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은 백신을 왜 거부할까? 『죽기는 싫으면서 천국엔 가고 싶은』
미국인은 백신을 왜 거부할까? 『죽기는 싫으면서 천국엔 가고 싶은』
  • 유현승 대학생 기자
  • 승인 2021.12.02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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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분야는 일반적인 경제학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이다. 생명과 직결된 의료 서비스의 특성상 모든 국민이 보편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오늘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나라들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윤리적인 문제와 직결된 분야에는 늘 그렇듯이 개개인의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어 주관적이고 모호하다는 한계가 뒤따른다.

최근에 대두된 미국 텍사스 주의 임신중절 수술 금지 판결은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내포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임신중절 수술의 찬반 논란은 도대체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태아라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며, 여성의 자유권과 태아의 생명권 중 어느 가치를 더 중요시해야 하는지 같은 감히 재단하기 힘든 문제를 저울질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처럼 아직까지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찬반 여론이 팽팽한 미국의 보건의료 분야의 현안들이 책 『죽기는 싫으면서 천국에 가고 싶은』을 통해 조금은 숨통을 트인다.

이 책은 주로 미국의 보건의료 현안들을 다룬다. 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미국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흥미롭다.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인 백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은 코로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이다. 정치적인 문제와 더불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의 특성도 큰 이유지만, 백신에 대한 불신도 한 몫 한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의 백신에 대한 불신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998년, 홍역 백신과 자폐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논문이 한 의학잡지에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단 12건의 사례만을 토대로 했고 그 소수의 사례에서조차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자폐와 백신 간의 제대로 된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의 자폐와 연관될 수 있어 불안해하는 부모들의 우려가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졌다. 그 때 퍼진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금까지도 미국인의 머리 속에 뿌리깊게 남아 있다.

미국의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낮은 원인은 한 가지 더 있다. 터스키기 매독 사건이라는 유명한 미국의 비윤리적인 인체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실험에서는 매독의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한다는 명목 하에 흑인에 대한 비윤리적인 실험이 정부의 묵인 속에 자행되었다. 1932년, 미국의 공중보건국은 매독을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매독에 걸린 흑인들에게 그들이 매독에 걸렸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방치했다. 그리고 그 후에 매독의 치료제인 페니실린이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흑인들을 치료하지 않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흑인들은 정부가 벌이는 공중보건 정책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때 생긴 미국 흑인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오늘날에도 흑인들은 백신과 같이 정부가 권고하는 보건 정책에 협조하지 않게 되었다. 매독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은 공공선을 위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회적 소수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 저자는 보건의료분야에서 연구의 동기가 아무리 선하다고 할지라도 사회적 소수자를 희생시켜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이 책에 소개된 보건의료 쟁점은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고, 기술의 발달에 따라 상황이 변하기도 하며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의 충분한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고 지속적으로 고민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죽기는 싫으면서 천국엔 가고 싶은”이라는 책의 제목은 대가는 치르려 하지 않으면서 좋은 것만 취하려는 사람들을 꼬집는 말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당면한 문제에 참여하지 않으면 천국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독서신문 유현승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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