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를 그리워하며
뻐꾸기를 그리워하며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1.07.1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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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건강에 좋다는 먹거리에 관심이 높다. 이는 필자뿐만이 아닌 듯하다. 건강에 좋다는 어느 물질 및 음식 등이 뉴스에 보도만 되면 시중에서 불티나듯 팔리곤 한다. 이는 아마도 우리 몸이 탁한 공기, 중금속 등의 유해 물질에 오염되어서인가 보다. 그것을 해독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하물며 혈액까지 세척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당뇨, 암 등이 사실은 혈액이 탁해져서 발생하는 질병이란다. 그러고 보니 몸 안의 독소를 음식과 약에 의지해야 하는 현대인들이기에 너나없이 건강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가 보다.

우리 조상들은 굳이 해독 작용을 하는 약이나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육체 스스로가 병을 이겨내었다. 이를 현대인에게 적용하면 약 없이도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재미나는 현상인 것이, 지난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난으로 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일상인데도 배변량은 지금보다 배로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푸성귀를 먹었다는 방증이다. 일례로 조상들의 배변량은 현대인들 보다 월등히 많았단다. 당시 섭생하는 음식이 채식 위주여서인가 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인들은 육식과 인스턴트 음식, 패스트푸드 등에 길들여져서인지 대변의 양이 많을 수가 없다는 것이 상식이기는 하다. 아무튼 음식문화 발달은 인류 문명의 혜택이기도 하다.

며칠 전 마을 호숫가를 지나치다가 수변 공터에 갈대를 이식하는 인부들을 대했다. 이곳 둘레 길을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의 정서를 배려한 조치이련만 왠지 아쉽다. 호숫가에 생장하는 갈대도 운치가 있겠으나 개인적 생각으론 그곳에 보리밭이나 밀밭을 조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 밖만 나서면 보리나 밀이 누렇게 익어가는 정취에 한껏 취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면 지나칠까. 이는 어린 날 흔히 보아왔던 보리밭, 밀밭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알이 통통하게 밴 보리가 익는 6월이 오면 보리밭에 날아와 우는 뻐꾸기 울음소리마저 더욱 처연하게 들렸다. 너나없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경찰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잠시 시골에서 살았다. 이때 겪은 어린 시절 일들은 아직도 빛바래지 않은 채 오롯이 심연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 황금 물결을 이룰 즈음이다. 짓궂은 사내아이들은 보리밭, 밑 밭에서 서리한 이삭 등을 입술이 까맣도록 구워 먹곤 했었다. 그 시절, 우리들에겐 유일한 놀이터가 산과 들녘이었다. 대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며 꿈을 여물게 하였다. 이때 필자 같은 경우 자연이 곧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자연을 대하며 생명의 소중함, 경이로움을 체득하기도 했었다. 이에 반하여 요즘 어린이들은 학원 순례에 바빠 자연과 접할 기회가 드물다. 이런 어린이들이 훗날 어린 날 추억을 그 무엇으로 가슴에 간직하게 될지 괜스레 걱정스럽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느라 보리밭에 몸을 숨기노라면 보리 이삭의 까끌한 까끄라기가 여린 피부를 심히 자극하곤 하였다. 보리가 수확하는 절기를 흔히 망종(芒種)이라고 이른다. 망(芒)은 까끄라기가 있는 작물이 수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벼, 보리, 밀이 까끄라기가 있는 농작물 아니던가. 또한 24절기 가운데 9번째인 망종은 태양의 황경(黃經)이 75도에 이르는 때로서 음력으로 치면 대개 5월 초에 이른다. 양력으론 대략 6월 초순을 의미한다. 여기서 망은 보리, 밀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작물이 수확할 만큼 영글었다는 뜻이다. 종(種)은 벼나 기장 같은 곡식을 심으라는 의미가 아니던가.

어린 날 보아온 보리밭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보리밭의 황금 물결 속에 몸을 숨기며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이 요즘 따라 불현듯 그립다. 그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할까? 삶 속에 잊힌 게 어찌 어린 날 친구뿐이랴. 어느 사이 보리밭에서 온종일 우짖던 뻐꾸기 울음소리도 그동안 삶에 떠밀려 까맣게 잊히었다.

해마다 초여름이 찾아오면 그 시절 보아왔던 누런 보리밭과 구슬프게 우짖던 뻐꾸기 울음소리가 못내 그립다. 이렇듯 녹우(綠雨)가 가슴을 적시며 쏟아지는 날엔 더욱 그렇다. 허리 굽혀 보리를 베는 농부들이 구성지게 부르던 노동요도 듣고 싶다. 먹거리의 풍요 탓인가. 기름진 음식에 식상했다. 흰쌀밥보다 통곡식이 든 잡곡밥을 선호한다. 지난날 입안에서 겉돌고 먹고 돌아서면 이내 허기졌던 보리밥 역시 요즘 따라 새삼 그 맛을 음미하고 싶다.

새카만 꽁보리밥과 매콤한 고추장만으로도 한 끼를 잇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 때는 꽁보리밥을 먹으면서도 훗날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만은 놓치지 않았던 우리 세대였다. 이즈막은 온갖 산해진미로 배를 채우련만 가슴은 왜 이리 구멍이 송송 뚫린 듯 허허로울까. 어디 이뿐이랴. 안데르센처럼 펜 끝에 달빛을 묻혀 글을 쓰겠노라는 평소의 꿈도 자주 희석되곤 한다. 하지만 어린 날 듣던 뻐꾸기 울음소리와 보리밭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동심으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든다. 다소 낡아 헤지긴 했으나 이 순수한 감성이 가슴에 살아 있는 한 아직도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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