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블루·옐로우 리본’의 진짜 의미를 아시나요
‘핑크·블루·옐로우 리본’의 진짜 의미를 아시나요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2.04.0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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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시상자로 등장한 배우 윤여정은 ‘수어 시상’과 ‘파란 리본’으로 화제가 됐다. 그가 왼쪽 어깨에 단 파란 리본에는 ‘#With Refugees’(난민과 함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제공한 리본으로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연대의 뜻을 표현한 것. 파란색은 유엔의 상징색이자 오랫동안 평화를 상징해 온 색이다.

우리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리본에 익숙하다. 국내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를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통용되는 노란 리본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표식으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았고, 이는 리본이 다양한 사회적 캠페인의 도구로 쓰이는 계기가 됐다. 유방암 예방 캠페인을 상징하는 핑크 리본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 핑크 리본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유방암 투병 경험을 녹여낸 에세이 『언다잉』으로 2020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 미국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앤 보이어다. 그는 유방암 중에서도 예후가 나쁜 삼중 음성 유방암을 진단받고 이 책을 썼다. “나는 죽지 않았다. 적어도 (…) 죽지는 않았다”라는 그의 표현은 유방암 환자가 겪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한다. 그가 유방암 환자의 고통을 일부라도 연대하고자 탄생한 핑크 리본을 업신여긴 이유는 뭘까.

미국에서는 매년 10월이면 각종 물건에 핑크 리본이 찍혀 판매된다. KFC의 치킨에까지 핑크 리본이 달릴 만큼 제품군도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도 10월이면 화장품 등 여성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제품에서 핑크 리본을 볼 수 있다. 이 제품들의 수익금 ‘일부’는 유방암 환자를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미국의 시민단체 ‘유방암행동(BCAction)’은 기업이 유방암 문제에 실제로 얼마를 쓰든 상관없이 이 리본을 마케팅에 이용하고, 심지어 발암 물질이 들어간 제품을 핑크 리본을 달아 생산하고 판매하는 위선적인 행태를 강력하게 비판해 왔다.

참고로 최초의 핑크 리본은 지금의 분홍색이 아닌 복숭아색이었다. 가족 중 할머니와 언니와 딸이 모두 유방암을 앓았던 운동가 샬럿 헤일리는 1990년, 미국 국립 암 연구소의 암 예방 예산이 적은 것을 비판하는 의미로 복숭아색 리본을 다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헤일리는 이후 화장품 업체 에스티 로더가 제품에 리본을 표시하는 파트너십 계약을 제안하자,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자 에스티 로더는 법률 자문을 거쳐 색깔만 살짝 바꾼 리본으로 유방암 예방 캠페인을 시작했고, 그 리본이 일명 핑크 리본이 됐다. 캠페인은 큰 관심을 끌어 지난 30년간 이어졌지만, 유방암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흔한 여성 암이며, 매년 무수한 사망자를 낳고 있다.

결국 핑크 리본에 대한 앤 보이어의 인식은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것이 아닌 상업적 마케팅 도구나 치장에 불과했다. 나아가 긍정적인 태도를 강요하는 세상의 상징이었다. 그는 핑크색에 둘러싸인 채 친구들에게 “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걸 그만두게 할 생각은 말아 줘”라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작은 리본에 담긴 결코 작지 않은 진실을 제대로 목도하고 표출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의미를 진심으로 되새길 때에만 작은 리본은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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