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꿈꾸며 귀농?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리틀 포레스트’ 꿈꾸며 귀농?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11.0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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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올해 새로 길러본 작물 가운데서는 완두콩이 최고였다. 사실 색깔만 예쁘지 완두콩이 딱히 맛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흔한 스파클 완두를 두 이랑 심어서 길렀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달고 맛있는 완두를 먹어보게 되었다. 덜 여문 통통한 초록색의 꼬투리를 그대로 쪄내면 설탕을 친 것처럼 단맛이 났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김태리의 조곤조곤한 내레이션이 떠오르는 이 문장들은 최근 출간된 책 『농사, 툭 까놓고 말할게요』(행성B)의 한 대목이다. 베테랑 잡지기자였던 저자는 서울에 직장을 둔 채 농사를 짓는 남편과 함께 강화도에서 15년간 귀촌을 체험하다, 2021년 마침내 긴 머뭇거림을 끝내고 자신이 더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인 ‘농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도시의 어지러운 불빛과 소음 공해, 매연에서 멀찍이 떨어져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농촌에서의 삶에는 분명 영화에서 본 것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상적이기만 한 직업과 삶이 어디 있을까. 예상치 못한 여러 난관도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재정적인 부담이 가장 컸다. 전업 농부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텃밭 수준보다 훨씬 넓은 땅이 필요하고, 작물을 심는 면적 외에 부대시설과 길 등으로 쓸 면적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농지는 원하는 크기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존 소유주가 정한 필지 단위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대체로 큰 평수가 많다. 농지 구입에만 억대의 돈이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임대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임대료가 비쌀 뿐 아니라 척박한 땅이 대다수다. 임대인이 땅을 볼모로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 이외에도 비닐하우스나 창고를 짓는 비용, 농기계와 농기구, 트럭 구매 비용 등 초기에 들어가는 돈이 생각보다 많다.

도시와 농촌은 정서도 많이 다르다. 저자는 이웃집 수저 개수도 알 만큼 이웃과 가깝게 지내는 문화가 처음에는 무척 낯설고 당혹스러웠다고 말한다. 농촌에 공동체 문화가 강한 이유는 노령 인구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농사 자체가 인력과 도구, 지식을 나누며 함께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막연히 인간관계가 지쳐 귀농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한 번쯤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에서는 농촌이 낭만적인 치유와 쉼의 공간으로 그려지지만, 전업 농부에게는 일터인 만큼 매순간 낭만에 빠져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고된 육체노동을 계속 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강인한 체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농번기에는 집에 돌아가면 씻고 자기 바쁘다.

이렇듯 미디어로 접하는 농촌과 실제 농촌 사이에 괴리가 있다 보니 충분한 각오 없이 귀농에 도전했다 한두 해 만에 도시로 돌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귀농하려면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막연한 동경으로 귀농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 귀농이라는 게 정말 뭔지 미리 찐하게 체험해본 다음, 정말 하고 싶은 게 맞는지 확인해보셔야 해요.” 요컨대 귀농에 가장 필요한 준비물은 귀농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배제한 마음가짐인 듯하다.

저자는 그럼에도 농부가 “자연의 시간과 함께 걷는”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말한다. 정말 하고자 한다면 길은 있다. 책에서는 청년 농부를 위한 지원과 교육부터 좋은 땅을 고르는 법, 사업성을 따져 작물을 선정하는 법 등 초보 농부가 알아야 할 각종 정보들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SNS 마케팅, 여성 농부처럼 시대가 변하며 농촌에 나타난 새로운 풍경들도 포착했다. ‘혹시 나에게도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지는 않을까’ 의심해 온 사람이라면, 섣불리 결심하기보다는 ‘요즘 농촌’의 현실적인 풍경을 가감 없이 담은 이 책부터 펼쳐 보길 권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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