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과 밥식이
밥심과 밥식이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3.02.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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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현대는 집안에서 아버지 권위가 실종됐다고 한다. 월급은 아내 통장으로 전부 입금되고 있다. 또한 삶에 쫓겨 자식들을 위한 밥상머리 교육도 예전처럼 할 수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은연중 딸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남성 편향적인 심상이 드리워지는 가정교육을 시켰다.

당시 집안에 부재중인 아버지였다. 하지만 평소 아버진 가장이자 집안 대들보라는 인식 때문인가 보다. 올해 구순을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부권(父權)을 철저히 옹호하고 신봉한 분이다. 그런 어머니였기에 지난날 딸들에게 엄한 가정교육 중 하나로 결혼하면 남편 아침밥 챙겨주기를 우선적으로 꼽았다. “남자들은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음식을 먹어야 속도 든든하여 밖에 나가 일도 잘하는 법이란다”라는 말을 누누이 들려주곤 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에 젖은 어머니 말씀 때문일까. 결혼해서 부부 싸움을 심하게 했어도 남편 밥상만큼은 잊지 않고 차려주곤 하였다. 어디 이뿐이랴. 젊은 날 교육 사업을 할 때도 가족들을 위하여 김치, 밑반찬 등은 직접 요리하였다. 아무리 바빠도 단 한 번도 가사도우미에게 집안일을 맡기거나 시중에서 파는 반찬을 사다가 밥상 위에 올린 적이 없다.

어찌 보면 바쁜 일상에서 지지고 볶고 삶는 음식을 장만한다는 일은 비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김치를 담그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밑반찬 등을 직접 요리했다. 어디 이뿐이랴. 장류도 담아 집 베란다엔 아직도 무려 30년이 넘은 된장과 먹물 같은 단내 나는 간장을 품은 항아리가 10여개 넘게 자리하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간 삶의 본능인 음식 섭취의 중요성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며칠만 곡기를 끊으면 생명을 잃잖은가. 요즘 현대인들은 아침엔 간단한 선식이나 야채샐러드, 빵 몇 조각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바쁜 일상에 출근 시간을 코앞에 두고 한가하게 식탁 앞에 앉아서 밥숟가락을 뜰 겨를이 없어서라지만, 아침밥을 거를 경우 청소년들은 수업 시간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비만의 원인도 된다고 하잖은가.

나이 탓이런가. 요즘은 한 끼 식사만 못 해도 기운이 없고 머릿속이 혼미하다. 아무리 빵, 우유, 과일, 야채 등을 먹어도 밥 한 술 뜨는 것만 못한 것으로 보아 필자에게 ‘밥식이’라는 별명이 그냥 주어진 게 아닌 듯하다. 그러고 보니 삶에 쫓겨 이젠 고인이 된 아버지께 생전에 따뜻한 밥상 한번 제대로 차려드리지 못한 게 크나큰 후회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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