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서관이 책으로 버스킹을 하는 이유
그 도서관이 책으로 버스킹을 하는 이유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8.1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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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느티나무도서관의 여덟 번째 ‘컬렉션 버스킹’ 현장을 찾았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재탐색하시겠습니까?’

어느 오후, 한 카페 앞에서 이런 문장을 마주친 당신은 머뭇거리다 문을 연다. 곳곳에 도서관 라벨이 붙은 책과 자료가 비치돼 있다. 여기는 카페인가, 도서관인가. 그때 사서가 다가와 편하게 머물다 가시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렇다. 여기는 도서관이다. 적어도 책과 사서가 이 공간에 있는 동안은 말이다. 당신은 원래 계획했던 대로 커피를 마실 수도, 친구와 수다를 떨 수도 있다. 내킨다면 책을 가져와 읽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예고 없이 시작되는 버스킹처럼, 도서관이 당신의 일상 속에 문득 펼쳐진 것뿐이니까.

경기 용인시의 사립 공공도서관인 느티나무도서관이 용인 용담저수지 앞 카페 비건드에서 진행한 여덟 번째 ‘컬렉션 버스킹’ 이야기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지난 2019년부터 도서관은 어딘가에 붙박여 있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사서들이 직접 엮은 추천도서 컬렉션을 들고 시민들을 찾아가는 시도를 꾸준히 해 왔다. 이번에는 ‘경로 재탐색’이라는 큰 주제 아래 열두 개의 소주제로 이루어진 사서 컬렉션을 선보였다. 컬렉션 제목에는 ‘생존을 위한 멈춤’, ‘심플 라이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비건은 어렵고 어렵지 않아’, ‘제가 꼰대라고요?’ 등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다양한 고민이 담겼다.

햇살 잘 드는 카페에서 관심 주제로 엄선된 책을 살펴보는 일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는데, 옆에서는 사서가 눈을 빛내며 “질문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단순히 책의 위치를 찾아 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요즘 하는 고민이나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사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도움이 될 책과 정보들을 찾아 주겠단다. 한편 제목이 공감돼 들춰 본 책 맨 앞장에서는 추억의 ‘도서 대출카드’를 연상케 하는 종이가 튀어나온다. ‘먹고살기 힘들다….’ 앞서 책을 읽은 사람이 남긴, 간단하지만 진솔한 감상평이다. 평범했던 하루가 우연히 만난 책을 통해 풍성해진다.

책으로 버스킹을 벌이는 이 도서관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지난 4일, 컬렉션 버스킹 현장에서 느티나무도서관의 김차경 선임사서와 잠시 마주앉았다.

카페 곳곳에 놓인 서가에 느티나무도서관의 추천도서 컬렉션이 주제별로 꽂혀 있다. [사진=느티나무도서관]

다음은 김차경 사서와의 일문일답.

Q. 컬렉션 버스킹 주제는 어떤 식으로 정해지나요?

“그동안 사서들이 쌓아 놓은 컬렉션 주제가 120여 개 정도 되고요. 버스킹을 갈 때마다 기존 컬렉션에 추가할 사회적 맥락 또는 새로운 책이 있는지 검토하고, 공간의 특성에 맞춰서 컬렉션을 다듬기도 해요. 예를 들어 이곳(카페 비건드)은 비건 카페지만, 비건에 대해 잘 모르시는 중년·노년 고객도 꽤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원래 ‘동물을 사랑할까, 먹을까’라는 제목으로 동물권에 대해 다뤘던 컬렉션을 이곳으로 가져오면서는 ‘비건은 어렵고 어렵지 않아’라는 제목으로, 좀 더 쉽게 말을 건네는 느낌으로 바꾸어 보았죠.”

Q. 컬렉션 버스킹을 직접 경험해 보니 사서가 즉석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 주는 참고(정보) 서비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서에게 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한 경험은 있어도 참고 서비스라는 개념은 생소한데요.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면서 참고 서비스가 사서 업무의 핵심이라고 배웠는데, 실제로 해당 서비스에 느티나무도서관처럼 힘을 주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는 이용자의 질문을 기다릴 정도니까요. 이용자가 “찾는 책이 없습니다”라고 하면, (책을 찾아 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근데 이 책을 왜 찾으셨어요?” 물어봐서 “아, 제가 채식을 좀 해 보려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채식은 왜 하려고 하세요?”, “더 궁금하신 건 없으세요?”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요. 이용자들은 대부분 사서의 추천을 반기거든요. 그 추천이 모여서 하나의 컬렉션이 되기도 하고, 도서관의 다른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이용자의 질문에서부터 뻗어 나가는 게 느티나무도서관의 기본적인 방식이에요.”

