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가 된 법조인 윤재윤의 『잊을 수 없는 증인』
인문학자가 된 법조인 윤재윤의 『잊을 수 없는 증인』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8.05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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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다시 법조인 전성시대이다. 판사를 지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검사 출신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조만간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전 총장과 최 전 감사원장은 야당 후보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두 법조인이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가 될 것이라고 여겼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법관과 국무총리, 한나라당 총재를 역임하며 세 차례나 대선에 출마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이회창 후보 역시 대쪽 판사로 불릴 정도로 법조인으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었다.

법조인은 어떤 인물들인가. 법의 세계에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법이 악인을 심판할 것이라는 기대는 종종 무너진다. 흉악범의 죄가 명백함에도 그에 상응하는 조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건조하게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는 법관의 모습은 얄궂다.

최근 나온 책 『잊을 수 없는 증인』(나무생각)은 법관 30년, 변호사 10년 등 40년간 법조계에 몸 담고 있는 윤재윤 변호사가 수많은 재판을 경험하면서 기록한 소회를 담은 에세이다. 그는 2년 전 ‘잘남’이 아니라 ‘나다움’을 얘기하며 곁눈질 하지 않고 사는 법을 담은 『소소소(小素笑), 진짜 나로 사는 기쁨』 이란 책을 펴낸 바 있다. 이번 책 역시 가볍게 읽기에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은 결코 가볍게 되지 않는 책이다.

저자가 느낀 재판장은 ‘의(righteousness)’보다 ‘정의(justice)’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곳이다. 그에게 ‘정의’는 법과 판결같이 곧고 정확하며 합리적인 올바름을, ‘의’는 친절, 박애, 관용 등 인격의 질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법의 현장에 서면 회의감과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한다. 책은 삶의 본질 깊숙한 곳을 꿰뚫어보는 통찰과 사람을 향한 겸허한 시선이 담겨있다.

저자는 정의와 공정을 위해 진행한다는 재판이 실은 삶의 진실에 얼마나 다가설 수 있을지 끊임없이 묻는다. 재판장으로 참여한 민사재판에서 직장 동료였던 두 남녀가 서로를 고소한 사건이 대표 사례로 제시된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성폭행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남자는 여자가 거짓 소문을 퍼뜨려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역시 같은 손해배상 청구를 요청했다. 판사 시절 저자는 그들 자신의 주장 근거를 제대로 대지 못해 각각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재판의 결과에 따라 여성에게는 성폭행 사실이 부정되고, 남성에게는 이를 인정된 꼴이 됐다.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이 법적 판결은 사건의 진실과 별개가 됐다. 이 외에도 법이 진실을 외면하는 일들은 숱하게 일어난다.

그는 “제도적 불완전함과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법적 사실과 진실이 차이가 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며 “이는 법적 제판제도의 한계다. 이런 이유로 재판 경험이 쌓일수록 법과 재판제도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절감하게 된다”고 술회한다. 또한 “무정하고 획일적인 법으로 복잡하고 깊은 인간사를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거친 일인가”라고도 말한다.

평소 동정심과 인간애가 많았다고 자부했지만, 피고인으로 기소된 어떤 이들에게는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갱생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중증 알코올 의존자나 마약 중독자, 상습 범죄자에게는 그 인생의 가치를 이분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인간의 가치는 능력이나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존엄하며 고유한 가치가 있음을 저자는 법의 현장에서 거듭 확인한다.

‘소년자원보호자제도’와 ‘정상관계 진술서’ 양식을 만든 것은 법의 허술한 틈새를 매워보려는 노력이었다. 소년자원보호자제도는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범에게 부모 등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가 있어도 제대로 보살필 수 없을 때 법원이 위촉한 지역사회 봉사자들과 소년범을 연결하는 일대일 멘토링 서비스다. 정상 관계 진술서 양식은 피고인이 직접 가족관계, 직업, 재산, 장래 계획 등을 자유롭게 작성하고, 이를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해 법관이 피고인에 대해 보다 자세한 사정과 환경을 알기 위해 만든 것이다. 저자가 만든 이 양식은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식재판 절차의 일부로 자리잡기도 했다. 저자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그가 가진 심연의 한쪽 가장자리를 스쳐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그에 대한 혼란과 끊임없이 싸웠음을 고백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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