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수영 “이태원 참사, 진정한 애도는 충분히 슬퍼할 환경 만드는 것”
[인터뷰] 권수영 “이태원 참사, 진정한 애도는 충분히 슬퍼할 환경 만드는 것”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11.0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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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역 1번 출구에 차려진 임시 분향소

참사가 벌어진 이튿날인 30일 밤, 이태원 역 거리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대다수의 상점들은 애도에 동참하며 문을 닫았고,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는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가져다놓은 꽃다발과 소주, 그리고 편지 등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시민들이 남겨놓은 편지에는 ‘무고한 영혼들이여 편하게 잠드소서’ ‘그곳에서는 평안하길’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등의 말들이 적혀 있었다. 현장에는 경찰과 취재진, 추모하는 시민들이 누구하나 큰 소리내지 않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지켰다.

그와 달리 온라인 공간은 조용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은 대통령실 이전 때문(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이라든가 “경찰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는 등의 발언이 이슈화되며 참사에 대한 책임 공방이 벌어졌고, 방송사들의 현장 영상은 당시 그곳이 얼마나 아비규환 상태였는지를 보여줬다. 일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술먹고 놀다가 일어난 사고인데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지원금을 주는 게 맞냐”는 글이 올라오고, 그 뒤를 따라 희생자의 행실을 따지는 2차 가해가 이어졌다. 그나마 여야가 정쟁을 중단하고 각계각층에서 추모의 목소리를 내면서 조금씩 애도의 분위기가 커졌다.

온 국민이 애도의 물결에 동참했는데, 대체 ‘애도’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의 애도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가애도기간 동안 각자 충분히 슬퍼하면 되는걸까. 이 기간동안 행사를 취소하고 음주나 취미활동을 자제하기만 하면 될까. 이번 애도가 다음 애도를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불현듯 책 『치유하는 인간』의 저자 권수영 교수가 떠올랐다. 한국상담진흥협회장, 한국상담서비스네트워크 이사장 등을 맡고 있는 그는 이 책에서 애도를 “누군가와 함께 슬픔의 느낌을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핵심은 ‘함께’와 ‘나누다’이다. 이 정의는 애도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권 교수에게 국가애도기간에 우리가 함께 애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서울광장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애도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지난 29일 밤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며 나라가 비통함에 잠겼다.

“유족을 비롯해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진 상황에서 정부가 국가애도기간을 정하고 2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한 점은 잘한 것 같다. 그런 비슷한 행사가 계속 이어진다면 유가족들이나 희생자의 친지들은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니까 말이다.”

- 온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시민들도 걱정이지만, 상실의 아픔을 겪은 유족들 그리고 직접적으로 참사를 겪은 생존자들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일반적으로 예기치 않은 비극적인 사고를 겪으면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을 겪는다. 그리고 외상을 겪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은 현장에 있지 않았더라도 동영상만 계속해서 반복 시청해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을 간접 외상 혹은 대리 외상이라고 부른다. 한편, 직간접적으로 사건을 경험한 당사자들은 ‘쇼크 단계’에 놓인다.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듯, 한 이틀 동안은 굉장히 날카로운 스트레스 반응을 할 것이고, 비슷한 장면만 봐도 가슴이 뛰고 숨이 안 쉬어질 수도 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쇼크 단계가 더 강하게 올 것이다.

이후에는 멍을 때리기도 하고 현장에 있었지만 나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들 수도, ‘내가 그때 잘 대처했다면 친구를 살릴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번 사태의 경우에는 압사 사고다보니 생존자들이 스스로 가해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감정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한 1개월 동안에는 회복 단계에 접어드는데,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애도’다.”

- 애도는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세월호 사건 이후 합동 분향식에서 있었던 일을 예로 들 수 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학생 250명이 숨졌지만, 70명의 학생들은 생존했다. 살아남은 친구들은 고려대 병원에서 모니터링을 받으며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한 달정도 지났을까.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위한 합동 분향식이 진행됐는데, 생존 학생들의 분향소 방문은 허락되지 않았다. 아마 학생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낀 나머지 더 큰 불상사가 발생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애도가 필요했다.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통곡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줘야 했다. 여기서 당국의 역할은 그렇게 애도하다가 숨이 넘어가지 않도록 옆에서 부축해주는 것이어야 했다. 결국, 우리가 이같은 주장을 강력하게 하면서 학생들의 애도가 가능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더 이상 슬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 그렇게 있으면 더 병이 악화될 거라는 생각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는 감정 상태를 충분히 털어놓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외상을 겪고, 6개월 정도가 되면 ‘재통합 단계’가 온다. 외상 경험이 있었지만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잘 통합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단계다. 일단,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 정부가 1주일 동안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고, 시민들의 추모 물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애도의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막상 애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도 있다.

