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철학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인생의 비밀
[책 속 명문장] 철학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인생의 비밀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3.02.03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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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아마 일요일 한낮이었을 거야. 나는 갑자기 난생처음 세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휩싸였고, 그 때문에 충격을 받았어. 마치 마법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플루트 소리와 유리 조각이 부딪치는 소리 같았어. 길에선 아이들이 늘 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지. 모든 게 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기적처럼 여겨졌고, 나는 그 속에 있었어. 깊고 심오한 비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속에 있었던 것이지. 그것은 마치 백설공주, 신데렐라, 라푼첼, 빨간 망토가 등장하는 동화처럼 거품 같은 현실로 내게 다가왔어.
그 마법은 불과 몇 초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그 달콤한 충격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나는 그 몇 초의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내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그것이 바로 마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대가였던 셈이지.<14~15쪽>

그래서 나는 선생님들과 부모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어. 그들은 삶과 죽음에 관해 더 깊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지. 그들은 어른이었으니까.
나는 그들에게 도전했어.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아니, 이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들은 어린아이들보다 더 공허했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보다 더 비어 있는 것 같았지. 아마 그들은 나이만 먹고 어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그들은 마치 내가 외계에서 온 이상한 존재라도 되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어.<16~17쪽>

나는 눈을 뜬 뒤엔 하늘을 볼 수 없었어. 눈앞에는 짙은 안개뿐이었지. 안개 속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어. 어쩌면 안개 속에 자리했던 건 듬성듬성한 나뭇가지뿐이었을지도 몰라. 나는 어렴풋한 새벽빛 아래서 내 발밑에 기어 다니는 조그마한 무당벌레와 거미와 개미 들을 들여다보았어.
바로 그 순간, 내가 불현듯 깨달았던 것은 나 또한 이끼와 덤불 속을 기어 다니는 그 조그마한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그 자체라는 사실이었어. 뒤이어 더욱 깊은 생각이 나를 덮쳤어. 나는 내 주변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과 동일한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 비록 곡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서로 다른 곡들을 만들어 내는 음표는 같다는 생각.
나는 환각적인 모험의 세계에 잠깐 발을 들이는 것처럼, 단지 이 세상을 잠시 거쳐 가는 방문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나는 물속의 물고기나 덤불 속의 거미처럼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딱 알맞은 조건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던 거지.<22~23쪽>

[정리=전진호 기자]

『너에게 쓴 철학 편지』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 손화수 옮김 | 책담 펴냄 | 180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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