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이는 사람에게 말(言)을 주지만...” 명나라 사신 동월의 『조선부』
“어진 이는 사람에게 말(言)을 주지만...” 명나라 사신 동월의 『조선부』
  • 황현탁
  • 승인 2021.06.18 15: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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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⑮]
[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⑭ “명석한 사람은 많아도, 너그러운 사람은 적다”... 신유한의 『해유록』
⑬ “예술이라는 하늘에는 새 별들이 계속 나타난다"-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⑫ “평화와 재치, 정직은 절대 양보 못하는 가치”-마거릿 캐번디시의 『불타는 세계』
⑪ 명나라에 조선선비역량 뽐낸 조선관리... 최부의 『표해록』
⑩ “정의로운 것은 어디를 봐도 없다”... 린지의 『아르크투루스로의 여행』
⑨ “사랑을 위해서는 불속에도 뛰어들겠다” 아이헨도르프의 『어느 건달의 방랑기』
⑧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칼을 들이밀며” - 카잔차키스 『일본중국기행』
⑦ “고종은 진보적이지만 나약하고, 민비는 지적이지만 후계 두려워해”
⑥ “조선 관리들, 중국 사대주의뿐 바깥 물정에는 관심 없어”
⑤ “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혜초의 『왕오천축국전』]
④ 운명에는 겸손, 삶은 치열하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황현탁의 책으로 읽는 여행]
③ 속좁기로는 1등인 그리스 신들-호메로스의 『일리아스』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조선부』(朝鮮賦)는 성종 19년인 1488년(명나라 연호로는 홍치원년(弘治元年)) 명나라 우서자 겸 한림시강(右庶子兼翰林侍講) 동월(董越, 1430~1502)이 명 효종(孝宗)의 조서(詔書)를 가지고 반조 정사(頒詔 正使)로 조선에 왔다가 우리나라의 ‘산천, 풍속, 인정, 물색을 둘러보고 물어보아 얻은 것’을 쓴 것이다. 『조선부』 서두에 그 스스로 ‘부(賦)’라는 것은 ‘사실을 그대로 펼쳐서 곧바로 말하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는데, 사전에는 ‘작자의 생각이나 눈앞의 경치 같은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한문문체’로 정의하고 있다. 『조선부』는 바로 동월의 ‘조선견문록’이다.

『조선부』
『조선부』

그는 부사(副使)인 공과우급사중(工科右給事中) 왕창(王敞) 등 13명과 함께, 2월 25일 압록강을 건너 3월 13일 한성의 모화관(慕華館)에 도착하여, 임무를 수행한 후 4월 5일 중국으로 돌아갔으므로 40여일을 조선에 체류하였으며, 한성에는 6일 머물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동월 일행은 압록강을 건너 의주-선천-정주-박천-안주순안-평양-봉산-평산-개성-파주-벽제를 거쳐 오가면서 견문한 내용들을 적었다. 조선부에는 각지의 자연 묘사는 물론 풍습, 의식, 연희, 생활상 등 다양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또 “사신으로 오기 전 ‘과부들이 관과 역에서 일하는 풍습이 있다’하여 나쁘고 더럽다고 생각했는데, 일하는 사람들은 관리이고 그런 풍습은 세종 때 없어졌다고 한다”라는 얘기처럼 궁금한 내용을 확인하여 기록한 부분도 있다.

『조선부』 앞부분에는 조선의 위치, 넓이, 역사, 풍속을 개관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신라, 백제, 탐라로 분리되었으나 현재는 ‘왕의 은혜를 입어’(昭代之深恩) 과거처럼 분할되어 있지 않다, 형벌로 ‘거세’(宮刑)시키지 않고 내시는 다치거나 병을 앓은 자들로 채워 숫자가 적다, 거래를 금은이 아니라 곡식과 베로 하기 때문에 탐관오리가 적다, 왕이 늦가을에 팔십노인잔치를 베풀며, 삼년상을 치른다, 재혼 출생자와 데려간 자식은 관리가 될 수 없다, 바둑이나 쌍륙 등 노름기구는 집안에 둘 수 없다는 것 등을 기술하고 있다.