“애도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소식에 슬퍼하고, 유족들과 친지들이 느꼈을 감정에 충분히 공감해주면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안전감을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마음 놓고 울 수 있도록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 때 고인에게 ‘철 없다’거나 ‘놀러갔다가 죽은 것’이라는 비난은 삼가야 한다.

또 우리가 신경써야 하는 것은 지난 사회적 참사들을 겪었던 사람들의 감정이다. 이런 사회적 재난이 계속 발생할수록 이분들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국가에 안전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그렇게 요구했음에도 결국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수해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그 유가족들이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다시 정신과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 이번 참사를 두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거나 그 원인을 규명하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사태의 문제를 한 가지 원인에서 찾는 방식은 도돌이표가 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건에서 선주의 문제만을 언급할 수 없듯, 모든 일에 대해 하나만을 생각할 수는 없는 법이다. 국가 안전망 시스템에 어떤 결함이 있었는지, 기업의 핼러윈 마케팅과 우리 사회의 놀이 문화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총체적으로 점검해봐야 한다. 결국, 여러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한 명을 처벌해서 유가족들에게 보상의 책임을 지우려는 문제는 적당한 조치가 아닐 것이다.”

- 지난해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함께 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 애도 문화를 위해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면.

“우리나라에는 사회적 재난 피해자가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이 마련돼 있지만, 실제 훈련된 상담사들이 국민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상담사 가운데 전문적인 수련이나 검정 단계도 없이 상담 자격을 획득한 상담사들도 있다.

애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된 상담이 진행돼야 한다. 훈련된 상담자여야 내담자(상담실에 찾아와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울 수 있는 능력, 애도할 수 있는 능력을 일깨울 수 있다. 함께 울어줄 수 있고 다시 회복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지난 31일 국회에서 ‘국민마음건강 증진을 위한 상담다양성 및 제도 구축 방안’을 주제로 상담 관련 법안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면서 우리 사회의 상담 서비스 질을 높일 기회가 생겼다. 정부는 심리 상담 제도를 마련해, 준비된 상담사들이 피해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한 지금이라도 자연재해나 사회적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 피해자를 초기에 심리지원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그들을 국가가 관리할 필요가 있다.”

31일 열린 상담 관련 법안 제정을 위한 토론회 모습. [사진=권수영 교수 제공]
31일 열린 상담 관련 법안 제정을 위한 토론회 모습. [사진=권수영 교수 제공]

- 국가애도기간 이후에도 이번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트라우마를 겪어도 우리가 평생 이걸 안고 살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시간이 지나면 외상을 자신의 삶 속에 품어낼 수 있는 재통합 단계가 온다. 한동안 사람들이 많은 곳을 가면 가슴이 뛰고, 이태원 근처에 가기가 힘들 수 있더라도 이 단계를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의 10% 정도, 많아야 20% 정도가 회복되지 못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게 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정신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다.

‘외상 후 성장(혹은 역경 후 성장)’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인간이 정신적 충격이나 심한 외상을 입었지만, 상처를 극복하고 나아가 긍정적 변형을 이뤄내는 현상을 말한다. 노동자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 어머니들이 적극적으로 노동 운동에 뛰어드는 경우가 있잖나. 그들은 비록 내가 자식을 잃었지만, 우리나라의 젊은 청년들이 다시는 그런 고통을 겪지 않도록 바꿔야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이런 분들이 바로 외상 후 성장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니까 심한 충격을 받았을 때 외상 후 스트레스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이분들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이전과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안전한 나라, 안전에 예민하게 대책을 세우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그들이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편, 국가트라우마센터(https://www.nct.go.kr/)는 큰 재난을 당한 피해자의 상담 및 치료를 지원하고 재난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설립한 기관이다. 센터 홈페이지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간단히 자가진단할 수 있는 질문지를 제공하고 있다.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면 핫라인 1577-0199으로 전화해 구체적인 안내를 받아볼 수 있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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