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⑧] “1936년 열일곱 동갑내기의 풋내나는 사랑 표현법은?”… 김유정의 『동백꽃』
[문학기행 ⑧] “1936년 열일곱 동갑내기의 풋내나는 사랑 표현법은?”… 김유정의 『동백꽃』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8.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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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글을 읽고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가슴을 두드립니다. 그 상상을 실제 상황과 맞춰보는 것은 또다른 재미이지요. 저자가 처했던 상황, 시대 배경 등에 대한 이해는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됩니다. <독서신문>이 근현대 문학 배경지를 찾는 기행을 시작합니다.

■ 시리즈 기사 연재 순서
“누가 나라를 뺏기라고 했나”... 문학기행 ① – 조정래의 『아리랑』
“생명의 땅 평사리는 인간의 탐욕을 나무라지만”... 문학기행 ② – 박경리의 『토지』
“쓸모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다”… 문학기행 ③ – 조두진의 『북성로의 밤』
“절대 고독에서 만난 반가움과 사랑” 문학기행 ④ – 변경섭의 『자작나무 숲에 눈이 내린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문학기행 ⑤ – 심훈의 『상록수』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 문학기행 ⑥ –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
‘백마 탄 초인’은 온 걸까… 문학기행 ⑦ – 이육사의 『광야』

문학촌에 자리한 ‘김유정기념전시관’ 내부 [사진=플랫컴]

춘천하면 닭갈비, 닭갈비하면 춘천이다. 춘천에 닭갈비가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1960~70년대에 미군 부대에 납품하기 위해서 춘천에 도계장과 양계장이 많이 들어섰다. 미군의 식량 보급을 위한 목적이었던 셈이다. 또 춘천이 서울과 가까워 대학생들의 MT 장소로 주목받았는데, 돈 없는 대학생들이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닭고기였다. 닭갈비는 선술집에서 숯불에 굽는 안주로 인기가 많았다.

여기에 ‘문학적인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춘천의 대표적인 소설가는 김유정이다. 그는 1908년에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대표작 『동백꽃』은 자신의 고향인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마름의 딸 ‘점순’과 소작인 아들 ‘나’의 순박한 사랑을 토속적 해학을 가미해 만든 농촌 소설이다. 소설에는 투박하면서도 풋풋한 열일곱 동갑내기의 사랑을 이어주는 역할로 닭이 등장한다.

1936년 5월 『조광』에 발표된 김유정의 『동백꽃』 [사진=플랫컴]
문학촌에 자리한 ‘김유정이야기집’ 내부. ‘점순’이 ‘나’에게 감자를 건넨다.  [사진=플랫컴]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즈 집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수탉과 쌈을 붙여놓는다. 나는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라서 (중략) 나뭇지게도 벗어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막대기를 뻗치고 허둥지둥 달겨들었다. - 김유정 『동백꽃』 中

『동백꽃』은 1936년 5월 잡지 『조광』에 발표된 작품이다. 향토색 짙은 농촌을 배경으로 인생의 봄을 맞아 성장해가는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해학적으로 그렸다. 당시 발표된 대부분의 농촌 소설이 대중을 계몽하고 사상을 표출하기 위한 도구였다면, 김유정은 자신의 체험을 오롯이 녹여 실감 나면서도 사실적으로 농촌의 생활상을 묘사했다.

주지하다시피 김유정의 소설은 ‘향토’와 ‘해학’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된다. 특히 『동백꽃』은 시골 특유의 정취가 김유정의 재기 발랄한 문체와 결합하여 독특한 정서를 자아낸다. 많은 학자의 지적처럼, 김유정은 마당극이나 탈춤, 판소리 등에서 볼 수 있는 어조를 소설로 가져와 존재의 모순을 드러낸다. 김유정이 감칠맛 나는 속어와 눙치는 어법으로 당시 농촌의 곤궁하지만 정이 넘쳐나는 풍광을 천연덕스럽게 판소리처럼 들려준다는 것이다.