천자(중국 황제)가 칙서로 건국을 허락하고 금으로 된 인장을 하사한다, 제례(祭禮)는 기자(箕子, 殷나라 상인으로 나라가 망하자 조선으로 와 기자조선 건국)로부터 전래되거나 중국에서 하는 대로 본받은 것, 살수(薩水, 청천강)를 지나면서는 수나라가 고구려를 치다 패한 곳, 평양은 기자조선 이전부터 있던 성으로 고구려로 이어져 오다가 마지막 왕 준(準)이 연(燕)나라 위만(衛滿)에게 축출되어 마한으로 도읍을 옮겼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옛 성 안에는 기자가 구획한 우물과 논밭(井田) 형상과 구조가 남아있다, 기자사당에는 ‘조선후대시조’, 조선왕조 사당에는 ‘조선시조 단군 위’라는 나무신주(神主)를 모시고 있다, 기자묘는 성 서북 기슭 토산에 있는데 석상은 당(唐)의 두건과 옷자락이다, 대동강 건너 군영과 보루는 당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할 때의 것이나 중국 기주(冀州) 것과 유사하다는 등 평양에서는 중국과 관련 있는 내용, 특히 기자와 관련된 것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고려 왕씨 4백년 도읍 개성에서는 용추폭포를 지날 때 통역사가 ‘왕이 지팡이로 쳐 떨어뜨린 용의 비늘을 보관하고 있는데 임금께 말씀드려 보여줄까’라고 물어 그만두라고 했으며, 객관에 머물면서 “봄바람은 술집 깃발 날리고, 밤 달은 관현을 비춘다”는 등 풍류에 젖기도 하고, 이성계가 국호를 바꿀 것을 청해, 천재(上)께서 ‘동이(東夷) 중에 「조선」이 가장 좋고 오래된 것(最美且最久)이라고 조서를 내렸으며’, 이후 한성으로 천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성에 도착한 후 ‘궁실의 제도나 건축물은 중화와 같다’, 천자의 사신을 맞으면 ‘임금은 몸을 굽히고 세자와 배석신하들은 좌우에서 보필한다’ ‘사신을 맞는 의례는 중화와 같고, 하사품을 내리고 조서(詔書)낭독이 끝나면 천자의 사신은 동쪽, 임금은 서쪽에서 재배하고 앉는다’, 소국의 신하인 임금이 천자의 깊고 넓은 은혜(恩之覃漙)에 사의를 표하면 사신은 ‘조정에서는 동쪽나라가 충경을 지키기 때문에 은전을 다른 나라와 같이 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한다, 임금은 사신을 배웅하여 홍례문까지 나와 말을 탄 후 돌아갔으며 숙소(태평관)로 돌아와 배석한 신하들과 차례로 만나고 나자 임금이 잔치를 베풀었다, 접대하는 방식과 연회장식은 중화의 예를 따르고 있으며 술은 멥쌀로 빚고 수수쌀은 쓰지 않는다, 태평관에서 세 번 잔치를 열며, 인정전에서의 개인 연회는 정성이 지극하다, 예가 지나친 것 같아 고치려 했으나 태평관, 모화관은 천자 조서 영접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대로 따랐다(乃知不必更張)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신과 임금의 대화중에 임금이 시구(詩句)를 주려는 것을 물건을 주는 것으로 잘못알고 여러 번 거절하자, 임금은 ‘어진 이는 사람에게 말을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금을 준다. 맹자는 천작(天爵)을 닦으면 인작(人爵)이 따라온다. 이번에 귀국하면 특별한 은혜를 입을 것이라는 것이 내가 주는 말입니다’라는 설명을 하여 웃고 헤어졌다고 적었는데, 통역은 중국어는 잘하지만 독서가 적거나 글은 많이 읽었지만 중국어가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으로 기술하고 있다.

풍속과 관련하여서는 돼지를 기르지 않고 채소밭에 울타리를 치지 않는다, 양이나 산양을 목축하는 것을 볼 수 없다, 말꼬리로 만든 망건에 붙이는 고리로 품계를 표시하는데 1품은 옥, 2품은 금, 3품 이하는 은, 서민은 뼈, 뿔, 구리, 조개껍질 따위다, 무거운 짐을 옮기는 가마는 중화의 것과 같다,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볼 때에는 쭈그리고 앉는 것이 예의이며, 머리에 물그릇을 이고도 손을 붙잡지 않는 사람이 있다, 왕이 입는 옷이 붉기 때문에 청, 적, 황, 백, 흑 중 적색을 쓰는 것을 금하고 있다, 종이를 누에고치로 만드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닥나무로 만들며 솜씨 있게 마름질하는 것을 그렇게 잘못 알고 있다, 인삼과 돗자리가 유명한데, 돗자리는 소주(蘇州) 것에 비해 좋다는 것 등을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에 그는 ‘달포 순행하고 어찌 그 진면목을 알겠는가?’라고 쓰면서도 중국 후손이 한반도로 건너와 통치했다는 기자조선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파악, 기록했으며, 의식과 제도 중에 중국과 같거나 비슷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곳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글 속에서는 한글 번역과정에서 순화했는지는 모르나, 천자의 사신으로서 뻐기는 형태의 표현들은 없었다.

중국사신의 견문록이긴 하나, ‘멀리 작은 나라에 오셨는데’(遠臨小邦), ‘마음속으로 매우 황공하옵니다’(心中甚惶恐), ‘보잘 것 없는 물건으로 뜻을 전했습니다.’(微物將意) 등 임금이 사신을 대하는 언사는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조선을 언급하면서 ‘동이’(東夷)로 표기한 곳이 몇 군데 있고 압록강이 명과 조선 양국경계에 있다(江卽華夷界限)는 문장에서처럼 ‘오랑케’란 의미가 들어간 한자(夷)를 쓰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중국문화를 아우르는 표현인 ‘화’(華)라든가, 천자의 사신을 뜻하는 ‘천사’(天使)라는 단어도 사용하고 있다. 세계 10대 대국 반열에 든 한국의 오늘에 비추어, 앞으로 어떻게 한중관계를 정립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라는 고민에 빠지기도 하였다.

동월이 사신으로 조선에 온 1488년 같은 해에, 제주도로 파견된 최 부(崔溥)라는 관리가 부친상을 치르러 고향 나주로 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 중국을 거쳐 귀국한 여정을 기록한 『표해록』(漂海錄)을 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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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2021-07-03 01:59:43
530년 전 이북지역을 답사한 예순이 다 된 사신. 학포당 은행나무가 심어진 때와 엇비슷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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