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를 화형시킨 중세, ‘그때는 그게 맞았다’
창녀를 화형시킨 중세, ‘그때는 그게 맞았다’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8.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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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시즌 오브 더 위치: 마녀 호송단(2011) 스틸컷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시즌 오브 더 위치: 마녀 호송단>(2011) 스틸컷

유럽의 중세는 오랫동안 찬란한 고대 문명과 근대 문명 사이의 암흑시대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계몽주의가 발달했던 18세기를 거치면서 중세는 무지와 야만의 시대라는 편견이 굳어졌다. 책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서해문집)의 저자는 중세사 연구자로서, 중세의 생활상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하고 낯설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한때 이런 사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중세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중세 사람들이 성인(聖人)의 뼈에 집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들은 성인의 유골이 기적을 행한다고 믿으며 숭배했다. 이 때문에 유골 도굴과 도둑질도 성행했으며, 돼지 뼈를 유골로 속여 파는 일도 있었다. 1270년, 사후에 성인으로 추대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사망하자 그의 유골을 어디에 안치할 것인가가 치열한 정치 공방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동생인 샤를과 아들 필리프 3세는 결국 루이 9세의 시신을 나눠 가지기로 합의했고, 포도주를 넣은 물에 시신을 삶아 뼈와 살을 분리했다고 한다.

흔히 기독교에 비해 이슬람이 성을 더 억압한다고 생각하지만, 종교별 성 억압의 정도도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특히 중세 기독교는 성욕을 철저하게 단죄해야 할 육체적 죄악으로 보았다. 당시 교회는 오직 부부간에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성관계만을 허용했고, 시기까지 엄격하게 규제했다. 축제일, 금식일, 일요일, 월경과 임신 기간, 수유 기간, 출산 후 40일 등의 기간에는 성행위가 금지되었는데, 책에서는 “7세기 축제일이 273일 정도였던 점을 고려하면 중세 부부에게 허용된 평균 성행위 횟수는 일주일에 한 번꼴도 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중세 유럽에는 특이한 재판 방식도 있었다. 신명(神明) 재판이란 불, 물, 독 등으로 피고에게 육체적 고통이나 시련을 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신명 재판으로 우리가 잘 아는 마녀사냥이 있다. 마녀로 지목된 사람을 물에 집어넣어 가라앉으면 무죄, 떠오르면 유죄라고 판단했으며 유죄가 나오면 화형을 당했다. 이외에도 창녀와 동성애자, 이단자, 유대인 등 당시 기준으로 정상성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박해를 받았으며,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세의 생활상은 현대인의 눈에는 비이성적이고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은 자신이 사는 시대의 수인(囚人)”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이러한 비교가 현대를 절대적 기준으로 과거를 형편없는 시대로 간주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우리 시대의 한계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미래인들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도 이상하고 잘못된 것처럼 보일 테다. 우리는 법적 평등은 이루었지만 여전히 사회·경제적으로 불평등하며, 소수자와 약자를 배척하고, 기후 위기와 전염병 등 인간이 초래한 각종 재난 속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시대를 비교하는 일은 우리 시대의 한계와 편견을 직시하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전한다. 시대적 한계에 갇혀 넓은 시야를 가지지 못했던 중세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기보다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어떨까.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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