‘김유정이야기집’에 전시된 『동백꽃』 단행본들 [사진=플랫컴]

송재익 광주양산초등학교 교사는 “김유정만이 가진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웃음을 안겨준다”며 “문학 교과서에서도 김유정 소설의 특징을 설명할 때 해학성이 빠지지 않는다. 김유정 소설은 그 웃음 뒤에 감추어진 참뜻과 속뜻을 캐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동백꽃』은 여자인 점순이가 남자인 ‘나’에게 적극 구애를 하는, 일반적인 남녀 관계의 역할이 뒤바뀐 상황이 웃음을 유발한다. 또 마름집의 딸이 소작농의 아들을 좋아하는 일,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는 어리숙한 사내아이에게 끊임없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여자아이를 보고 독자는 웃게 된다. 곧 상식에서 벗어남으로 웃음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

김중신 수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김유정의 세계 인식의 방법이나 태도는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 감각이기보다는 충동적이고 정서적인 현실 감각을 보이며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희화적인 해학미가 넘쳐나고 있다”며 “등장인물들의 우직하고 엉뚱한 행동, 주인공으로 하여금 상대를 앞에 놓고 천연덕스럽게 눙치게 하는 서술자의 역할, 독자로 하여금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반미학적인 비어와 속어 등으로 형상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김유정생가 [사진=플랫컴]

김유정의 독특한 언어 구사력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또 김유정의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말에 대한 애정도 알 수 있다. 임무출 박사의 책 『김유정 어휘 사전』(박이정)에 따르면, 김유정의 소설 31편의 작품 속에는 8,299개의 표제어가 등장한다. 그중에 토박이말이 6,895개나 되는데, 이는 전체 표제어의 83%나 차지한다. 이러한 사실은 김유정이 그 어느 작가보다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음을 입증한다.

오, 우지마, 우리 아가야, 하고 그를 얼싸 않으며 뺨도 문태고 뽀뽀도 하고 할 수 있는, 그런 큰 행복과 아울러 의무를 우리는 흠씬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 김유정 『애기』 中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뽀뽀’라는 낱말이 김유정의 소설 속에서 처음 등장한다는 것이다. 홍윤표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일회용 입맞춤의 소리인 ‘뽀’가 연속적인 입맞춤의 소리인 ‘뽀뽀’로 되면서 하나의 의성어로 자리 잡고 이것이 ‘뽀뽀’란 명사로, 그리고 여기에 ‘하다’가 붙어 ‘뽀뽀하다’란 동사까지 생겨난 것”이라며 “이 ‘뽀뽀’란 단어는 1939년에 김유정이 쓴 ‘애기’라는 작품에 처음 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학촌에 자리한 ‘김유정이야기집’ 내부 [사진=플랫컴]

김유정의 독특한 문학 세계가 궁금하다면 김유정문학촌으로 오면 된다. 2002년에 개관한 김유정문학촌은 강원도 내 최초로 ‘문학진흥법’에 의한 문학관으로 등록됐다. 이순원 김유정문학촌장은 “한국에 참으로 많은 작가분들이 계시지만, 그중에서도 김유정 선생을 우리는 ‘영원한 청년작가’라고 부른다”며 “(김유정문학촌은) 한 청년작가가 이루어낸 문학적 유산”이라고 말했다.

문학촌에는 김유정의 생애와 연대별 작품집, 사진과 서한 등의 관련 자료들을 만나볼 수 있는 ‘김유정기념전시관’ 및 ‘김유정이야기집’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김유정생가, 민속공예 체험방 등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생가는 김유정의 조카 김영수씨의 기억과 마을 주민의 증언을 바탕으로 고증을 통해 2002년 복원됐다. 체험방은 한지, 한복, 도자기, 민화를 주제로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유정상 [사진=플랫컴]

또한 1990년 제정된 김유정문학상은 창작 활성화 및 향토문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김중혁, 김애란, 이장욱, 김영하, 황정은, 한강, 편혜영 등의 작가들이 상을 받았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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