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없이 ‘썸’만 타는 당신, 뭘 망설일까요?
연애 없이 ‘썸’만 타는 당신, 뭘 망설일까요?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4.1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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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호감은 있으나 정식으로 연애는 하지 않는 두 사람의 관계를 우리는 ‘썸’이라고 부른다. 썸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엇’을 뜻하는 영어 ‘Something’에서 유래했듯이 썸은 두 사람 사이에 무엇이 있다는 것만 알 뿐 그것이 정확히 어떤 마음인지 답을 내리기 힘들다. 소유와 정기고가 부른 노래 ‘썸’에는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사실 헷갈려’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는 썸타는 사람들의 헷갈리는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헷갈림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부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긴장감 있는 관계를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와 비교해봤을 때 이는 신기한 현상이다.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쓴 최성호 경희대 교수는 1992년 발표된 피노키오의 노래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연인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어색한 사이가 싫어져 나는 떠나리’라는 가사를 두고 “연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구도 아닌 관계를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로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 노래가 발표된지 30년이 흐른 2022년 현재 연애에 대해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전한다.

썸이라는 새로운 연애문화의 배경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그중 하나는 젊은 세대에게는 ‘책임지지 않고 싶어하는 심리’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젊은 세대들에게 연애는 피곤한 것이다. 정식으로 상대와 교제하게 되면 자주 문자를 보내야 하고, 만나야 하고, 상대에게 마음을 확인시켜줘야 한다. 또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취업 걱정 등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상대와 함께하는 미래도 쉽게 꿈꿀 수 없게 된다. 젊은 세대들은 가볍게 관계를 즐기다가 끝내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고 좋다고 여긴다.

하지만 최 교수에 따르면 썸이 만들어진 배경은 사회 속에 진실이 부재한 ‘탈진리 시대’에 기반해 있다. 무슨 말일까. 우리는 일단 최 교수가 말하는 썸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하는 썸은 ‘의지적 불확실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스스로 받아들일지 망설이는 두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인 것이다. 볼빨간 사춘기의 노래 ‘썸 탈거야’에서 ‘사라져 아니 사라지지 마/ 네 맘을 보여줘 아니 보여주지마’라는 가사는 자신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썸’타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의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는 걸까. 저자는 탈진리 시대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2010년대 초중반 한국 사회는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경험했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가 쏟아내는 말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사실이나 지식을 편취하기 시작했다. 진실이 중요하지 않고, 각자의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에 허무주의적인 분위기는 커지기 쉽다. 이에 따라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갈피를 못 잡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향한 내 마음을 결정하고, 그와의 미래를 꿈꾸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 교수는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어떤 공통된 합의나 동의가 부재한 이 탈진리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연애 문화가 과거 세대의 연애 문화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며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누구의 연인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고 그러한 망설임이 의지적 불확정성을 낳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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