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철학이 없고 신하는 간교하다”…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왕은 철학이 없고 신하는 간교하다”…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 황현탁
  • 승인 2021.07.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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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⑲]
[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⑱ “글을 끝내면 사랑을 나눈 뒤의 공허함이…”,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
⑰ 유길준의 『서유견문』, "파리의 청초·화려함은 런던·뉴욕에 비해…"
⑯ “여행이 끝나지 않길 바랄 때도 있지만, 멈출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⑮ “어진 이는 사람에게 말(言)을 주지만...” 명나라 사신 동월의 『조선부』
⑭ “명석한 사람은 많아도, 너그러운 사람은 적다”... 신유한의 『해유록』
⑬ “예술이라는 하늘에는 새 별들이 계속 나타난다"-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⑫ “평화와 재치, 정직은 절대 양보 못하는 가치”-마거릿 캐번디시의 『불타는 세계』
⑪ 명나라에 조선선비역량 뽐낸 조선관리... 최부의 『표해록』
⑩ “정의로운 것은 어디를 봐도 없다”... 린지의 『아르크투루스로의 여행』
⑨ “사랑을 위해서는 불속에도 뛰어들겠다” 아이헨도르프의 『어느 건달의 방랑기』
⑧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칼을 들이밀며” - 카잔차키스 『일본중국기행』
⑦ “고종은 진보적이지만 나약하고, 민비는 지적이지만 후계 두려워해”
⑥ “조선 관리들, 중국 사대주의뿐 바깥 물정에는 관심 없어”
⑤ “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혜초의 『왕오천축국전』
④ 운명에는 겸손, 삶은 치열하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황현탁의 책으로 읽는 여행]
③ 속좁기로는 1등인 그리스 신들-호메로스의 『일리아스』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유토피아’(Utopia)란 단어는 영국의 재무장관, 하원의장, 대법관이자 상원의장인 상서경(Lord Chancellor)을 역임했던 토마스 모어(1478~1535)가 쓴 ‘가상의 이상향인 섬나라 유토피아’(옛 이름은 Abraxa)의 정치, 사회제도, 풍습, 종교 등을 묘사한 공상소설 『유토피아』에서 연유한다. 그는 1515년 외교관으로 플랑드르(벨기에, 네덜란드 지역의 옛 지명)에 파견되었을 때 본편이라 할 수 있는 이상향을 소개하는 2편을 썼고, 귀국 후 (영국과 유럽의) 현실을 비판하는 1편을 쓴다. 이 원고는 영국의 모어 집에서 생활하였던, 플랑드르 인문학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에 의해 1516년 『최상의 공화국과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 란 제목으로 라틴어로 루뱅에서 출판되었다.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2편은 모어가, 자신과 에라스무스의 친구이자 플랑드르 앤트워프시의 관리인 피터 자일스(Peter Giles/Gillis)가 유토피아에서 5년간 살다 온 포르투갈 사람 라파엘 히드로다에우스(Raphael Hythlodaeus)로부터 들은 ‘유토피아의 제도와 실상’을 옮겨 적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라파엘은 이탈리아인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 1454~1512)의 탐험대에 세 번 참가하였는데, 마지막 탐험에서 귀국하지 않고 신대륙에 남아 원주민들과 탐험을 계속하며 찾은 곳 중 한 곳이 바로 ‘유토피아’다.

1편은 모어와 피터가 사유재산제도, 전쟁, 사회악과 형벌, ‘경작지에 울타리를 쳐 양떼 목장으로 바꾸는 인클로저’(enclosure)의 폐해, 종교 등에 대해 질의하면 라파엘이 답하는 대화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모어가 피터에게 보내는 ‘원고의 잘못된 부분 확인 및 출간가능여부 문의’를 요청하는 편지, 피터가 모어의 친구이자 유명정치인인 제롬 버스레이덴(Jerome Busleyden)에게 ‘책의 추천사를 부탁’하는 편지, 그리고 라파엘이 전해주었다는 유토피아 알파벳과 4행시, 라틴어 번역문이 덧붙여져 있다.(라틴어 완역본에는 더 많은 편지가 수록되어 있음)

