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진정한 ‘문명사회’를 위하여
[책 속 명문장] 진정한 ‘문명사회’를 위하여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9.21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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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세상에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눈에 뜨이는 사람들이 있다. 놀이터 구석에 앉은 짙은 피부색의 아이, 하이힐과 치마 차림의 남학생, 휠체어를 타고 클럽에 온 사람, 문신으로 몸을 덮고 수영교실에 온 여자……. 어떤 이들은 그들을 불편해하며,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라고, 무리의 힘으로 쫓아내기도 한다. 왜 그러냐 물어보면, 이상한 모습이니 이상한 행동을 할 거라는 이상한 이유를 댄다.
낯선 외모에 대한 본능적 불안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게 문명이다. <20~21쪽>

여기 문명의 서로 다른 얼굴이 있다. 눈이 어두운 이에게 무인주문기는 절망의 문턱이다. 하지만 귀가 나쁜 이에겐 구원의 계단이다. (…) 노인 세대가 스마트폰을 어려워하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유튜브, SNS, 영상통화에 맛들인 노년층이 부쩍 늘어났다. 왜 무인주문기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없을까?
피시방, 간이식당, 버스터미널, 심지어 병원까지 무인주문기들이 착착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그 얼굴은 여전히 꾀죄죄하다. 단지 인건비를 줄이고 하나라도 더 끼워 팔려는 기계라면 그처럼 무뚝뚝하고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이런 의심까지 든다. 혹시 귀찮고 약한 사람들을 일부러 배제하려고 저렇게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다른 ‘평행 우주’도 있다. 지치고 배고플 때 그 얼굴만 봐도 안심이 되는 무인주문기, 낮게 무릎 꿇고 꼭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무인주문기, 자신이 도와줄 수 없을 때 친절하게 인간 주문대로 안내하는 무인주문기……. <104~105쪽>

최근엔 문화 분야에 이런 일이 빈번하다. 마을 벽화 사업에 재능기부 미대생들을 모은 뒤에, 페인트도 사 오고 주민들에게 그림도 가르쳐주라고 한다. 버스킹 공연자를 모집하며 조명, 앰프도 들고 오고 홍보물도 만들라고 한다. 아마추어 사진가에게 지역 풍경 사진을 모집한다면서 저작권까지 슬그머니 가져가버린다. 은퇴 이후의 고령자들을 값싸게 부려먹는 데도 보람과 재미는 참 좋은 미끼다.
간단한 논리 공부를 해보자. 보람과 재미로 돈을 대체할 수 있다면, 그 역도 성립한다. 밤늦게 위험을 무릅쓰고 의료폐기물을 처리하는 노동자에게 칭찬 대신 임금을 더해주라. 그러면 ‘내 일이 이렇게 가치 있구나’ 알아서 느낀다. 예술가들도, 안 그럴 것 같지만, 돈을 재미로 전환시키는 재능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이 재미있게 일하면, 보는 사람의 재미는 더 커진다. <212~213쪽>

[정리=김혜경 기자]

『이상하게 살아도 안 이상해지던데?』
이명석 지음 | 궁리 펴냄 | 236쪽 |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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