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서‧김민석 “美 세인트 존스 대학은 전체가 배움의 공간”
오은서‧김민석 “美 세인트 존스 대학은 전체가 배움의 공간”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4.19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의 세인트 존스(St.John's College) 대학은 신기한 학교다. 이곳 학생들에게는 전공이 없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모든 학생들은 미리 책을 읽고 와 수업 중 그 책에 대한 토론을 벌인다. 하필 그 책도 대학생들이 흔히 읽는 『맨큐의 경제학』이나 『경제학 원론』같은 책들이 아니라 많게는 수천년 전, 적게는 100년 전에 쓰여진 고전들이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어로 쓰여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저작들을 직접 읽는다. 톨스토이 작품 속에 담긴 ‘인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담긴 ‘자연관’ 등도 토론하곤 한다.

어려운 고전을 공부하려면 다소 배경지식과 설명이 필요해보이지만, ‘튜터’라고 불리는 교수들은 그 역할을 맡지 않는다. 학생들이 당대 학자들의 고민을 직접 마주하고 사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학에서 튜터들은 지식을 전달하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며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책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에는 세인트존스 대학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일화가 제시된다.

“세인트 존스에서 1학년을 보내던 어느 겨울날, 밤새 눈이 펑펑 내린 적이 있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 교수님이 수업에 못 오시는 불상사가 발생해 속으로 ‘오호, 휴강이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끼리 수업하래.’
그날 우리는 교수님 없이도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수업을 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렇다. 여기는 세인트 존스였다.”
<19~20쪽>

즉, 세인트 존스 대학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대학인 것이다. 과연,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인문학 교육 플랫폼 ‘필로어스’에는 세인트 존스 출신 학생들이 다수 모여있다. 이들은 세인트 존스 대학의 교육 방법을 응용해 한국에서 인문학 토론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세인트 존스 대학을 다니다 잠시 휴학하고 국내로 돌아와 필로어스에서 활동하는 오은서 대표(4년‧휴학)와 김민석 부대표(4년‧휴학)를 만나 이 대학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은서 대표(우)와 김민석 부대표
오은서 필로어스 대표(우)와 김민석 부대표 [사진=최현식 PD]

Q.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오은서(이하 오) : “세인트 존스 대학에 다니다가 잠깐 휴학, 그리고 국내로 돌아와 필로어스를 창업해 대표를 맡고 있다.”

김민석(이하 김) : “필로어스에서 부대표를 맡고 있다. 3학년 끝나고 군 복무를 하고자 한국에 잠깐 들어왔는데, 제대를 하고 나서도 지금까지 필로어스 튜터로 활동하고 있다.”

Q. 졸업을 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오 : “필로어스를 더 키워나가고 싶고, 한국에 이러한 교육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다음 졸업할 생각이다.”

김 : “필로어스를 한국에서 시작하는 일인 만큼 휴학이라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4학년 때 졸업 논문을 쓰게 되는데 이것이 아무래도 중요한 이벤트다 보니까 쓰기 전에 이것저것 다른 공부도 해보면서 자신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갚고 싶기도 했다”

Q. 전공을 두지 않고 4년 내내 고전만 읽는다는 대학의 교육 방식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원래 이 대학의 특징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세인트 존스 대학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김 : “고전을 읽으려고 진학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1년 정도 다녔는데, 그곳의 교육 방식이나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대학을 미국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인을 통해 세인트 존스 대학에 대해 알게 됐다. 얘기를 듣고 보니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고전을 읽는 것뿐만이 아니라 토론과 글쓰기를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다보니 계속 생각을 할 수 있고, 학문에 대한 감을 익혀나갈 수 있는 것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추후에 대학원에 진학을 하거나 다른 공부를 이어나갈 때도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 : “원래 나만의 철학이라는 것을 갖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었을 때 내 디자인 작품에 대한 깊이를 더하고 싶었었다. 자연스럽게 인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세인트 존스 대학에 대한 정보도 접했다. 여기서 고민이 들었다. 철학이 부족하더라도 당장 디자인 작업을 이어나갈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내 역량을 채울 것인지. 아무래도 나 자신에 대한 투자를 먼저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4년 정도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생각을 더 깊이 있게 다듬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Q. 세인트존스 대학에서는 어떻게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나?

김 : “학교의 과목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고전을 갖고 토론하는 세미나를 비롯해 수학‧과학‧언어‧음악이 있다. 하지만 이 과목들을 4년 동안 다 하는 건 아니다. 어떤 것은 2학년 때만 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3‧4학년 때 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고전이나 논문 같은 읽기 자료를 발췌해 읽으며 매 수업을 준비한다. 모든 수업에는 튜터가 한 명씩 배치 돼 있는데, 그들이 토론을 여는 질문 ‘오프닝 퀘스쳔’을 던져서 토론을 시작하게끔 만든다. 학생들은 그 질문을 이어받고, 서로의 말을 논박하면서 토론을 펼친다. 수학과 과학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실험을 하거나 증명을 해보기도 한다. 언어 수업에서는 고대 그리스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음악에서는 화성학을 공부하다가 합창을 하기도 한다.”

