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소기업이 버티는 비법
저성장시대, 소기업이 버티는 비법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5.2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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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성장’은 가능할까. 산업혁명 이후, 양적 성장을 거듭해 온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는 어느덧 한계에 직면했다. 한국의 미래라고 일컬어지는 이웃나라 일본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73년까지 약 18년간 경제 성장률이 평균 9%에 이르는 성장기를 지나 3%대를 유지하는 안정기를 보내다, 1991년 버블붕괴의 충격을 겪은 이후 0%대의 저성장 국면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진국의 경제 성장률은 대부분 0~1%대에 불과하다.

일본의 철학 연구가 우치다 타츠루는 책 『로컬로 턴!』에서, 저성장 시대를 건너는 방편으로 성장이 아닌 항상성 유지에 방점을 둔 정상(定常)경제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정상경제란 과거 농업사회가 그랬듯 소비하는 만큼만 생산하고, 지역공동체를 균형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경제 체제다. 일본의 경제학자 미즈노 가즈오는 “자본주의가 계속해서 성장하려면 어딘가에 투자해야 하는데, 이제는 투자할 여지도 없고 이자율도 오르지 않는다. 앞으로 우상향을 그리는 경제 성장은 없을 것이다”라며 정상경제 사회의 도래를 예견했다.

자본주의의 팽창 논리에 따라 운영되던 기업들은 이제 존속을 위해 운영 방식과 지향점을 고민해야 한다. 책에 따르면, 기업이 정상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지역 특색에 맞추고, 구석구석까지 경영자의 손길이 미치는 ‘얼굴 있는 거래’를 해야 한다. 수익을 공격적 투자가 아닌 인건비에 써서 고용을 안정화하고, 고객과의 관계를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으로 만든다면 경기 변화와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기업 활동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 작은 골목상점의 운영방식인 ‘고아키나이’(小商い) 모델을 제시한다. 고아키나이란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지 않고, 단골손님과 거래처를 소중히 하면서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게가 변함없이 돌아가게 하는 경영방식이다.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 등장하는, ‘대박’을 칠 일도 없지만 동시에 망할 일도 없는 라멘 가게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영화에서도 그려지듯, 경영 규모와 품질을 한결같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

‘고아키나이’ 모델은 이미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출판 등의 미디어 업종에 우선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기존의 미디어는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다고 여겨졌지만, 젊은 층은 TV를 보지 않고, 전국지 신문이 사실상 소멸하는 등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조직 규모가 유지비 부담을 불러온다.

소규모라도 안정적인 독자와 시청자를 확보해 품질을 유지하는 미디어 기업들이 있다. 일본의 성인잡지 <주간 플레이보이>는 타 매체에 자극적인 뉴스가 판치는 와중에도 비판적인 정치 기사를 게재하고 있는데, 성인화보를 보기 위해 잡지를 구매하는 고정 독자층이 있어 어떤 기사를 쓰더라도 부수 증감에는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그밖에 <주간여성>, <통판생활> 같은 잡지도 대기업 광고를 받지 않아 자본의 검열에 대한 의식 없이 솔직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지역 라디오의 경우도 중앙방송에 비해 주목도가 덜한 대신,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 작은 규모가 콘텐츠 품질을 좋게 하는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정상경제 시대의 도래에 따라 지방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 있다. 도시의 경쟁 시스템 속에서 청년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분야에서 내 순위는 어느 정도인지”를 우선으로 고려했지만, 지방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는 “나만이 할수 있는 일”과 그 가치를 찾아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로컬 골목상점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업은 비록 소규모지만, 대체될 수 없는 특색으로 시장의 변화에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아닌 ‘지속’ 자체가 목표가 된 저성장시대, 장기적으로 살아남고 싶은 기업이라면 기업의 정체성부터 다시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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