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재벌집 막내아들’ 결말, 진짜 문제는…
말 많은 ‘재벌집 막내아들’ 결말, 진짜 문제는…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01.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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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티저 포스터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2위를 기록하며 종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작품을 재미있게 봤지만,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지막 화를 보지 않겠다는 시청자도 있다. 드라마는 순양그룹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로서 ‘머슴’처럼 충성을 다하다 죽임을 당하는 주인공 윤현우(송중기 분)가 창업주의 막냇손자 진도준의 어린 시절로 환생해, 복수를 목표로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는 내용.

원작인 동명의 인기 웹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맺었다. 웹소설에선 주인공이 차근차근 지분을 장악해 마침내 2대 회장에 오르지만, 드라마에서는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뒤 원래의 삶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 과거 오너 일가의 손발이 돼 저질렀던 죄를 참회하고, 전문 경영인이 그룹을 경영하도록 만든다. 자신을 짓밟았던 권력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서는 ‘사이다’ 복수극을 기대해 온 시청자들은 예상치 못한 결말에 실망과 분노를 표했다. 각색 과정에서 큰 줄기는 그대로 둔 채 ‘재벌 해체’라는 새로운 주제가 들어가면서 세부적인 부분에서 빈틈이 많이 생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의 진행 방향을 생각하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결말이다.

드라마에서 윤현우는 ‘재벌집’ 아들로 살아가면서도 계속 원래 이름의 이니셜로 서명을 하는 등 ‘국밥집’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 온 인물이다. 그는 미래의 기억을 무기로 승계 경쟁에서 매번 우위를 점할 수 있었으나, 어머니의 두 번째 죽음만은 끝내 막지 못했다. IMF로 실직자가 됐던 아버지의 회사를 인수하고 고용승계를 보장했지만, 결국 21세기 귀족이나 마찬가지인 재벌이 존속하는 한 힘없는 자들의 죽음은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깨달은 뒤부터 그의 복수는 더 이상 자신을 죽인 개인이 아닌, 순양의 공고한 재벌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됐다. “승계를 위해서라면 불법이든 탈법이든 못 할 게 없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거냐”는 서민영의 말에 “나는 그런 재벌로는 살 수 없다”고 답했던 데서 알 수 있듯 말이다.

사실, 모든 시청자를 만족시키는 결말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유독 이 작품의 끝맺음에 이토록 저항이 거센 이유는 뭘까.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주인공이 가난하고 힘든 현실을 벗어나 판타지의 세계에서 끝내 무소불위의 권력을 차지하는 모습이었던 듯하다. 소위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장르에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건 그런 흐름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건 다 꿈이었나’라고 생각될 만큼 허무하게 현실로 내던져져서는, 재벌을 욕하면서도 선망했던 우리의 욕망을 직시하고 ‘참회’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불편할 수밖에.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감상 태도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현대지성)에서는 이렇듯 불쾌하고 불편한 전개를 견디지 못하며,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리뷰나 스포일러 등을 미리 찾아 읽거나 원하지 않는 부분을 건너뛰며 감상하는 경향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하나만 지목하자면 인터넷의 발달이다. 똑똑한 알고리즘이 내가 이미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콘텐츠만 걸러 보여주는 인터넷 환경에서는 점점 시야가 좁아지게 되는데, 이것을 ‘필터 버블’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런 경향 속에선 “결국 작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이 등장인물에 공감할 수 있느냐 아니냐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물론 공감도 중요하다. 우리는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인물을 통해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다. 하지만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의 행동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지 이해하게 되는 것” 또한 픽션의 중요한 존재 의의 중 하나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책은 우리 내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나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타자를 마주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험은 분명 불편하지만, 우리의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재벌집’ 윤현우가 진도준이 되어 살아 본 뒤에야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참회’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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