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도 과하면 병이다
겸손도 과하면 병이다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6.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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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포스터』라는 책이 출간됐다. 임포스터라고 하니 최근 유행하는 게임 ‘어몽어스’의 임포스터가 떠오른다. 시민들은 협동하여 임포스터(사기꾼)를 찾아내려 하고, 임포스터는 자신의 정체가 들키지 않도록 노력한다. 임포스터의 성취는 남을 속여서 얻는 성취다. 임포스터가 멋진 플레이를 할수록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임포스터’는 조금 다르다. 가면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임포스터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하 임포스터)은 자신이 게임 속 임포스터처럼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믿는다. 임포스터 증후군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흔하게 일어나는 경험이어서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증후군으로 인해 고통 받곤 한다.

국민 가수 아이유도 과거 이와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가수로서 정상에 올랐지만, 자신의 성취가 전부 ‘거품’처럼 느껴져 심한 불안을 느꼈다는 것이다. 영국 배우 엠마 왓슨도 유사한 말을 했다. “나는 사기꾼에 불과하고, 내가 이뤄 왔던 것들 중 나는 어떤 것도 누릴 자격이 없음을 누군가는 반드시 알게 될 거예요.” 이들은 실패가 아닌 성공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성공으로 이룬 것들을 잃게 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은 성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능력 있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이들이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 

임포스터들은 좋은 성과를 내면서도 끊임없이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남에게 충분히 자신을 어필하지 못해 승진 등의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대나무 천장’은 미국 내 동양인들의 고위직 상승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데, 한 연구에서는 동양인들 특유의 겸허한 행동과 조화를 추구하는 태도,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특성이 기업 내 승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어릴 때부터 겸손하라고 가르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와 같이 겸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속담들은 유독 아시아권에 더 많다. 서양보다 동양에 임포스터가 많은 이유다. 연구에 따르면, 성공한 아시아인들은 성공의 요인을 본인의 실력보다 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명문대에 입학한 싱가포르 출신 학생들은 합격 요인을 물으면 운이란 단어를 제일 많이 언급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고, 숟가락만 얹었을 뿐입니다’라는 수상소감은 꽤 익숙하다. 우리는 이런 식의 발언이 상을 타지 못한 상대방 혹은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나누어 비춰 주는” 배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겸손의 말이 과해지면 “우리로 하여금 가면을 쓰게 하기도 한다”. ‘운이 좋아서’라고 자꾸 이야기하다 보면 그간의 피나는 노력을 모두 잊어버리고 ‘나는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물론 겸손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겸손은 ‘감사의 겸손’과 ‘자기비하적 겸손’으로 나눌 수 있다. 상이나 칭찬을 받았을 때 감사를 표시하는 ‘감사의 겸손’은 미덕이라 하겠지만, ‘자기비하적 겸손’은 다른 사람들에게 순종적으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과도하게 낮추는 일이다. 책에서는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감사하는 겸손보다는 자기비하적 겸손을 진짜 겸손이라고 착각하는 데 있다”며 “진실로 겸손한 마음이란 우리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성공에는 본인의 노력만이 아닌 컨디션, 주변의 도움, 운과 같은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죄책감을 가져야 할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다. “지나친 겸손은 오만”이라는 말도 있듯 자신의 노력만으로 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오만에 가까운 데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습관은 결국 스스로를 괴롭힌다. 불안으로 가득한 임포스터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가짜 겸손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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