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디자이너 함지은 “매 책마다 다른 사람이 디자인한 것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북디자이너 함지은 “매 책마다 다른 사람이 디자인한 것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 채지은 대학생 기자
  • 승인 2022.01.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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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은 북디자이너 [사진= 함지은 제공]
함지은 북디자이너 [사진= 함지은 제공]

바야흐로 예쁜 책 전성시대다. 각양각색의 생김새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수많은 책들.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지금, 담겨있는 내용만으로 책이 선택받는 시대는 지났다. 독자들은 읽었던 책이어도 예뻐서, 초면인 책은 눈길을 끌어서, 책꽂이에 꽂아놓고 싶어서 등 책의 디자인 때문에 책을 집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독자들의 마음을 뺏는 책 한 권이 탄생하기까지 온 정성을 다하는 존재가 바로 북디자이너다.

사람에게 있어 첫인상이 중요하듯 책도 그렇다. 북디자이너는 책이 독자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책의 표지를 디자인한다. 표지만 디자인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와 책의 만남이 과정까지 좋을 수 있도록 본문의 형태를 디자인하고 편집자의 교정 교열 사항을 반영하는 것도 북디자이너의 몫이다. 이외에도 광고나 홍보물 그리고 요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책 관련 굿즈의 디자인까지 담당한다. 독자들이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디자인하고 그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한 권의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낼 수 있도록 북디자이너는 독자가 모르는 곳에서 수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책이 쏟아져 나오고,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독자의 기대치에 따라 북디자이너의 역할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열린책들 출판사 디자인팀 팀장 함지은 북디자이너는 전문가 선정 2019 올해의 북디자인으로 뽑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죽음』의 표지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최근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로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면서도 파격적인 디자인의 책 세트를 만들어 냈다. 책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각 책의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게 디자인하는 함지은 북디자이너를 망원역 근처 앤트러사이트 카페에서 만났다.

Q. 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고 알고 있다.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회화와 디자인은 크게 보면 서로 다르지 않다. 회화를 전공하고 디자인을 시작할 때는 막연함도 있었지만 오히려 작업 구상이나 표현 방법에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를 메인으로 하는 디자인 작업보다 아날로그적인 표현이 익숙하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크다. 예를 들어 선을 하나 그을 때도 컴퓨터와 손으로 그은 선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조그마한 디테일이 쌓여 독자에게 또 다른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디자인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분야가 있었을 텐데 특별히 북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단순하고 당연한 이유일 수 있지만 책이 좋아서. 생각해 보면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책을 좋아한 것이 훨씬 먼저였던 것 같다. 다른 분야와 비교했을 때는, 손에 잡히는 종이라는 물성으로 구현되는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특별했다.”

Q.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된다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책이 일이 된 후의 장단점이 있나.

“다행히 (웃음) 일로서의 책도 여전히 좋다. 출판사에 있지 않았다면 관심을 갖거나 접하기 어려웠을 책들도 많이 접할 수 있어 기쁘다. 단점이 있다면 디자인하기 전이나 하는 중에 원고를 읽는 것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라 취미로서의 독서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점 정도다.”

Q.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곧 출간될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표지 디자인을 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주로 서양 문학을 출간하여 일본 문학이 출간되는 경우가 자주 있지는 않다. 그래서 새로운 기분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제작된 회화 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 이런 회화에서 나타나는 표현 방식을 표지 디자인에 활용해 볼 방안이 없을지 고민하고 있다.”

Q.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책 『죽음』의 야광 표지나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의 표지에서 제목을 없앤 것 같은 독창적인 디자인이 많다. 이런 새로운 생각들은 어디서부터 출발되나.

“야광 효과는 기존에 아동서 등에 활용되어 온 가공이지만, 성인 단행본으로서는 처음 했던 시도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느껴지고 좋은 평을 얻게 된 감사한 경우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갑자기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많은 시도와 고민, 협업하는 동료들과의 대화, 그리고 노력 끝에 나온다.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의 경우에도 앞표지에 한글 책 제목이 있는 시안, 이미지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본 시안 등 다양한 방향으로 시도한 끝에 결과적으로 심플하게 완성하게 된 케이스다.”

