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간의 토끼 작가, 듀나를 만나다!
인터넷 공간의 토끼 작가, 듀나를 만나다!
  • 심완선 SF 전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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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SF를 좋아해 : 오늘을 쓰는 한국의 SF 작가 인터뷰집
독서신문에서 『우리는 SF를 좋아해』(민음사) 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김초엽, 정세랑, 김보영, 듀나, 배명훈, 정소연 등 국내 유명 SF 작가 6인이 인터뷰이로 참여했습니다. 책 내용 중 하이라이트 부분을 공개합니다.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듀나 트위터 사진

SF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러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리는 장르라고 합니다. SF 전문 칼럼니스트 심완선이 오늘의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여섯 명의 SF 작가를 직접 만나, 새로운 이야기의 힘을 묻고 듣습니다. 글쓰기, 새로운 세계의 창조, 마감과 함께하는 작가의 일상, 그리고 무수한 가능성들의 우주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는 올해 봄 단행본으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Q. 아주 많은 인터뷰에서 첫 질문으로 뽑았을 질문인데요. 이름에 대해 묻고 싶어요. 듀나(Djuna)는 미국의 작가 주나 반스(Djuna Barnes)의 이름에서 따온 하이텔 시절 아이디죠. 한동안 작가명에 듀나와 이영수라는 이름을 모두 쓰시다가 일정 시점 이후로는 쭉 듀나로만 활동하고 계신데요. 이유가 있나요? 

"제 의도는 아니고요. 그냥 잡지와 출판사 편집자들이 그렇게 쓰기 시작했어요. 전 ‘다들 왜 그러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냥 포기해버렸어요. 깊이 고민하고 싶지 않아서. 처음부터 필명을 쓸 생각이었다면 다른 걸 썼겠죠. 주나 반스는 늘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전기도 많이 샀고 책도 많이 샀고요. 그런데 읽기 힘든 문체를 쓰는 작가라, 전기를 더 많이 읽죠." 

Q. 근황을 여쭤보고 싶은데요.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구픽 출판사에서 나올 옛날 영화 관련 책을 준비하고 있고요. 다른 책으로 미스터리 단편집이 나올 예정입니다. SF, 판타지가 섞이지 않은 책이에요. 언젠가 하고 싶었던 일이죠. 저는 기질적으로 미스터리 작가니까요. 그리고 SF로는 픽스업 단편집 하나를 내야 해요. 전에 쓴 「왕의 넋」이라는 단편의 연장선이에요. 초자연현상이 일반 과학인 세계의 과학부 직원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추리 시트콤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 외에 써야 하는 단편들이 더 있어요. 번역될 단편집 교정도 보고요."

Q.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오랫동안 토끼 사진을 얼굴 사진 대신으로 쓰고 계십니다. 

"그냥 귀여워서 쓴 거죠. 귀여운 게 많으면 좋잖아요. 초기에는 돌고래 사진을 잠시 썼는데 토끼의 힘이 세네요. 토끼를 좋아한다기엔, 귀엽지만 최근 직접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고양이랑은 같이 살아서 어떤 동물인지 아는데 토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지요."

Q.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로 취임하실 때는 토끼 인형 ‘듀나벨’이 참석을 대신했는데요. 듀나벨에게 일을 시켜야겠다고 하신 것도 기억이 나요. 무슨 일을 시키고 싶나요?

"원고요. 당연한 걸."

Q. 글을 쓸 때 작업 시간이나 공간은 어떤가요? 컴퓨터보다 주로 태블릿을 많이 쓰시는 것 같은데 잘 활용하는 어플리케이션이 있나요?

"전 프로는 못 되는 것 같아요. 정해진 작업 시간도 없고. 그냥 침대나 소파에서 뒹굴면서 아이패드나 아이폰으로 쓰거든요. 생산성이 별로 안 높아요. 얼마 전에 「작은 새와 돼지 씨」란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24시간 슈퍼를 하다가 아파트 경비를 하는 감독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오는데, 그분들이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데 저보다 훨씬 프로페셔널해요. 전 그런 성실함을 끝까지 못 따라갈 것 같아요."

Q. 글을 쓰면서 제일 고통스러울 때는 언제인가요?

"이야기가 막힐 때. 대부분 그렇죠. 몇십 페이지 정도 잘 나가다가 덜컥. 막힌 자리에서 몇 달 동안 멈춘 채 있을 수도 있고요. 지금이 그렇거든요. 미스터리인데 심지어 막힌 지 너무 오래되어서 누가 범인인지도 까먹었어요. 진상을 다시 만들어야 해요. 저는 배경을 다 만들어두고 쓰지 않아서요. 일단 디테일을 쌓기 시작하면 의도했던 것과 다른 구조가 만들어지거든요. 그러다 시작할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해결책이 나오기도 하고. 그럴 때는 재미있지요. 단편의 경우에는 결말을 생각하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계획대로는 안 가지요. 같은 결말로 가더라도 과정이 달라질 수도 있고. 일단 던져 놓고 생각하다 보면 자잘한 골목들이 보이거든요."

