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책, 12월의 허무함을 무찌르다
[발행인 칼럼] 책, 12월의 허무함을 무찌르다
  • 방재홍 발행인
  • 승인 2021.12.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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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홍 발행인

한 해의 마지막 12월이다. 이맘때면 왠지 텅 빈 마음이 앞선다. 이룬 것에 대한 뿌듯함도 있지만, 이뤘든 이루지 못했든 ‘시간은 갔고 한 살 더 먹는다’라는 허무함이 좀 더 세다. 바쁨과 바쁘지 않음, 그 사이 어딘가를 맴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염없이 맴돌다가 한해의 마지막 12월, 뿌듯함과 허무함 사이에 선다.

뿌듯함과 허무함. 무언가의 마무리 시점에는 누구나 이런 양가적인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웬만하면, 또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기에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이왕 선택의 문제라면 허무함보다는 뿌듯함 쪽이 좀 더 낫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12월이 되면 책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올해는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책을 읽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마주했던 책을 복기하고, 지나쳤던 책의 리스트를 다음해 읽을거리로 챙기다 보면 채워진 곳간을 점검하고 빈 곳을 준비하는 뿌듯한 마음이 절로 든다. 허무함 보다는 뿌듯함을 선택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올해 읽은 책 중 곳간을 채운 뿌듯한 책들을 기억해본다. 소설가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는 ‘영끌’ ‘빚투’ ‘비트코인’ 등의 키워드를 젊은 세대의 생활양식과 엮은 소설이다. 특히 작가가 젊은 세대의 직장 생활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 묘사가 이 책의 일품(一品)이다.

작가 은유의 『있지만 없는 아이들』도 곳간을 채워줬다. 이 책은 미등록 이주 아동의 삶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록하면서 이주 아동의 인권 보호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란다고 역설한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기를 쓰고 사는 작은 인간에게 눈길이 가곤 했다”는 저자의 태도가 문장과 행간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보호자가 없어도, 안전한 집이 없어도, 적법한 체류자격이 없어도, 대단한 매력 자본이나 스펙이 없어도 아이들은 충분히 존중받으며 자라고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부분은 오랫동안 눈과 마음을 잡았다. ‘내 삶에 감사하자’라는 다짐을 선물한 책이기에, 한 해의 끝자락에 기다리는 허무함을 뿌듯함으로 전환하기에 충분했다.

작가 홀리 터펜의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는 코로나 시대에 ‘안성맞춤’이었다. 기후 위기 시대의 여행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으로, 코로나19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멈춤’이 지구 환경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탄소발자국 줄이기, 플라스틱 없이 여행하기 등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면서 여행자의 선한 영향력으로 여행지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새로운 지식을 선사했기에, 이 또한 뿌듯함으로 남는다.

채워야 할 빈 곳간을 계획하는 것도 큰 재미이자 차기의 뿌듯함이다. 지금 내 책상에는 천선란 작가의 신작 『나인』과 박상영 작가의 신작 『1차원이 되고 싶어』가 올라와 있다. 그들은 장류진, 김초엽과 함께 현재 한국 문단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다.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요즘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산업화와 민주화에서 벗어나 개인의 생활 양태를 구체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기에, 언젠가 복기하면 또한번의 뿌듯함 꾸러미가 될 것이다.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萬가지 마음, 단순한 ‘책 정리’ 하나로 뿌듯함을 찬양하는 것이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감히 권해보고 싶은 ‘연말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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