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
[송석주의 영화롭게]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6.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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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동생 장혜정씨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혜정씨는 열세 살의 나이에 장애인수용시설에 보내져 서른이 될 때 까지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가족이지만 같이 산 시간보다 떨어져 보낸 시간이 더 길지요.

장 의원은 “나는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나서야 동생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미 지나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할 수는 있겠지요. <어른이 되면>은 바로 그 ‘새로운 시간’에 관한 영화입니다. 시설이 아닌 사회에서, 무탈하게 할머니가 되기를 염원하는 두 여성에 관한 이야기지요.

다큐멘터리 영화는 ‘기다림’을 근간으로 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원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예술이에요. 그러한 장면은 대개 감독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 속에서 불현듯 발생합니다. 혹자는 그것을 ‘영화적인 순간’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혜정씨는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하고, 스티커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고, 밥 짓기에 도전합니다. 카메라는 그런 혜정씨를 응원하듯 바라봅니다. 편집을 최대한 자제하고, 그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아내고 있지요.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피사체의 행위를 기다릴 줄 아는 것입니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혜정씨가 언니와 잠시 떨어져 친구들과 함께 MT를 가서 고기를 구워먹는 장면에 있습니다. 혜정씨와 친구들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균형이 무너지는 바람에 뒤로 넘어집니다. 이에 탁자에 있는 음식도 사람들의 배위로 다 쏟아져요. 그 순간 혜정씨는 “못 살겠네. 사람 살려! 배야!”라고 소리칩니다. 당황한 친구들은 서로에게 “괜찮아?” “안 다쳤어?” “미안해”라고 말하고요. 거기다 대고 혜정씨는 “죄송해야지!”라고 쏘아붙입니다. 이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못 살겠네!”라고 외칠 때, 우리가 거기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관심 있게 귀 기울여 준 적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조금 더 노동을 해야 해”라는 대사로 시작해서 장 의원이 동생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노동’을 통해 ‘생존’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활동이 장애인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임을 은유하는 이미지로 보여요. 며칠 전, 장애인 독서 인권 증진에 관한 문제로 만난 장 의원에게 이 장면들에 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돌봄의 사회화’를 강조하더군요. 장애인 돌봄 문제를 무조건 가족에게 전가할 게 아니라 국가가 책임감 있게 나서야 한다는 거예요. 그는 그런 나라를 만들 때까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 머리를 맞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요. 장 의원의 말처럼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동정이나 배려, 호의가 아닙니다. 그저 인간답게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 달라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누군가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하는 일이어야 할까요. <어른이 되면>은 바로 그러한 고민이 담긴 영화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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