 재밌게 썼던 이야기들은 다 10대가 주인공이더군요. 10대 인물들은 어른 인물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 같은 상황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면서 다채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에너지가 강해서 재미있어요.”

Q. 최근 두 번째 이야기가 나온 『오백 년째 열다섯』, 지난해 첫 번째 이야기 출간 당시엔 속편을 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는데 청소년독자들의 출간 요청이 쇄도했다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요?

“학교 강연을 많이 다니는데, 그러면 아이들이 책을 그냥 읽으라고 정해 주니까 읽어 오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이 책은 아이가 먼저 읽고 선생님한테 추천을 했다거나, ‘책 진짜 안 읽는데 이건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다’고 말해 준다거나, 그런 식의 반응이 더 많이 왔던 것 같아요. 작가인 저도 미처 생각 못한 부분을 발견해 주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1편에서 령의 죽음에 무척 슬퍼하는데, 어떤 중학생 독자가 ‘앞부분에 나오는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가 령의 죽음에 대한 복선이었다’는 해석을 내놓아서 놀랐어요. 의식하고 쓴 게 아니었거든요. 또 ‘2편에는 이러저러한 내용을 써 달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남자주인공 신우랑 무조건 로맨스가 있어야 한다, 가을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 야호족과 호랑족이 나왔으니 곰족도 나타나야 한다… 제 기존 구상에 그런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2편이 나왔죠.”

Q. ‘K-판타지’의 정수라 할 수 있을 만큼 단군 신화를 비롯해 우리에게 친숙한 신화, 민담 등을 곳곳에 잘 녹여낸 이야기였어요. 언제부터 그런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외국 작품을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 등을 자주 차용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동화의 형식으로 1차원적으로 표현될 뿐 그런 시도는 흔치 않았던 것 같아요. 저만 해도 『헌터 걸즈』라는 작품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를 활용했던 것처럼 서양의 신화나 민담에 많이 기댔고요. 이번에는 우리나라만의 소재로 써 봐도 괜찮겠다 싶어서 시도해 봤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네요.”

Q. 판타지적 성격이 강해서 어른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최근 청소년소설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한 5년 전만 해도 이렇게 판타지가 가미된 작품을 쓰면 ‘현실적인 이야기를 써야지, 왜 이런 걸 쓰냐’는 말을 들었거든요. 출판사에서 반려도 많이 당했고요. 그런데 OTT, 메타버스 같은 것들이 나타나면서 판타지와 현실 사이의 경계가 옅어졌죠. 특히 청소년독자들은 그런 부분에 더 열려 있어요. 

요즘에는 오히려 상황이 역전돼서 청소년소설이든 동화든 현실 배경의 이야기가 더 적어졌어요. 문학상 심사에 참여해 보면 예전에는 판타지적인 작품의 비중이 20~30% 정도였는데 지금은 절반 이상이에요. 청소년들에게는 두 성격의 이야기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주인공 가을의 변하지 않는 나이를 열다섯 살로 설정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불멸의 존재가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는 많잖아요. 그런데 그런 주인공들은 어른이기 때문에 너무 전지전능한 모습으로 나와요. 가을이는 오래 살기는 하지만 어른이 되지 못하고 열다섯 살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핸디캡이 계속 있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청소년독자들이 더 공감할 여지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열다섯 살은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시기예요. 조금만 아기 같은 행동을 하면 ‘다 큰 게 왜 그러냐’고 하고, 친구들과 놀러 갈 때는 또 어리다는 이유로 제약을 받고, 양쪽으로 스트레스를 받죠. 하지만 조숙함과 아이다움이 공존하는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도 있어요. 중간자적 위치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죠. 그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어요.

가을이뿐만 아니라 열다섯 살로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평범한 모습에 독자들이 자신을 많이 겹쳐 보더라고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유정이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껴 애정을 갖기도 하고, 신우처럼 예전에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했다고 고백하기도 하고요.”

Q. 2편에서도 1편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전학생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끝납니다. 3편도 출간 계획이 있으신지, 있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지요?

“아마도 3편이 마지막일 텐데, 지금보다 더 스케일이 커질 듯해요. 독자들이 말해 준 것처럼 곰족이 나올 수도 있고, 새로운 악역이 나타날 수도 있고요. 이제까지는 야호족과 호랑족 간의 갈등 또는 일부 인간들과의 싸움이었다면 좀 더 큰 위기, 이를테면 인간 세계까지 위협을 받는 위기를 가을이가 어떤 선택을 통해서 해결하게 될 것 같아요.”

