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열어보는 ‘냉장고’, 알고 보니 ‘금고’였다
매일 열어보는 ‘냉장고’, 알고 보니 ‘금고’였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11.2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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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가 숨겨둔 불을 몰래 인간에게 전달해 큰 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 그리스신화에서 그는 처음으로 인간에게 문명을 가르친 상징적 존재로 묘사된다. 이처럼 인류의 문명은 불과 함께 시작됐다. 그만큼 불을 통제한 역사도 오래됐다. 하지만 유구한 불의 역사에 비해 인류가 ‘차가움’을 제대로 통제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디에든 쉽게 옮겨 붙는 불의 특성과 달리 차가움을 다루는 데는 훨씬 더 복잡한 메커니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차가움에 대한 인류의 염원을 실현한 기계가 바로 ‘냉장고’다. 냉장고는 먹거리 운송 시 낮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장거리 배송을 가능케 한 콜드체인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이제 냉장고는 생명윤리 논란까지 일으킨 ‘냉동인간’ 이슈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이처럼 냉장고 안에는 음식만 있는 게 아니다. 책 『냉장고 인문학』의 저자 안창현은 “냉장고에는 인간의 희로애락과 함께 사회, 문화, 경제의 요소가 두루 담겨 있다”고 말한다.

특히 냉장고와 경제발전은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앞선 언급처럼 냉장·냉동기술의 발달과 콜드체인 시스템의 등장은 먹거리의 이동 경로를 획기적으로 증가시켜 음식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이에 냉장고는 미국의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20세기 지구촌 최대의 히트상품’에 매킨토시, 자동차, 텔레비전 등과 함께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다. 또한 냉장고는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데 기여했고, 이는 여성들의 활발한 경제활동을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

안창현은 “가사노동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당시 여성들에게 냉장고는 꼭 소유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을 것”이라며 “냉장고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국민소득 수준에 비해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각 가정의 필수가전으로 자리잡은 데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아울러 냉장고는 외식 경제의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서 팔려면 ‘많은 양’의 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해야 했는데, 그 문제를 냉장고가 해결한 것이다. 안창현은 “특히 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의 경우 어느 매장에서 먹건 간에 맛의 큰 차이가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표준화된 식재료나 양념을 각 매장마다 공급해야 한다”며 “이런 표준화된 품질의 식재료를 공급하는 데 냉장고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설명한다. 냉장고가 없었다면 결코 오늘날 같은 프렌차이즈 업종이 생겨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냉장고는 ‘간편식’ 시장의 전성시대도 열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이른바 ‘혼밥러’들이 급증했는데, 이에 냉동 간편식 시장이 무섭게 성장한 것이다. 안창현은 “이러한 새로운 먹거리 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냉장고와 깊은 관련이 있다”며 “냉장유통 덕분에 생산 단계부터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이를 때까지 신선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앞서 언급한 콜드체인 시스템은 코로나19 백신의 안전하고 원활한 유통에도 크게 기여했다. 안창현은 “접종 전까지 백신이 품질과 효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저온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당연히 콜드체인 시스템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냉장고 인문학』은 인간과 음식문화, 경제발전, 과학기술, 환경문제 등의 이슈를 냉장고와 연관해 풀어낸다. 안창현은 “냉장고는 가정의 주방, 마트나 편의점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물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꾸어 냉장고를 살펴보는 것은 생각보다 여러분에게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안겨줄 것”이라고 말한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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