‘컬렉션 버스킹’ 현장에서 만난 실제 방문객들의 질문. 사서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이렇게 질문을 적어 남기면 추후 메일로 답변을 받을 수 있다.
느티나무도서관 홈페이지에서도 참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사진=느티나무도서관 홈페이지 캡처]

Q. 어린 시절 느티나무도서관을 즐겨 드나들던 ‘느티나무 키드’이셨다고 들었는데, 사서가 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도서관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냈어요. 어느 날 친구들이 “야, 여기 가면 미끄럼틀이 있대”라고 해서 미끄럼틀을 타러 갔는데, 알고 보니 도서관이었어요. 당시는 도서관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책도 얼마 없었고, 관장님이 손걸레로 마루를 닦고 계셨던 기억이 나요. 처음에는 미끄럼틀만 타러 다니다가 점점 도서관 공간을 이용하게 됐어요. 그렇게 편안한 분위기를 주는 공간이 학생인 저에게는 거의 유일했던 것 같아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늘 1층 긴 카운터에 앉아 계신 사서님이 너무 부럽더라고요. 나도 여기에서, 정확히 저 자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서관 쪽으로 진로를 정한 뒤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했고, 대학생 때 주말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졸업 전 관장님께 제의를 받아 정식 직원으로 합류했어요. 제가 원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일하게 되었죠.”

Q. 도서관 실내에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다는 게 특이합니다. 어린 이용자들을 위한 시설인가요?

“아이들만을 위한 건 아니에요. 사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듯이, 책하고 덜 친한 사람들이 갑자기 책이 많은 낯선 공간에 들어가면 어색하잖아요. 그럴 때 눈앞에 그네랑 미끄럼틀이 있으면 책과 친해지기 전 단계를 조금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성인도 이용할 수 있어요.”

Q. 느티나무도서관은 서비스 헌장을 통해 모든 사람을 환대하고, 나이/성별/장애/국적/언어/학력/경제력 등의 이유로 도서관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사서 입장에서 느꼈던 것은, 우선 신분증이나 연락처, 주소지가 없어도 회원 가입을 할 수 있어요.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책을 못 빌려 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죠. 그리고 저희 도서관이 2007년에 건물을 새로 지어 이사를 했는데요. 모든 공간에 문턱이 없도록 설계했어요. 어디서든 휠체어나 유아차를 이용하는 분들이 불편함 없이 지나갈 수 있도록 가구나 공간을 그렇게 설계해 두었고요. 다만 계단참에 꽂힌 책들이 있는데, 고민이에요. 휠체어 이용자들은 올라가서 책을 고를 수가 없으니까요. 지금은 거기 꽂힌 책 목록을 만들어서 휠체어 이용자들에게 드리고, 필요한 책을 말해 주시면 사서들이 꺼내 드리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또, 글씨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책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책의 세부 분류에 따라 라벨 색깔을 달리하고 있어요. 물론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고민하면서 만들어 가다 보니 오신 분들이 ‘여기는 나를 위한 공간이구나’를 느낀다고 말씀해 주시곤 해요.”

Q. 장서의 종류에도 신경을 쓰셨다고요.

“예전에 도서관재단 사업으로 점자 낱말 카드를 만들어 점자를 배우고자 하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배포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자원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점자 그림책을 제작해 도서관에 비치했어요. 점자책 중에는 보통 그림책이 없는데, 시중에 있는 그림책에다가 점자를 입력해서 붙인 거예요. 시각장애인 가족은 점자로 책을 읽고, 시각장애가 없는 가족은 그림까지 보면서 같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요.”