Q. 작품을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책을 읽고 나서 ‘그래도 인생은 살아 볼 만할 것 같아, 중학교 시기 한번 버텨 볼 만할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제 트위터 계정으로 일 년에 몇 번 DM(다이렉트 메시지)이 와요. ‘작가님, 저 옛날에 작가님 되게 좋아했어요’라며 과거형으로요. ‘지금은 대학생이 됐는데, 갑자기 중학생 때 읽었던 책이 생각나서 연락해요. 그 시절 작가님 책 읽으면서 잘 보냈던 것 같아요. 잘 지내세요’. 답장을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옛날에 읽었던 책 한 권을 기억해서 그런 메시지를 보내 주는 걸 보면, 아이들이 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 될 수 있겠구나 싶어져요. 제 작품은 대체로 밝고 긍정적인 편인데, 그런 부분에서 좀 힘을 얻지 않을까. 그럴 때 보람을 느끼죠.”

[사진=안경선 PD]

Q. 작가로서 우리 청소년소설 시장의 특징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우선 청소년소설은 독자층이 얇아요. 청소년 시기는 금방 지나가는데 고등학교 2~3학년이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으니, 한 열세 살부터 열일곱 살 정도까지 5년 정도 읽다가 떠나 버리죠. 그래서 한 번 주목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은 잘 바뀌지가 않아요. 새로운 독자들이 계속해서 유입되면서 이미 상위권을 차지한 책들, 몇 년 전 책이 계속 읽히는 거죠. 이게 장점일 수도 있지만 단점이기도 해요. 새로운 작품이 진입하기가 성인도서에 비해 힘드니까요.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 시장만의 특징이라면, 요즘 청소년들이 웹소설이나 웹툰을 많이 보니까 작가들도 그런 부분을 의식하는 것 같고요. 워낙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보면서 자라는 세대라 그들을 사로잡기 위해서 판타지나 SF 같은 장르적인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 듯해요.”
  
Q. 영상 등 2차 콘텐츠로 발전하는 데 있어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직까지는 한계가 분명해요. 영화 같은 경우는 성인 배우를 내세워야 흥행이 된다는 인식이 있어서, 청소년을 다루더라도 성인 배우가 비중 있게 등장해야 투자가 들어온대요. 청소년소설이 영상화된 대표적인 사례인 <완득이>도 그런 작품이었죠. 10대들만 등장하는 이야기로는 어려움이 있어요. 다만 OTT 시대가 되면서 앞으로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Q. 최근 동화책 읽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청소년소설의 경우에도 그런 식으로 독자층이 확대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장르적 성격이 강해지면서, 주인공이 10대더라도 해당 장르를 좋아하는 성인 독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했어요. 작가들의 연령대도 훨씬 젊어지고 있고요. 옛날에는 청소년소설이 본격 문학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경향도 있었는데, 요새 장르소설 작가들은 청소년소설도 썼다가 성인소설도 썼다가 하죠. 여러 면에서 경계가 무너지고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는 것 같아요.” 

Q. 이 시리즈 외에 구상하고 계신 작품이나 요즘 관심을 두고 계신 주제가 있다면요?

“케이팝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판타지 청소년소설을 구상하고 있어요.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으려면 그들이 재밌어하는 소재를 써야 하니까요.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청소년소설은 그동안 거의 없었는데, 청소년 아이돌의 성장을 그려 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0대를 보내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이 잘 버텨 주고, 좀 더 힘을 내 줬으면 좋겠어요.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도 언젠가는 지나가더라고요. 인생은 생각보다 긴데 아이들이 너무 바로 앞만 보면서 벌써부터 현실적인 고민들로 힘들어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어른들이 잘못한 거죠. 가을이는 영원히 열다섯 살로 살지만 너희는 열다섯에만 멈춰 있지 않을 거라고. 스무 살도, 서른 살도, 쉰 살도 될 거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오백 년째 열다섯인 인물의 이야기를 쓴다고 했을 때 십 대 아이들은 인상을 썼다. 열다섯을 일 년 보내는 것도 끔찍한데 오백 년이라니요! 주인공에게 해도 너무하지 않느냐고 했다. 열다섯의 나를 떠올리면 가을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긴 하다. 열다섯의 나는 열다섯이 영원할 거 같아서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시간은 흘렀고, 그건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두가 열다섯을 무사히 지났으면 좋겠다.

-『오백 년째 열다섯』 작가의 말 中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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