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푸틴을 지배하는 메르켈의 ‘참을성’
트럼프‧푸틴을 지배하는 메르켈의 ‘참을성’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11.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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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유행하는 신조어 ‘메르켈른(merkeln)’은 ‘신속하게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신조어는 지난달 26일 공식 임기가 종료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임기동안 국민들에게 비춰진 모습에서 나왔다. 메르켈은 항상 사실과 진위여부를 검토하며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데 신중한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마치 이런 신조어 현상이 독일 국민들이 메르켈을 답답하게 생각할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독일 국민들은 메르켈이 퇴임 전 75%의 국민 지지율을 받았을 정도로 그를 높게 평가한다.

메르켈은 내치뿐만 아니라 외치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면 외교는 국내 정치보다 더욱 냉혹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각국의 이익이 우선되고 충돌하는 외교의 현장에서 국내에서의 양보와 타협의 자세는 볼 수 없다. 더군다나 미‧중으로 양분된 신냉전 체제에서 양쪽 진영에 좋은 평가를 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참을성’은 메르켈 리더십의 비결로 꼽힌다. 『메르켈 리더십』을 집필한 저자이며 미 ABC 뉴스 서독 특파원으로 4년간 메르켈 집무실을 드나든 케이티 마튼은 메르켈에게 “긴 정치 인생 동안 자신을 지탱해준 특성을 한 가지 꼽는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메르켈은 단번에 ‘참을성’이라고 답했다.

독일은 G7에 속할 만큼 강대국에 속하지만, 주변 국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기본적으로 독일은 미국의 해외 최대 주둔국이다. 또한 러시아와는 천연가스 송유관으로 연결돼 있어 러시아에게 자원을 의존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독일의 네 번째로 큰 수출 시장으로 등극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여기에다 독일은 EU각국의 입장까지 대변해야 하는 상황이다.

메르켈의 참을성은 정상과의 외교에서 기지를 발휘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등 ‘스트롱맨’ 사이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끝까지 입장을 고수했다. 트럼프 재임 당시 메르켈은 트럼프에게 갖은 외교적 모욕을 받았음에도 특유의 자제력으로 당혹스런 상황을 정리했다. 트럼프는 “앙겔라, 당신은 나에게 1조 달러를 빚졌소”라며 독일이 주독 미군 주둔비용을 늘릴 것을 종용했지만, 메르켈은 차분하게 대응했다.

메르켈의 이러한 태도는 트럼프의 환심을 샀다. 케이티 마튼에 따르면 트럼프는 영국 총리 테레사 메이에 대해 자신의 환심을 사려 기를 쓴다는 점에서 싫어했지만, 메르켈의 말은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위원회 위원 피오나 힐은 “트럼프는 실제로 메르켈의 말을 경청했다”며 “메르켈은 차분하게 지배력을 행사했다. 그가 영어로 말할 때 내는 저음의 목소리는 상대의 심리적 무장을 해제했다”고 말했다.

국가정상회담에서의 잦은 지각으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로 유명한 푸틴에게도 능수능란하게 대처했다. 메르켈이 총리에 재임했던 첫 해에 있었던 일이다. 푸틴은 메르켈을 러시아 크렘린 궁에 초대했다. 메르켈이 과거 개에게 두 번 물렸다는 사실을 안 푸틴은 자신이 기르는 검정 리트리버가 메르켈의 주변을 맴돌게 했다. 하지만 메르켈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메르켈은 후에 참모들에게 “그는 그래야만 자기가 남자답다는 걸 과시할 수 있다고 여긴거야. 러시아는 정치도 경제도 성공하지 못했으니까”라고 술회했다.

이러한 메르켈의 태도에 대해 케이티 마튼은 “그는 욕망하는 결과물을 얻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자존심을 거듭 제쳐뒀다. 협상은 참을성을 시험대에 올리는 고된 과정이다”라며 “그가 추구하는 단 하나의 목표는 결과물이었다”고 덧붙였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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