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소설 속 ‘팬데믹’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소설 속 ‘팬데믹’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6.08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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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부터 5일까지 국내 최대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렸다. 도서전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책이다. 출판사들이 ‘도서전 특수’를 노리고 출간 시기를 조정하는 일도 흔하다. 이번 도서전을 전후해서도 수많은 책이 출간됐다. 그 중에서도 신간인 ‘여름, 첫 책’ 10종과 표지를 새롭게 꾸민 리커버 도서 ‘다시, 이 책’ 10종, 그리고 한정판 기념 도서 ‘리미티드 에디션’은 도서전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가장 먼저 만난 특별한 책들을 통해, 팬데믹과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돌아봤다.

먼저, ‘다시, 이 책’으로 선정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일본에서는 2012년, 국내에서는 2014년 처음 출간됐던 책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을 기획 제작한 프로듀서 가와무라 겐키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경쾌한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절망하던 주인공에게 악마가 찾아와 거래를 제안한다. 거래 조건은 수명을 하루씩 늘려 주는 대신, 그때마다 세상에서 무언가를 영영 없애겠다는 것. ‘전화’, ‘시계’ 같은 사물에서부터 ‘영화’ 같은 추상적인 개념, 심지어는 ‘사람’까지 무엇이든 없어질 수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리며 당연하게만 느껴지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 간다.

‘여름, 첫 책’으로 공개된 설재인 작가의 『강한 견해』는 2021년에 쓰인 아포칼립스 장편소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창 전 세계가 떠들썩하던 시기의 수능 시험 날, 갑자기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가 피부로 변해 더는 벗을 수 없는 ‘변이체’가 되고 만다. 기약 없이 계속되는 재난 속에 많은 이들이 인간성을 잃는다.

“이토록 끔찍하고 불편한 세상에서 우리는 결코 끝나지 않는 시간을 살아야 하는 걸까? (…) 그날 이전에 누리던 여가나 기쁨이라고는 온데간데없는 땅에서. (…) 상냥한 입맞춤과 숨 막히는 키스를 누리지 못할 세상에서. (…) 적응하지 못한, 혹은 적응하지 못할 사람들이 미쳐갔다.” 마스크가 또 다른 피부처럼 느껴지던, 팬데믹 한복판에서 보낸 지난 몇 년에 대한 묘사처럼 느껴진다. 설재인 작가는 작가의 말에, “사망조차도 그저 또 다른 형태의 변이일지 모른다”고 썼다. 그만큼 코로나라는 재난을 거치며 죽음은 우리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다.

‘리미티드 에디션’ 책에서는 드디어 긴 터널 같았던 팬데믹의 끝을 바라보고 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수록 작품 중 김이설 작가의 단편 「꽃잎 다 떨어지면」과 이승우 작가의 단편 「귀가」는 똑같은 재난도 두 배, 세 배로 힘겹게 겪어야 했던 소상공인과 철거민‧독거노인의 이야기를 다뤘다. “열시에서 열한시로 제한시간이 늘었다고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없었으며,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많이 줄었다고, 곧 거리두기가 완화될 거”라는 옅은 희망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며 조금은 달라질 미래를 기다린다.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반걸음’. 조심스럽게 팬데믹 종식을 그려 볼 수 있게 된 지금,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아가고자 하는 작은 노력’을 뜻한다. 서울국제도서전 측은 이번 도서전의 주제에 대해, “반걸음 바깥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을 몰고 온 마구잡이 개발과 그로 인한 기후 변화를 되돌릴 것이고, 심화되는 불평등을 평평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가득한 곳이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지만, 반대로 무언가를 잃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것도 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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