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은 당신, ‘책의 엔딩 크레딧’을 읽어라
일하기 싫은 당신, ‘책의 엔딩 크레딧’을 읽어라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5.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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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면 보통 작가나 편집자를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다룬 매체는 꽤 있었지만 대부분 작가와 편집자 위주였다.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와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 우리나라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등 잘 알려진 작품들 모두 그랬다. 샐러리맨의 고충을 다룬 소설을 주로 써 온 일본의 작가 안도 유스케는 어느 날, 작가인 자신조차 완성된 원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 책이 되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의 엔딩 크레딧』을 쓴 작가 안도 유스케 [사진=북스피어]
『책의 엔딩 크레딧』을 쓴 작가 안도 유스케 [사진=북스피어]

이 소설은 그 후 3년간의 취재 끝에 탄생했다. 지난달 23일, 세계 책의 날을 맞아 국내 출간된 『책의 엔딩 크레딧』은 출판 산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인쇄업계 종사자들의 일과 일상을 조명한다. 책 표지는 물론, 판권면(저작권자와 출판권자 등을 표기하는 페이지)에도 이름이 실리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인쇄소에 소속돼 출판사에서 일감을 따내고, 인쇄소와 출판사 사이에서 의견과 일정을 조율하는 인쇄 영업사원 우라모토 마나부.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앞서 실수를 연발하는 그의 모습은 사회초년생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 <미생>의 신입사원 장그래를 연상시킨다. 

인쇄소를 견학 온 학생의 질문에 인쇄 일은 장인정신이 필요한 일이라며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즉석에서 웅변한 우라모토는 자신의 답변이 퍽 마음에 든다. 하지만 우라모토의 라이벌이자 실적 1위 영업사원, 나카이도 고지는 열정만 가득한 우라모토가 탐탁지 않다. 나카이도는 꿈이 뭐냐는 학생의 질문에 “내가 맡은 일을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것”이라며 다소 냉정하게 들리는 답변을 내놓는다. 

소설에 묘사된 인쇄소의 하루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나카이도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인쇄소의 일은 출판사와 작가가 원하는 출고 일정에 따라 인쇄기를 가동하는 것이지만, 무리한 일정이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려면 여기저기서 실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실수가 누적되면 신뢰를 잃고, 결국 일거리를 잃게 되므로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바쁘게 작업하다 무려 목차에 오타가 있는 책을 1만권이나 세상에 내보내야 했던 일화는 아찔하기 그지없다. 책은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누군가의 소중한 창작물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인쇄소 내부 모습 [사진=북스피어]
인쇄소 내부 모습 [사진=북스피어]
『책의 엔딩 크레딧』 인쇄감리 작업 장면 [사진=북스피어]
『책의 엔딩 크레딧』 인쇄감리 작업 장면 [사진=북스피어]

작가와 편집자가 책의 부모라고 한다면, 인쇄소 사람들은 책의 탄생을 돕는 산파와도 같다. 원고가 알맞은 옷을 입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인쇄소 직원들은 사람보다 훨씬 큰 인쇄기를 관리하고, 사무용 책상만한 46전지(인쇄용 대형 종이) 수천 장을 옮기고, 종이의 재질과 온도, 습도에 따라 잉크를 조절해 별색(C, M, Y, K 잉크 외의 색)을 조합해 낸다.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미세한 색깔 차이 때문에 수없이 시험 인쇄를 거듭하면서도, 이런 노력이 결국은 독자에게 가 닿을 것이라 믿는 우라모토. 그의 자부심에도 이유가 있다.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하루하루 치열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해 나간다는 점만은 같다. 두 사람뿐 아니라 인쇄기 기장, 오퍼레이터 등 인쇄소의 모든 직원이 마찬가지다. 가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핀잔을 주거나 날선 말을 주고받지만, 인쇄소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진상 고객’을 상대할 때는 모두가 합심해 담판을 짓기도 한다. 실수를 혼자 책임지려다 곤란해진 우라모토에게 영업부장은 이런 말을 건넨다. “일을 그렇게 너무 깔끔하게만 진행하려고 하지 마. 쩔쩔매도 좋으니까 선배나 상사에게 울며불며 매달려도 돼.”

자신의 일을 ‘사양 산업’이라며 깎아내리는 나카이도에게 우라모토가 “왜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는 거냐”고 묻자, 나카이도는 대답한다. “가라앉히지 않으려고.” 냉정해 보이던 나카이도 역시 일에 애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상에 집착해 마음이 앞서던 우라모토는 점차 동료들로부터 책임의식을 배우고, 냉정하고 현실적이던 나카이도는 마음속 이상과 꿈이 눈앞의 일을 더 힘차게 할수 있도록 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다고 말하는 이 소설. 인쇄라는 생소한 세계를 그렸지만, 일하며 울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좌충우돌 성실하게 굴러가는 인쇄소의 일상은, 모두가 공감할 직장생활의 애환은 물론, 그 애환 속에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일의 기쁨을 되새기게 해 준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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