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은 왜 출근하는 시민을 막아세웠나
장애인들은 왜 출근하는 시민을 막아세웠나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3.29 06: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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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서울의 지하철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난 24일부터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재개하고 있다.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약 20일간 지하철 시위를 진행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전 후보가 TV토론에서 장애인 관련 공약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잠정 중단했었다. 이번에 재개하는 시위는 대통령인수위원회의 장애인 권리예산과 관련해 원론적 입장이 아닌 구체적 답변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시작됐다.

기자는 24일 시위의 여파를 직접 취재하기 위해 당일 아침 지하철에 올랐다. 시위는 8시 20분경 3호선 경복궁역에서부터 시작했고, 열차는 자주 멈춰 섰다. 양재역 인근에 있는 사무실까지는 평소보다 30분이 더 걸렸다. 시위가 이어진 이튿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열차가 오래 멈춰 있을수록 승객들의 한숨 소리는 끊이지 않았으며, 지하철 시위 관련 기사 댓글창은 장애인 단체 회원들을 향한 혐오 발언으로 도배돼 있었다.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시위가 진행된 만큼, 장애인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는 충분히 각인됐을 법하다. 하지만 지금도 ‘장애인들의 상황을 이해하자’는 이야기보다는 그들의 행동을 힐난하는 목소리가 훨씬 많다. 댓글을 다는 시민들은 주로 ‘왜 시민을 볼모로 잡느냐’고 문제제기 한다. 당신들의 처지는 공감하지만 시위는 광장이나 집회에서 해야지, 일상을 살고 있는 무고한 시민들의 앞길을 막으면서 자신들의 의제를 이슈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합리적 지적이다.

신길역에 있는 휠체어 리프트
1호선 신길역에 있는 휠체어 리프트

다만 우리는 장애인 단체들이 왜 이토록 무리한 시위를 하는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다. 지난 2001년 오이도역에서 한 장애인이 휠체어 리프트의 고장으로 추락사 했고, 이에 대해 장애인 단체는 꾸준히 개선을 요구했으나 변화는 더뎠다. 이후 문제가 됐던 휠체어 리프트는 지난 2018년 신길역에서 또한번의 사망 사건을 발생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국‧미국‧독일 등 해외 선진국들은 거의 모든 대중버스가 저상버스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전국 30%를 밑도는 수준이며, 장애인 택시는 여전히 공급 부족이다. 일상생활을 위한 기본적 조건인 ‘이동’ 자체가 장애인들에게는 목숨을 건 외출인 셈이다.

책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의 저자 브래디 미카코는 흔히 ‘공감’으로 번역되는 ‘엠퍼시(empathy)’를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공감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느끼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이해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공감(엠퍼시)의 본뜻은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타인’과 ‘능력’에 있다. 즉, 공감한다는 것은 나와 타인은 다르다는 명확한 인식을 갖고 ‘내가 상대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를 상상하며 자신의 지적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저자는 엠퍼시가 혐오와 분열이 격해지는 오늘날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에 비해 조금은 불편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으로 우리의 일상이 피해를 받을 때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라며 되짚어보고 이해하기까지는 쉽지 않다. 대립과 혐오만이 가득한 3호선 지하철에서 우리는 한번쯤 그들의 신발을 신어볼 필요가 있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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