1518년 모어는 자신이 책 내용을 재감수하고, “세상에 없는 섬, 상상의 도시, 물 없는 강, 주민 없는 통치자, 이상한 이름의 유토피아”와 같은 허구의 연방국가(commonwealth) 이야기를 쓴 이유를 설명하는, 피터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까지 덧붙여 바젤에서 재출간한다. 영문 번역본은 모어가 처형된 후 16년이 지난 1551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국내에서 번역․출판된 『유토피아』는 라틴어 원본이나 다양한 영역본을 저본(底本)으로 한 것들이어서, 『유토피아』 본편이라 할 수 있는 1편과 2편 외에 주고받았던 편지, 2편 ‘유토피아’ 설명을 위해 번역자가 덧붙인 소제목을 붙인 것 등 여러 판본이 있다. 이 글은 『존재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나라 유토피아』(권혁 옮김)와 팽귄북스의 『THOMAS MORE Utopia』(2012)를 참조하였다.

<영국과 유럽사회 비판의 예> : 1편(대화체)

공직자들은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노예’처럼 일하고 있으며, 왕들은 자신의 왕국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다스릴 것인가 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왕국을 차지하는데 더 골몰하고 있다(전쟁과 영토 확장). “절도범을 처형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가혹한 처벌대신 생계를 꾸릴 수단을 제공하여 궁핍에 빠지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가혹한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귀족, 지주, 수도원은 농사보다 이익이 많이 생기는 양모생산을 위해 경작지는 물론 주택지까지 목장으로 만들어 농민들을 쫒아내 ‘양이 농민을 잡아먹도록 했다’(인클로저 비판).

선술집, 매음굴, 도박, 카드놀이, 주사위놀이, 쇠고리던지기 등 해악을 끼치는 풍속과, 노동을 하지 않는 부자들이 사재기와 독점의 이득을 취하는 것은 도둑이나 부랑자를 만들기 때문에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소한 법 위반을 정의 훼손으로 처벌하거나 모든 범죄를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위험하다(적절한 형벌), 범죄는 처벌하되 생명은 존중해야 하며, 로마인들은 중요한 범죄자들에게 광산이나 채석장에서 평생 노역에 처하도록 하였다(일자리, 음식을 제공받으며 국고 적립에도 기여).

“행복한 국가는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공부할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데”(commonwealth will only be happy when either philosophers rule or rulers philosophize, 플라톤의 『국가』 5권) 왕은 철학이 없고 신하들은 간교하다, 왕은 재산을 늘리기 위해 화폐가치를 조절하고 특별세를 징수할 구실을 찾거나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백성들이 가난하고 궁핍하도록 해 우둔하고 복종적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백성들의 안녕이 아닌 자신의 안위를, 백성의 생활 수준을 떨어뜨려 범죄를 억제하려는 생각을 가진 위엄이 없는 왕들이 있다.

<유토피아의 실상> : 2편(라파엘의 소개)

유토피아는 초승달(crescent moon) 모양의 섬으로, 동일한 언어와 법률, 관습, 제도를 갖춘 54개의 대도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도는 ‘아마우로툼’이다. 토지는 재산이 아닌 경작할 땅이며, 집은 추첨을 통해 분배되고 10년마다 바꾼다. 부족한 물품은 공무원에게 요청하면 무상으로 받는다. 투표를 통해 관리를 선출하며 회의와 토론을 통해 공공문제를 결정한다.

누구나 농사일을 해야 하며 농사는 어린이가 배워야 할 필수과목이다. 하루 여섯 시간 일 한다(실직과 과로, 빈둥거리는 사람 없이, 오전 세 시간(점심 두 시간), 오후 세 시간 근로). 공동(농촌에서는 개별가구별)으로 식사하며 육아도 공동체가 책임진다. 연장자는 존중받으며 그들은 젊은이를 배려한다. 신청하면 여행 허가를 받을 수 있으며 교통편과 노예인 안내인이 배당되고 짐은 가져갈 필요가 없다. 금은(金銀)은 요강이나 노예의 쇠사슬, 죄인의 귀걸이, 반지, 목걸이, 금관 등 수치(羞恥)의 상징에 사용된다. 실용학문을 숭상하며 천문학에 정통하다. 모든 영혼은 영원불멸이며 현세에서의 선행과 악행에 따라 내세에서 보상이나 벌을 받게 된다. 고결한 쾌락만이 행복이라 여기며 실체 없는 쾌락(예: 좋은 옷), 헛된 쾌락(예: 도박)을 배척하고 건강을 최고의 쾌락으로 여긴다.

