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채용하려면, ‘가토제작소’처럼…
노인을 채용하려면, ‘가토제작소’처럼…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8.30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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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제작소에서 일하는 고령 직원들 [사진=흐름출판]

ESG는 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앞글자를 모은 단어로,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주주의 이익 뿐만 아니라 고객과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와의 상생에 힘써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각 기업들은 ESG를 실천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아동이나 장애인, 노인 등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그 중 하나다.

기업이 ESG 경영을 실천해 사회 취약계층을 돕는 것은 장려될 일이지만, 주로 물품 지원이나 단기 일자리 사업 진행에만 그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ESG의 본질은 기업과 사회의 상생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인데,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지원 사업은 이들의 생활을 지속가능하도록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조처가 기업의 이미지 쇄신에만 활용되고, 수혜자에게는 외부 지원에 의존하게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부작용도 만들 수 있다. 취약 계층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일회적인 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립’을 돕는 것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중소기업 가토제작소는 한국의 ESG 방향에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창업자 가족이 4대째 운영하고 있는 이 금속부품 생산 기업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먼저, 가토제작소의 채용 문구를 보자.

“의욕 있는 사람을 구합니다. 남녀 불문. 경력 불문. 나이 제한 있음. 60세 이상인 분만”

흔히 직원 채용을 할 때에는 조금이라도 더 젊은 사람을 뽑는 게 일반적인데 가토제작소는 오히려 나이의 하한선을 두고 있다. 이들에게 정년은 없으며,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 자신의 체력이 다 할때까지 일할 수 있다. 이들은 어떤 계기로 노인 채용을 시작한 걸까.

가토제작소가 노인 채용을 시작한 건 2001년 무렵으로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의 터널을 막 벗어나던 시점이었다. 여전히 경제는 어려웠으며, 중소기업에게는 더욱 위기인 상황이었다. 이때 가토제작소에게 ‘납품 단가는 더욱 낮게, 납기는 더욱 짧게’를 요구하는 거래선이 늘어났는데, 그러려면 주 7일을 가동해야 했다. 그러나 새로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도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없었다. 이 난국 상황에서 가토제작소는 결국 노인을 채용하기로 한 것이다.

채용 초기, 기존의 젊은 직원들과 신입 노인 직원 간의 잡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작업 절차상 영어를 사용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이를 교육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 “멍키(멍키스패너) 가져오세요”라는 말에 “원숭이 말인가요”라고 되묻는 황당한 일화도 있었다. 반복된 실수 탓에 고령층 직원이 떠나는 안타까운 일도 생겼다.

하지만 혼란은 시간이 지나면서 잦아들었다. 그들이 가진 일에 대한 의지와 숙련도는 시너지를 발휘했다. 그 결과, 이듬해인 2002년에는 전국 고령자 고용 개발 콘테스트에서 후생노동대신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에는 일본 경제산업성이 매년 선정하는 ‘다이버시티 경영 기업 백선’에 기후현(일본 혼슈의 중부지방 이름) 최초로 선정됐다. 이 기업의 대표 가토 게이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60세 이상만 고용합니다』에서 “회사 매출액은 2001년 이후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은 노동을 통해 인간이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달았다”고 술회한다.

ESG 시대의 지속가능한 브랜드 관리 원칙을 정리한 책 『왜 파타고니아는 맥주를 팔까』의 저자 신현암과 전성률은 고령층 채용의 이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그것은 바로 ▲고령층이 자립하고 건강을 돌볼 수 있다는 점 ▲가토제작소처럼 주말에 일손이 필요할 때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으며, 기술을 보유한 고령층은 젊은 기술자를 육성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붕괴된 지역 커뮤니티에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전 세계에 ESG 바람을 일으킨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깨어 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과 직원, 고객, 협력업체, 회사가 번창하기 위해 의존하는 지역 사회의 상호 유익한 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토 제작소의 노인 채용 방침은 그 지역 사회 노인들의 자립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 사회에서 노인의 이미지는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만 남아 있다. ESG가 말하는 상생은 약자를 약자로만 남겨두기 위한 단어가 아니다. 각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무엇을해야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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