Q.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모두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디자인하게 됐나.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에 소개된 고전은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법한 작품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국내외에서 출간된 판본이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이들과는 차별점을 가지면서도 갖고 있는 책이더라도 또 갖고 싶도록 만들어야 했다. 책을 넘어서서 하나의 디자인 오브제처럼 기능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획 의도도 있었다. 이러한 방향성에서 표지에서 일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와 작가의 이름만 남기는 과감한 시도를 해봤다.”

Q. 신간 디자인과 리커버 특별판 두 작업 중 더 좋아하는 작업이 있다면.

“두 작업 모두 재밌다. 사실 두 작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다르다. 신간의 경우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고, 리커버의 경우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작업이다. 리커버의 경우 이미 나와 있는 책이기 때문에 사실 독자들이 이 책을 다시 살 이유는 디자인일 것이다. 리커버 특별판이 출간될 때마다 많은 독자분들께 이 작품들도 다시금 사랑받는 계기를 만드는 것 같아 기쁜 마음이다. 두 작업 모두 재미있게 하고 있다. (웃음)”

Q.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 예쁘고 눈에 띄는 디자인의 책이 많아지는 것 같다. 책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책을 디자인할 때 가장 먼저 놓이는 것은 내용이다.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 첫 번째고 독자의 손이 갈 수 있도록 예쁘게 만드는 것이 그다음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냥 예쁘기만 한 것’은 경계하려고 한다. 예쁘면서 이야기와 결합되었을 때 그 매력이 증폭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Q. 지금까지 많은 작업을 했을 텐데 특별히 애정이 가는 책이나 작업이 어려웠던 책이 있나.

“최근에 작업한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작업이 가장 어렵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애정이 많이 간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심플하되 밋밋하지 않도록 이미지 하나를 만들 때 종이를 가위로 오려 만들어 그 디테일과 밀도를 살렸는데, 앙리 마티스의 페이퍼 컷 아웃 기법을 차용해 본 것이다. 스무 권의 컬러와 각 권, 그리고 세트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추는 과정 등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 작업이었다.”

Q. 북디자이너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디자인이 예뻐서 책을 구입했다는 독자들의 평을 들을 때. 온라인 서점의 한 줄 평이나 SNS의 댓글 등 독자의 피드백을 꼼꼼하게 챙겨보는 편이다. (웃음)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죽음』과 린지 피츠해리스 작가의 『수술의 탄생』처럼 감사하게도 작가들이 직접 표지에 대한 피드백을 주시기도 한다. 그럴 때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Q. 일하면서 힘든 점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앞서 언급된 『죽음』 표지의 야광 효과 같은 것을 구현해야 할 때라던가 지난 2018년에 리커버 특별판으로 출간한 『장미의 이름』의 경우 책 옆의 세 면(책입, 책배, 책발) 전체를 색으로 칠하기도 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그만큼 제작 과정이 까다롭고 생각처럼 잘 구현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여곡절을 겪고 힘들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여러 시도를 해보고 고민 끝에 극복하고 있다.”

Q. 일 이외에 요즘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나 취미는.

“식물을 키우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요즘은 영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저 같은 경우 관심이 가는 분야가 생기면 영상보다도 책으로 먼저 배우게 된다. 최근에는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을 즐겁게 읽었다. 조금씩 키우는 식물을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Q.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나.

“이 일 외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런 고민은 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다양하고 새로운 책을 더 많이 디자인하고 싶다.”

Q.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독자들께서 책의 내용뿐 아니라 디자인에도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계시는 것 같다. 덕분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다. 정말 감사하다.”

Q. 어떤 북디자이너가 되고 싶나. 가고 싶은 방향이나 목표가 있다면.

“한 가지 스타일을 가진 디자이너가 되기보다는 매 책마다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디자인하고 싶다. 앞서 말씀드렸던 디자인에 중점을 두는 부분과 연결될 것 같다. 책의 내용에 맞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북디자이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는 책마다 다른 디자인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다양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하는 것이 목표다.”

[독서신문 채지은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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