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엄벌’이 ‘답’은 아니다
학교 폭력, ‘엄벌’이 ‘답’은 아니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1.2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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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은 근절되기 쉽지 않은 사회적 문제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WHO는 2019년 전 세계 학생들 중 3분의 1이 학교 폭력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는 세계 어느 나라도 학교 폭력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학교 폭력에 대응해나가고 있다. 비교교육학자 김선 교수의 책 『처음 시작하는 비폭력 수업』이 전하는 각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의 학교 폭력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아보자.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 학생의 가족들이 가해 학생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 학생은 수개월 간 치료를 받고 학교에 겨우 복귀하는데, 가해자는 일정 봉사시간과 반성문으로 징계가 끝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가해 학생의 괴롭힘이 반복될 가능성 또한 높아 피해 학생은 원만한 학교 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학교 폭력에 대한 징계 수위가 지나치게 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며, 나아가서는 피해자의 가족들이 청와대 국민 청원에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하지만 피해자 측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과는 다르게 매번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은 꾸준히 제기된다.

이런 면만 놓고보면 미국은 한국의 이상향이다. 미국은 학교 폭력에 대한 ‘엄벌주의’를 내세우며 비행의 정도를 불문하고 가해 학생을 학교 밖으로 추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법원에서는 가해자 본인 뿐만 아니라 그의 부모에게 ‘자녀비행 방조죄’로 책임을 묻기도 한다. 특히 ‘왕따 방지법’을 발의한 플로리다 주의 경우에는 학교 폭력 행위를 보고도 말리지 않거나 신고하지 않는 방관자까지 처벌했다. 이같은 미국의 대응은 우리나라에서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해외의 ‘모범 대응 사례’로 나오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은) 많은 강경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 비교에서 학교 폭력 비율이 최상위권에 속한다”며 미국의 대응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미국의 조치는 정학이나 퇴학을 당한 학생들이 반성은 커녕 비행을 더욱 일삼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엄벌주의를 적용한다면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 사태는 줄어들 수 있어도, 비행 청소년들이 학교 밖 사회에서 저지르는 각종 범죄를 해결하기는 힘들 수 있다.

결국 저자는 “학교폭력을 경찰이 개입하는 문제로 간주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며 학교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가해 학생의 재범을 막는 동시에 피해 학생의 안전한 학교 생활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교내 프로그램에 있다고 말한다.

핀란드에서는 ‘키바 코울루(이하 키바)’라는 학교 폭력 방지 프로그램이 있다. 키바는 벨기에, 칠레, 아일랜드, 뉴질랜드 등의 국가에서도 차용할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 받았다. 핀란드에서는 모든 학교가 의무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1년에 20시간씩 운영하는데, 키바의 특징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만 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종의 역할극 방식으로 진행되는 키바는 학생들에게 피해 당사자 역할을 맡게 해 학교 폭력을 간접 체험하게 한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면서 학교 폭력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구성원으로도, 피해 학생에 대한 조력자로도 존재할 수 있게 된다. 핵심은 법이나 경찰 등 외부의 개입이 아닌 학생들 모두가 참여해 문제가 무엇인지 판단하고,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게 되는 데 있다.

저자는 “학교 폭력을 줄이기 위해 학생 스스로가 방관자에서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적극적인 해결사로 정체성을 바꾸도록 도와준다는 관점은 우리나라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조언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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