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성들이 전쟁때 3시간씩 재봉에 매달린 까닭은
일본 여성들이 전쟁때 3시간씩 재봉에 매달린 까닭은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9.2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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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은 여권향상에 영향을 끼친 발명품 중 하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고개를 갸웃할게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손바느질에 구속됐던 여성들은 재봉틀을 사용하면서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어떤 옷이든 바느질로 제작하려면 10시간 이상 걸리기 마련인데, 재봉틀을 사용하면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재봉틀을 다룰 줄 아는 여성들은 밖에서도 일할 수 있게 되면서 스스로 번 돈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1850년대 일본에 재봉틀이 유입되면서 근대 일본 사회도 변화를 맞았다. 일본의 변화는 다소 특이하다. 재봉틀이 보편화된 시점인 1950년대 일본 기혼 여성들은 매일 재봉 노동에 약 3시간을 할애했다. 영국이 30분, 미국이 1시간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 여성들의 노동 시간은 상당한 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프랑스가 일본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다. 일본 여성들에게는 당시 어떤 일이 있었길래 옷 만드는 일에 열중한 것일까.

『재봉틀과 일본의 근대』(소명출판)는 재봉틀의 일본 유입으로 변화하는 여성 노동상을 살피는 책이다. 저자는 『현대 일본의 역사』 등 일본 근대사 연구 권위자인 앤드루 고든 미 하버드 역사학과 교수다. 그는 이 책에서 남성이 20세기 경제 주체였다는 통념을 여성의 사회적 노동의 탄생으로 반박한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여성 소비자의 탄생이다. 그는 재봉틀이 불러온 변화에 대해 “여성들은 가정을 기반으로 하면서 가끔 그곳을 벗어나 중심적이며 보편적으로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역할로 진출했다”고 평한다.

재봉틀의 등장과 그로 인한 여성 지위의 상승은 당대 의복의 변화와 관련있다. 일본은 1854년 미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은 후 요코하마, 고베, 나가사키 등을 개항했다. 일본 정부는 양국 상인의 무역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었지만, 내지 개방을 하면서 외국인의 국내 여행을 허가했다. 이때 재봉틀 상인 ‘싱거 미싱사’는 본격적으로 재봉틀을 각 가정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재봉틀을 배운 일본 여성들은 성공한 직업인이 되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양장점을 운영했고,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기도 했다. 전쟁 중 끝없이 의류 물자를 생산해야 하며 강제적 사회 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이 사실상 크게 작용했다. 재봉틀은 ‘가사’로만 취급받던 여성의 개인적 노동을 국가와 사회에 의해 경제적 가치를 부여받는 ‘사회적 노동’으로 치환시켰다. 여성들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상승을 불러온 재봉틀의 수요는 계속 늘어났다. 전후 일본의 재봉 노동이 증가했던 이유에는 이러한 맥락이 숨어 있는 셈이다.

경제력 있는 여성들은 소비자의 역할도 수행했다. 단순한 결과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의미가 한층 깊어진다. 소비자는 국가 경제의 실질적인 주체다. 생산은 노예도 할 수 있지만, 소비는 하지 못한다. 재봉 교육자 와타나베는 여자들의 재봉틀 구매가 미국 회사의 배를 불려주는 격이라고 나무랐지만, 여성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도 국가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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