Q. 글쓰기와 별개의 취미생활이 있나요? 그런 활동이 글에 반영되는지도 궁금한데요.

"영화, 공연, 전시회, 책…… 가끔 레고. 전 일단 일 때문에 뭐든 꾸역꾸역 머릿속에 넣어야 해요. 아이디어가 생기면 관련된 자료를 찾기 시작하지요.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는 최대한 다양한 재료를 허용하려고 해요."

Q. 직업만족도는 어떠세요? 작가라서 좋았던 점이 있다면?

"직업만족도는 그냥 그래요. 조금 더 자기주도적이면 좋을 텐데. 작가라서 좋은 점은 한국식 사회생활을 안 해도 된다는 것?"

Q. 예전에 SF 작가들은 선후배 위계를 따지지 않더라는 말이 있었는데요. 정세랑 작가님이 단편집 『멀티버스』 후기에서 언급한 것을 배지훈 작가님이 트위터에서 다시 언급하셨네요.

"제가 그 원인이라면 자랑스러울 거예요."

Q. 듀나 님은 SF 작가끼리의 연결 없이 혼자 글을 쓰셨다는 취지의 얘기를 하신 적이 있죠. 지금은 변화를 체감하시나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경험은 어떤가요?

"일단 한국 SF의 계보가 쌓였어요. 그 계보를 무시하고 작업하는 게 쉽지 않아요. 무엇보다 독자들이 한국 SF 문학이 어떤 것인지 틀을 갖게 됐어요. 이 둘을 무시하고 동떨어져 작업하기는 어렵죠. 연대는, 뒤와 옆에 누가 있어서 안심된다는 느낌? 얼마 전에 에이전트가 생겼는데 역시 비슷한 느낌이지요."

Q. 한국의, 한국다운 SF를 쓴다고 의식했던 적이 있나요? 등장인물 이름도 초기부터 한국식 이름이 많았고요.

"한국인 이름을 쓰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90년대에도 꽤 많았던 것 같아요. 90년대에 나온 한국 SF 단편집 『창작기계』나 『사이버펑크』를 보면 주인공 상당수가 한국인이에요. 무엇보다 복거일 선생이 있잖아요. 한국 배경의 SF는 가물가물하긴 한데 그래도 꽤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한국 SF에 대해서는 거의 고민이 없었는데, 한국어로 SF를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은 늘 있지요. 이 이야기 안에서 내가 쓰는 언어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이건 영어권 작가들은 전혀 또는 거의 하지 않는 고민이지요. 그 사람들에겐 영어권이 세상의 중심이니까."

Q. SF를 써서 좋은 점이 있나요? 혹은, SF를 읽는 이유는요? 듀나 님은 1990년대부터 SF를 쓰셨는데요. 혹시 변화를 느끼는 점이 있으실까요.

"전 그냥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이 장르 글을 써요. 세계를 만들어야지 이야기가 나와요. 지금 제가 사는 세계만으로는 부족해요. 제 경험을 쓰는 것도 재미가 없고. SF를 읽는 건 어린 시절부터 습관이었어요. 그냥 좋아서 읽었죠. 1970~1980년대 대한민국은 별 매력이 없는 곳이었고 탈출구가 필요했어요. 지금은 아무래도 한국어 SF를 더 많이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으니까요. 장르 자체가 일상화된 것 같아요. 암중모색하던 1990년대와는 분명 다르죠. 텔레비전에서는 타임슬립 같은 게 인기지요. 확실한 건 더는 SF 장르가 소수의 마니아만을 위한 게토라는 핑계는 댈 수 없단 거예요. 국내 SF가 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있습니다. 세상이 달라진 거죠."

Q. SF에 익숙해진 덕분에 현실에서도 멀리, 넓게 보게 되는 점이 있지요. 지구에 대해 생각하는 너무 자연스럽고요. 혹시 마음이 가는, 자주 생각하게 되는 생물종이 있나요?

"전 공룡에 대해 늘 생각해요. 같이 사는 고양이들도. 하나는 고등어 무늬의 코리안숏헤어, 다른 하나는 아메리칸숏헤어 종이에요. 공룡과 고양이 둘 다 저에겐 주어진 환경이라. 늘 공룡 장난감이 하나 이상 굴러다니는 방에 살면서 공룡을 잊기는 어려워요. 고양이들의 앞날은 늘 생각하지요. 한 마리는 열 살이 넘었거든요."

Q. 팬데믹으로 인해 스스로 변한 점이 있나요?

"우울해졌어요. 저 자신은 그렇게 바뀐 게 없는데, 주변 사람들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바뀌는 걸 보게 되니까요. 역병이 지금 사람들의 정신을 뒤흔드는 것 같아요. 세상이 너무 끔찍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다른 길이 떠오르지 않아요. 종말론 소설처럼 멸망이 그렇게 짧고 쉬울 리가 없죠. 우린 고통 속에서 오래오래 살 거예요. 제가 마스크에 이렇게 익숙해질 거라곤 상상을 못 했어요. 전 지금 80년 전 제2차 세계대전을 겪던 사람들과도 비교하고 있는데, 과연 그 전쟁보다 빨리 끝날 수 있을까요. 억지로 만든 낙천주의는 늘 병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억지로 끄집어낸 것이니까요. 저도 품위를 유지하며 소멸하고 싶지만, 완전한 소멸 뒤엔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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