Q. 고전은 꽤 오래 전에 쓰인 책이기 때문에 지금과는 관점도 다르고 서술 방식도 달라서 학생들이 읽을 때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김 : “읽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수업 난이도가 좀 높아서 힘들어 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1‧2학년 때 적응을 못하면 학교 생활하는 게 쉽지 않게 된다. 3학년 때부터는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Q. 낯선 환경과 교육 방식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나.

오 : “나는 해외 여행을 가 본적은 있지만, 어학연수나 유학 경험은 없었다. 한국에서 배운 영어로 외국 대학에서 토론을 직접하려니 힘들었다. 학창시절 수능을 위해 공부했던 영어와 실제 대학 토론에서 사용되는 영어가 너무 다르다보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기 힘들었다. 이해가 어려우니 말을 꺼내는 것도 당연히 어려웠다. 영어도 못하는데 그리스어로도 하라고 했다.(웃음) 첫 학기 시작하고나서 2주 정도는 아예 말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1학년 때 튜터들을 쫓아다니면서 도와달라고 계속 부탁했다. 그러면 튜터들이 수업 30분 전에 미리 와서 당일 읽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이런 과정들을 반복하고 나면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더라. 그렇게 조금씩 훈련의 과정들을 거치다보니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수업 풍경은 어떤가? 학생들끼리 무척 치열하게 토론할 것 같다.

오 : “토론은 말을 잘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잘 듣는 것도 중요한데, 아무래도 1학년 때는 대학 토론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주로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좀 더 거칠고 날 서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토론 스킬이 좋아져서 남의 주장을 잘 듣고 그에 대해서 반론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좀 더 세련된 방식의 토론이 진행되는 것이다.”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Q. 수업에서 튜터는 처음 질문을 던질 때 말고 어떤 역할을 하는 건가?

김 : “학교의 가치관에 따르면 ‘튜터’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학생들과 같이 앉아서 배우는 존재다. 그렇다고 해서 이 튜터들이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많게는 몇 십년동안 고전을 연구해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수업에서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인근에서 학생들과 같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만나 같이 식사를 하면서 수업이나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뭐랄까, 수업만이 아닌 캠퍼스 전체가 배움의 공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Q. 수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경험은 무엇이었나.

오 : “교수님과 학교 어디서든 자유롭게 철학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요즘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세인트 존스 대학의 튜터들은 진짜 바쁜 경우가 아니면 학생들의 접근을 막지 않는다. 한번은 점심을 먹던 도중 근처에 아는 튜터가 있는 것을 보고 동석해서 함께 식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수업에서 다뤘던 아리스토텔레스 얘기를 하기도 하고, 세미나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책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고민들을 털어놓으면, 튜터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다 같은 책을 읽고, 커리큘럼도 같으니 어느 학년과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정말 좋았던 것 같다.”

Q. 세인트 존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주로 어떤 분야로 진출하나?

김 “일단, 대학원에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학부 과정만 마친다고 해서 컴퓨터공학이나 경제학처럼 어떤 전문적인 학위가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곳에서 여러 가지를 두루 공부해보고, 그 중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다. 수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법을 공부해보고자 로스쿨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Q. 세인트 존스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부분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삶을 꾸리고 싶은지 궁금하다.

오 : “일단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러 고전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주체적으로 살 용기도 함께 얻었다. 고전에 등장하는 여러 삶들을 돌아보면서 ‘어떤 삶을 선택해도 괜찮겠구나, 나는 그냥 나의 삶을 살아가면 되겠구나’하는 위안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이제 필로어스를 통해서 더욱 많이 알리고 싶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사람들이 자기 계발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김 : “여러가지 과목의 학문들에 대해 공부를 하다보니까 나중에 내가 어떤 공부를 하려고 해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잘 모르고 자신 없는 공부를 해야 할 때 먼저 두려움에 빠지지 않고, 어떤 식으로 접근하면 좋을지 생각을 하게 됐다. 빠른 시일 내에 졸업을 하게 되면 직접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정말 궁극적인 꿈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세인트 존스 대학처럼 공부할 수 있는 장소가 존재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다.”

세인트존스 대학에서 야외 토론 수업을 하고 있는 오은서 대표 [사진=필로어스 제공]
세인트 존스 대학에서 야외 토론 수업을 하고 있는 오은서 대표 [사진=필로어스 제공]

Q. 세인트 존스 대학에 입학하고 싶은 청춘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오 :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가면 좋겠다. 세상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고 시간이니까.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그 중 4년이면 25분의 1이다. 그 정도 투자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 눈 앞에 4년이라고 하면 좀 커 보일 수 있는데 그 세월로 인해 남은 몇 십년동안 더 큰 것을 얻으리라 생각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