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로 드러나는 빈부격차
‘충치’로 드러나는 빈부격차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11.1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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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미국에서는 ‘데몬테 드라이버’라는 12세 소년이 충치 때문에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곪을 대로 곪아버린 충치의 세균이 뇌까지 침식해 뇌막염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미국은 의료비가 비싼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의료 보장제도가 엄연히 존재하는 국가다. 미국의 대표적인 의료보험 제도 ‘메디케이드’는 65세 이하 저소득층이나 장애인들의 의료 접근권을 보장한다. 또한 메디케이드의 혜택을 받기에는 소득이 많지만 민간 의료보험에 들기는 벅찬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아동 건강보험 프로그램’도 있다. 하지만 데몬테는 그 어떤 의료 혜택도 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치과 영역이 다른 의료제도와는 달리 의무가 아닌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데몬테의 사망 사건은 미 언론과 의회 청문회에서 자주 거론될 정도로 크게 회자됐고, 이를 계기로 데몬테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치과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현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뚜렷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2009년 미국은 아동 대상 치과 보험 보장을 의무화했으나, 아동들의 의료 접근성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책 『아 해보세요』의 저자 메리 오토는 “데몬테의 죽음이 메디케이드 치과 체계에 개혁의 기운을 불어넣었으나, 미국의 구강 질병은 여전히 소리 없이 온 나라에 만연해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에서는 미국처럼 충치로 인해 사망하는 이들이 없지만, 소득 격차에 따라 충치 치료율이 달라지는 경향이 드러난다. 보건복지부 ‘2019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중 소득이 가장 높았던 계층 50명 중 1명이 치료를 못 받은 반면, 소득이 낮은 계층은 7.5명 중 1명이 충치 치료를 하지 못했다.

미국의 치과 의료 현실을 고발한 책 『아 해보세요』의 역자 한동헌 서울대 치의대 교수는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현실은 부조리하다고들 하지만, 돈이 없어 치아를 치료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치과는 원래 비싸서’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몸에 병이 생기면 적시에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치료에 쓰일 비용이 더 큰 걱정이어서 치과 방문은 계속 머뭇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치과 치료 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치과 보험에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치과 의료 제도는 환자들의 치주 질환 예방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아동들의 의료 접근권을 높이기 위해 이동식 보건소 등 치과 인력들이 환자들을 방문해 검진을 하고 있다. 메리 오토는 “치과의사는 치아를 뽑기보다 자연 치아를 보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으며, 환자들이 (결국) 치아 상실을 겪는 악순환을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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