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寸志)를 하라
촌지(寸志)를 하라
  • 신금자
  • 승인 2006.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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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라일락 향기 사이로 황사바람이 몰려다니며 심술이다.
여행을 다녀온 탓에 아니, 무심한 중에 올케 언니의 허리디스크수술 소식을 듣고 전화를 했다. 시집을 갔고 교사로 재직하니 지금 시간에는 당연히 학교에 있어야할 조카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수술 때문에 휴가를 낸 것인가 물었더니 학교의 소풍날이라 일찍 퇴근한 것이란다.

 원체 가냘픈 몸인 조카가 기진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맥없이 쓰러져 있으니 오후가 되면서 출출해진 배를 참고 있었던 언니가 외려 뭐라도 차려 먹이고픈 마음에 누워서 애가 탔단다. 작년 소풍날은 김밥과 음료수가 넘쳤다. 하여 도시락 준비없이 집을 나선 조카는 점심시간에 옆 반에서 싸온 김밥을 조금 나누어 먹었단다. 점심은 누군가 챙기리란 생각에 서로 미뤘다고 쳐도 5학년의 아이들이 저희들만 먹고 마시면서 담임에게 물 한 모금 마셔보라는 인정이 없었다니 시류 탓인가.

 ‘스승의 날’이 휴업일이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해마다 오월이 되기 무섭게 스승의 치부가 드러나 지탄받는 일이 연출되다보니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엉뚱하게 빠르다. 존경심은커녕 스승을 수업료 받고 지도해주는 월급쟁이로 보는 행태가 고학년일수록 심각하단다. 일부지역 상식을 벗어난 교사의 얘기가 전체인양 보도되는 일은 사제 모두를 위해 이제 좀 지양해야한다. 무엇보다 스승을 높여 기리는‘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대서특필하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이다. 학년 초‘촌지홍역’도 결국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된 사랑을 받기 원하는 학부모들의 빗나간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학교문화도 촌지 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 젊고 신선한 교사가 계속 충원되고 있고, 받는 것이 부끄러워 예의를 갖춰서 돌려드린 사례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옳을 것이다.

 교사들은 뜻하지 않은 매스컴의 뭇매에 어수선하기도 하고 얄궂게 주변에서 그런 대우와 동정을 받는 것이 가장 곤혹스럽고 자괴감마저 들었을 수 있다. 여북하면 교육계에서 스승의 날이 부담스러워 차라리 없앴으면 하였고 마침내 휴업하기로 결정했겠는가. 교육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고 교육의 현장에서 인성의 기초와 근본이 잡혀야 하는데도 사제간 불신을 갖게 하는 일련의 일들은 교육자와 학부모들의 책임이 크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땅에서 황달을 겪는 묘목들이다. 푸르게 회복할 수 있는 물을 누가 어떻게 공급할지 학생들이 즐겨 쓰는 방식을 빌면 대략난감이다. 시급한 문제는 스승을 어려워하지 않고 공경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대안이 꼭 있어야 한다. 결국 나라의 간접자원은 자라나는 학생들이다. 그들의 정신이 건강할수록 학교, 사회, 국가가 온전히 발전할 수 있다. 더불어 그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교권을 지켜줘야 힘차고 건강하게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배움터에서 스승의 고맙고 감사함을 깨닫지 못하고 무작정 세상으로 나아간다면 그것보다 더 서글픈 일은 없을 것이다. 행으로 사회에서 다시금 좋은 스승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학창시절에 무조건 제자편이 되어서 무모한 도발에도 기를 불어넣어주던 스승에 비길 수 있으랴. 
 
 실제 촌지라는 말은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선물’이라는 아주 예쁜 말이다. 언니가 해준 오래 전 얘기다. 조카가 초교 2년생들과 교외로 나가는 시외버스 속에서였다. 반 아이가 쵸코렡 하나를 치켜들고 “누구 먹을 사람 없어?” 하고 계속 외쳐도 아무도 나서지 않기에 “선생님 줘” 하자 그 아이가 질급해서 뒤로 쵸코렡을 숨기더니 냉큼 자기 입에다 넣고 꿀꺽 삼켜버리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그 쵸코렡은 땅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운 것이라고 했단다. 그리고 품에 있던 새 것을 꺼내서 네모난 곳 하나를 툭 분질러 주었단다. 아, 촌지는 이런 것이리라.
독서신문 1404호 [2006.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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