느티나무도서관 내부 전경 [사진=느티나무도서관]

Q. 느티나무도서관은 일반적인 도서관에서 쓰는 십진분류법보다 주제 위주로 책을 분류하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국 십진분류법(KDC)을 기반으로 책을 배가(분류에 따라 서가에 정리하는 일)하고는 있는데요. 그 분류를 아주 잘 지키지는 않아요. 특히 이용자들의 질문에서 출발해 자료를 모으는 ‘사회를 담는 컬렉션’에서는 분류에 상관없이 질문과 어우러지는 책을 모아 두고 있어요. 한국 십진분류법의 기원이 된 듀이 십진분류법(DDC)은 미국에서 1876년에 만들어졌는데요. 거의 150년 전에 처음 만들어진 이 분류법이 지금 우리들의 변화하는 삶이나 일상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분류 체계를 공부하면서 아쉬웠던 게, 옛날 분류 체계에서는 ‘동성애’ 등의 카테고리가 정신질환 치료 항목의 하위 목록으로 들어가 있더라고요. 이런 부분은 많은 비판을 받아서 개정이 되곤 하지만요. 어쨌든 그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십진분류법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자유롭게, 여러 맥락으로 한 주제를 보여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이용자들이 자기와 맞닿아 있는 컬렉션을 만나면 마음이 툭 풀어져서 고민을 얘기하기도 하고, 그게 도서관에 깊이 들어와서 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또 사서들도 자기 고민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컬렉션으로 만들 때 굉장히 몰입을 하게 되죠. 컬렉션이 사람들의 삶에 주는 의미가 생각보다 작지 않더라고요.”

Q. 도서관이 단순히 책만 빌려 주는 곳이 아닌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커뮤니티로서 기능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느티나무도서관 사서로서 어떤 보람을 느끼시나요?

“내 일이 누군가에게 울림을 준다는 것, 변화의 씨앗을 잠깐 보여주는 정도에 그칠지라도, 일상의 변화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보람차요. 그리고 사회의 문제를 모르는 척하지 않는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죠.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도서관 내 작업실 공간 ‘메이커 스페이스’ [사진=느티나무도서관]

Q. 느티나무도서관은 컬렉션 버스킹 외에도 뉴스레터 서비스, ‘메이커 스페이스’(도서관 내 작업실) 운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데요.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도서관이 교양이나 여가의 영역을 넘어 삶과 더 밀접한 공간, 시민들의 실험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메이커 스페이스라는 공간은 손재주는 있는데 창업까지는 어려운 지역 주민에게 창업의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요. 소극적인 역할을 넘어서 실제 먹고사는 일이 도서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해 보자, 나아가 시민들이 도서관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도서관을 시민 자산화해 보자, 이런 목표도 가지고 있습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사립 공공도서관이다 보니 운영비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시민들이 이용만 할 게 아니라 (공동으로 도서관을 소유하며) 운영에 참여하게 되면 지속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방향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저희끼리 하고 있어요.”

Q. AI와 알고리즘의 시대, 오프라인 도서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그런 ‘대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비대면의 시대가 왔다고요. 그런데 제가 그 시기에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게, 저희는 최대한 휴관하지 않고 ‘도서관 문을 반만 닫습니다’, ‘반의반만 엽니다’라는 식으로 조금이라도 더 이용자들을 만나려고 했거든요. 평소에 도서관을 잘 이용하지 않으셨던 분들까지도 도서관에 잠깐 들리는 그 시간이 외로움을 덜어 주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때 우리가 생각보다 정말 사람을 필요로 하는구나, 오프라인 공간이 주는 힘은 대체될 수가 없겠다,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도서관이 할 일은 공간이 주는 힘을 이용자들에게 알게 해 주는 것 같아요. 이용자가 환대 받는 경험을 통해서 그 공간에서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까지 고민하게 되는 도서관이라면 사람들은 계속 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그러지 않으면 도서관은 정말 끝날 수도 있겠죠.”

느티나무도서관 외부 전경 [사진=느티나무도서관]

“책을 건넨다는 건 존엄함에 말을 거는 일이었다. 지금 그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언제든 그 책을 펼쳐 읽을 ‘수도’ 있고, 그 속에 담긴 메시지가 가슴을 뛰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의 잠재력과 배움과 꿈에 응원을 건네는 일이었다.
누구나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으로서 서로의 존엄함에 말을 거는 만남이라니! 도서관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는 건 그렇게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느티나무가 도서관운동을 이어가는 이유이자 힘이다.”

-박영숙(느티나무도서관 관장/느티나무도서관재단 이사장), 『꿈꿀 권리』 中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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