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독서인권] ‘장애인전용도서관’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그런 게 있나요’ “겨우 발 뗀 정도”
[특별기획-독서인권] ‘장애인전용도서관’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그런 게 있나요’ “겨우 발 뗀 정도”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7.2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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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장애인 전문 도서관이 들어선 건 2009년 국립중앙도서관에 국립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가 들어서면서다. 도서관법이 개정되면서 지금의 장애인도서관이 개관한 건 2012년. 이후 줄곧 국립중앙도서관 하위 기관이었다가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1차 기관으로 분리·독립됐다. 장애인 전용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에 비장애인은 “우리가 그 정도까지 됐나”고 자긍심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 이는 ‘겨우 이 정도 수준“이다. 사실 불과 3년 전에야 비로소 장애인도서관이 독립된 신분을 가질 정도로 그간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독서에 무관심했다. 그마저도 독립청사를 갖지 못해 아직 국립중앙도서관에 세 들어 사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존재를 알릴 필요성이 있지만, 홍보 예산은 0원. 문체부 1차 소속기관으로 변경된 뒤에도 운영예산은 증액되지 않았고, 인원은 2명(총 20명) 증원되는 데 그쳤다.

시각장애인 이일호 연세대 연구교수는 그런 무관심을 절실히 경험한 인물이다. 좋은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장애 이해도가 낮은 선생님과 ‘다름’을 배척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낸 후 젊은 패기로 법대에 도전했지만, 그곳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반 서적을 점자나 음성화된 ‘데이지 도서’화하기 위해서는 원본 텍스트 파일이 필요한데, 학부 때 교수님들께 부탁하면 늘 “저작권 때문에 곤란하다”는 거절의 답을 받았다. 취미 독서는커녕 학습권마저 크게 저해 받았다.

시각장애인의 독서는 비장애인과 다른 결을 지닌다. 비장애인에겐 자기 결심 부족이 독서의 가장 큰 걸림돌이지만, 독서에 열망이 있는 장애인에겐 도서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보고, 들을 수 없어 독서 정보가 부족한 장애인들은 책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교수는 “시각장애인이 책을 찾기 위해 책 제목이 아닌 ‘소설’ ‘장편’ ‘시’ 등의 검색어를 입력한다”며 “비장애인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토로한다. 설령 보고 싶은 종이책이 있다 해도 오디오북이 있는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확인해야 하고, 설령 있다 해도 소리가 기계음이라면 독서가 쉽지 않다. “기계장치는 어디를 강조해야 하는지, 어디서 띄어읽기를 해야 하는지,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에 소극적인 태도도 아쉬움이 많다. 장애인을 위한 데이지도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자 파일 형태의 원본 파일이 있어야 하는데, 관련 내용을 이해하고 자료 제공에 적극적인 출판사가 많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의 도서 접근은 자연스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청각·발달 장애인이 시각장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것은 더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장애인 전문 도서관 36곳 중 청각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은 3곳, 나머지 33곳이 점자도서관으로, 청각·발달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극히 제한적이다. 공공도서관의 경우 전국 1,134여곳 중 장애인 코너를 갖춘 도서관은 125곳, 자료실을 갖춘 도서관은 48곳이다. 다만 상황이 열악해 작은 공간이나 별도의 테이블 하나를 둔 곳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장애인 독서 진흥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부터 출타가 어려운 장애인에게 책을 배송해주는 ‘책나래’ 서비스가 시행됐고, 문해력이 낮은 청각장애인에게 책을 쉽게 설명해주는 ‘대면낭독서비스’도 선을 보였다. 지난 1일에는 요청받은 책을 3일 내로 디지털음성도서로 제공하는 ‘3일드림’ 서비스도 시작했다. 그간 장애인들이 호소했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원하는 보조 도서를 제때 제공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를 통해 상당 부분 어려움이 해소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해결해야 할 사안은 차고 넘친다. 현재 데이지도서 요청을 받으면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되어있는 책을 기반으로 데이지도서를 제작하는데, 종이책과 달리 전자책 납본율이 저조하다. 출판사에 요청을 해도 데이지도서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자료를 받기까지 평균 일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그나마 늦게라도 제공해주면 다행이지만 납본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파일 형식도 문제다. 유럽의 경우 데이지 도서로 만들 수 있는 텍스트 형태의 파일이 아니면 전자책을 유통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지만 국내는 그림으로 인식되는 PDF파일 등도 제약 없이 전자책으로 유통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립장애인도서관 관계자는 “유럽의 경우 전자책 등록 양식이 정해져 있다. 그림으로 인식되는 PDF 파일 등은 애초에 전자책으로 등록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국내의 경우 특별한 제약이 없다. 또한 시각장애인이 주로 사용하는 기기인 ‘한소네’(점자정보단말기)는 EPUB 파일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며 “올 하반기에는 이런 인증작업에 공을 들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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