토지는 그다지 비옥하지 않으며 기후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지만 균형 잡힌 식사로 열악한 기후에 대한 저항력을 길렀으며, 세심한 경작을 통해 토지의 척박함을 극복하였다(모든 곡물과 가축생산 기록을 경신했으며 평균수명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질병 발생률이 가장 낮다), 그들은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여행을 통해 여러 나라를 잘 알고 있는 외국인 여행자를 적극 환영하며, 금은이 아닌 철(鐵)만 수입한다.

노예는 유토피아 죄수들, 외국의 사형수들, 빈한한 외국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안락사가 공인되어 있으며 결혼 선택은 냉정하되 신의성실의무를 다해야 한다. 중요범죄에 대한 형벌은 처형 대신에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유토피아에는 법률이 거의 없으며, 동상을 세우는 등 선행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도 있다. 남녀 모두 정기적인 군사훈련을 받고 있으나 스스로의 방위, 우방국에서의 적군 축출, 독재정권 희생자 해방 등 인류애를 위한 경우 외에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하는 경우 대부분 용병들이 대신). 다양한 종파가 공존하며 교회당에는 특정한 신의 형상은 만들어 놓지 않고 자유롭게 신을 상상하면서 예배를 본다. 매달 첫날과 마지막 날, 매해 첫날과 마지막 날에 종교적인 축제를 개최하며 죽음은 즐겁게 맞고 장례는 유쾌하게 치른다.

라파엘은 2편 설명 마지막 부분에 “나는 유토피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국가일 뿐만 아니라 공화국이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생각한다”(I hold to be not just the best but the only one that can rightfully lay claim to that title-commonwealth)라고 말한다. 이어서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이 공공의 소유로 되어 있으므로 공공의 창고가 가득 차 있는 한 결핍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 공정한 자신의 몫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하거나 헐벗은 사람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유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누구나 부자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나라에서 즐거움, 마음의 평화, 불안으로부터의 해방보다 더 큰 재산이 있을까요?”라고 체제의 우월함을 강조한다. 또 “돈은 물론 돈을 벌겠다는 욕망도 한꺼번에 제거되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회문제들이 해결되었으며 수많은 범죄들이 사라졌습니다.”라고 얘기하면서, “유토피아의 생활방식은 문명사회를 위한 가장 행복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제도입니다”라고 한다.

모어는 마지막에 라파엘이 설명한 내용과 관련해 “법률과 관습들 중에 우스꽝스러운 것들이 많았다”며 “화폐가 없는 공유 제도를 사회전체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합리했다”고 지적한다. “그의 모든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고 자신의 의견도 첨언한다.

우선 ‘유토피아’란 말을 ‘이상향’으로 대체시키면서 피상적으로 이해해왔는데, 그 내용을 보다 상세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는 모어가 ‘라파엘’이라는 탐험가의 말을 빌려 영국사회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 스스로 밝혔듯이 “우스꽝스럽거나 불합리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왜 굳이 포함시켰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셋째로 ‘유토피아’라는 공화국을 영어로 ‘commonwealth’로 표기하고 있는데, 나는 그 단어를 ‘영연방국가’를 통칭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어, 정치사회학에서의 의미는 무엇이며, 당초 라틴어표기는 정확히 어떤 의미였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번역과 관련하여 내가 읽은 번역본에서 의역한 것인지는 모르나, 2편 마지막에 “유럽에서도 그들의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싶다”라는 부분을 영문판에서 찾아보니, ‘wish for than expect to see in our own cities’로 되어 있어 ‘영국 내 다른 도시에서 (그런 사례를)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는 의미정도가 맞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용병제도, 노예제도, 16인의 대가족제도, 공유경제 하의 근로의욕 등 시대에 맞지 않거나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런 사회가 없었던 것이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도 없고 영속할 수도 없는 상상의 세계일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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