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계절의 반복을 활용하는 ‘제철 육아’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계절의 반복을 활용하는 ‘제철 육아’
  • 스미레
  • 승인 2021.07.1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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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계절마다 반복하는 것들이 있다. 서울 아파트에 살던 때, 그러니까 아이 두 살 경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2월 말, 겨울눈을 관찰하며 한 해를 시작한다. 보드랍게 솜털이 난 것, 단단한 비늘 같은 것 등 감촉을 느껴본다. 날이 풀리면 골목을 걷거나 뒷산에 올라가 꽃구경을 했다. 
담장마다 소담한 목련, 길가의 벚나무, 이름 모를 들꽃들이 어찌나 어여쁜지 벚꽃 명소, 놀이공원 장미 축제는 잊힌 이름이 되었다. 아이와 꽃잎을 만져보고 쑥이나 냉이의 향기도 맡아본다. 

4월이면 꽃잎을 압화한 카드를 만들고 딸기와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는다.
첫 수확은 늘 딸기다. 올망졸망 붉은 열매 두 알을 맛본 아이는 발그레한 낯빛으로 그랬다. “따뜻하고 맛있어.” 초여름 햇빛이 묻어 따스하고 달콤한 딸기의 맛. 네 유년의 맛이 꼭 그랬으면, 그런 생각 곁으로 여름이 스민다.

여름엔 습도와 강수량을 관찰한다. 뙤약볕에 집기들을 내어 말리며 지금 남반구 호주는 겨울이겠구나, 그런 이야기를 한다. 방울토마토가 올망졸망 익는 것도 여름의 일. 물 주고 잡초 뽑는 건 번거롭지만, 그 끝에 얻는 상큼한 여름의 맛이 아이의 수고를 보상한다. 적은 소출이지만 여름내 고물고물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뻤으니 수확은 덤이다. 
몇 해간 마당 식물들의 한살이를 지켜보며 아이는 토마토 같은 한해살이 식물과 백합 같은 여러해살이 식물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풀에서 열리는 토마토는 채소이고 나무에서 열리는 무화과는 과일임을 이해한다.

우리 집에 가을은 색으로 온다. 아이가 고른 고운 낙엽을 액자에 넣어 한 철 인테리어 용도로 쓴다. 이 무렵 산수국이나 천일홍은 말려도 색이 곱다. 언젠가 들국화를 압화해 큰 액자에 넣었는데 그 또한 예뻤다. 
솔방울, 꽈리, 감, 도토리 등 열매를 집 안 곳곳에 두기도 한다. 특유의 색감 탓인지 가을에 난 것들이 품은 가을볕 덕분인지, 집 안 온도가 성큼 올라간다. 
솔방울 가습기는 아이가 특히 재미있어하던 소품. 솔방울을 잘 닦아 적셔두면 머금은 물기를 증발시키면서 활짝 펴지는데, 가습 효과가 있을뿐더러 바라보는 마음도 편안하다.
무, 감자 등을 심는 것도 가을의 일이다. 늦가을, 흙을 파헤치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보물에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좋은 날~ 무를 뽑은 날~” 
아이는 제 종아리만 한 무를 마이크처럼 붙잡고 노래를 불렀다. 이런 날 무전을 부쳐 먹으며 무에 관한 책을 읽어주면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무를 뽑고 나면 마당이 조용하다. 겨울이다. 마당 나무에 새 모이통을 걸어두는 일로 겨울은 시작된다. 소문이 났는지 배고픈 산새 손님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 되었다. 시린 손 호호 불며 마당 소나무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겨울 낭만이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는 추운 밤이면 아이스크림 틀에 물이나 주스를 넣어 내놓았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자연이 만든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환호했다. 
돋보기를 들고 나가 눈 결정을 관찰하고, 뒷동산에서 썰매를 타는 것도 신나는 겨울 활동이다. 눈과 썰매 사이의 마찰열로 인해 눈이 살짝 녹아야 썰매가 더 잘 나간다는 것을 아이는 해마다 익힌다. 모르려야 모를 수 없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생생한 추억들이 쌓여간다.

우리에겐 이 몇 가지가 해마다 반복되는 이벤트다. 가족의 전통이랄까. 한 계절에 한 번씩 하는 일들이지만, 매년 반복했으니 각각 대여섯 번씩은 경험한 셈이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경험한 일에는 특별한 교육이나 많은 설명이 필요 없다. 아이 안에 쌓인 경험과 책이며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맞물려 스스로 깨우쳐 나가기 때문이다. 
매년 같은 경험을 해도 아이가 내놓는 말과 반응은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 해를 더할수록 깊고 풍부해진다.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스스로 발견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계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그로부터 무언가를 얼마나 느끼고 누리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 작가소개

-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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