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하늘에는 새 별들이 계속 나타난다"-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예술이라는 하늘에는 새 별들이 계속 나타난다"-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 황현탁
  • 승인 2021.06.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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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⑬]
[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황현탁

⑫ “평화와 재치, 정직은 절대 양보 못하는 가치”-마거릿 캐번디시의 『불타는 세계』
⑪ 명나라에 조선선비역량 뽐낸 조선관리... 최부의 『표해록』
⑩ “정의로운 것은 어디를 봐도 없다”... 린지의 『아르크투루스로의 여행』
⑨ “사랑을 위해서는 불속에도 뛰어들겠다” 아이헨도르프의 『어느 건달의 방랑기』
⑧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칼을 들이밀며” - 카잔차키스 『일본중국기행』
⑦ “고종은 진보적이지만 나약하고, 민비는 지적이지만 후계 두려워해”
⑥ “조선 관리들, 중국 사대주의뿐 바깥 물정에는 관심 없어”
⑤ “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혜초의 『왕오천축국전』]
④ 운명에는 겸손, 삶은 치열하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황현탁의 책으로 읽는 여행]
③ 속좁기로는 1등인 그리스 신들-호메로스의 『일리아스』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괴테는 바이마르공국의 초청을 받고 26세이던 1775년 프랑크프루트에서 바이마르로 이주한다. 괴테는 어린 영주 칼 아우구스트와 그를 섭정하던 어머니 아나 아말리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정무에도 관여했다. 괴테는 10년간을 일한 후 탈진상태에 이르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 물론 유급휴가 형식이었다. 현재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독일어로는 칼스바트)를 출발한 것이 1786년 9월 3일이다. 37번째 생일날 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빠져나와 역마차로 츠보타라는 역참으로 간 뒤 여정을 시작한다. 여행에는 비서 포겔도 동행한다

괴테는 1788년 4월까지 1년 8개월을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소감을 일기체로 써나갔다. 여행기에는 독일에 있는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형식의 편지글도 포함돼 있다. 제1부는 칼스바트에서 로마까지, 제2부는 나폴리와 시칠리아, 제3부는 두 번째 로마체류기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읽은 것은 1부와 2부를 엮은 『괴테의 그림과 글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1』이다.

레겐스부르크, 뮌헨을 거쳐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 이탈리아의 볼차노, 트렌토를 거쳐 9월 11일 로베레토에 도착한다. 그곳까지는 독일어로 소통하였으나 로베레토에서는 토박이 이탈리아 마부를 만나 현지어를 사용하게 되자 “좋아하는 언어가 생생히 살아나서 이제부터 사용되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라며 즐거워한다. 몇 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괴테는 쾌재를 부른다.

그는 베로나로 곧바로 가지 않고 ‘수려한 경관의’ 가르다 호수를 구경한 뒤 여관에서 묵는다. 방에는 자물쇠가 없고, 창문은 유리가 아닌 기름종이가 발라져 있다. 용변볼 곳 대신 ‘어디든 마음에 드는 곳에서 누십시오.’라고 쓰인 글귀를 보고 낯선 지방에 왔음을 절감했다고 한다.

가르다 호반의 말체시네의 고성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보고는 정탐 활동을 하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오인해 영주를 부른다. 하지만 정작 그는 프랑크프루트에서 태어나 견문을 넓히기 위한 여행자였다. 프랑크프루트에 근무했던 현지인을 불러와 확인하고는 지역 여행을 허락받는다.

베로나에서는 원형극장, 포르타 스투파 문, 원형극장 내의 박물관, 베빌라차 궁 등을 둘러보면서, “여행을 하는 목적은 나 자신을 기만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대상들에 비추어 나를 재발견하자는 것”이라면서 “훌륭한 작품들을 즐기면서 심성을 도약하는 것이 그지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괴테는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해 ‘가난한 삶에도 소리 지르고 노닥거리며, 노래 부르는 등 감정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는 민족의 성정은 존경할만하다’고 말한다. 그는 베로나와 비첸차에서 각각 중산층의 의상과 행동, 건축가 팔라디오가 설계한 올림피코 극장을 관찰한 뒤 “고대의 극장을 작은 규모로 구현해 놓은 것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찬탄한다. 그는 베로나 여행 중 오페라를 관람하고, 식물학자 투라 박사를 만나고, 팔라디오 건축물 책을 펴낸 건축가 스카모차를 찾아가기도 한다. 이는 괴테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사전준비를 철저히 했음을 증명한다.

괴테 아버지는 베네치아 여행 후 곤돌라 모형을 사갖고 온뒤 집에 간직하고 있었는데, 괴테는 베네치아에서 곤돌라가 다가오자 ‘오랜 친구처럼 나를 맞아 주었다’고 적고 있다. 운하와 건축물, 팔라디오의 일 레덴토레 교회, 병기창, 배수로 등을 둘러보고 주민들의 거동과 생활방식, 풍습 등을 살펴보고는 “이 도시를 좀 더 깨끗하게 관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아쉬워한다.

그는 베네치아에서 오페라 관람, 재판방청, 가면극 관람, 연극(비극, 번역극)관람, 미사 참관, 곤돌라에서 노래 듣기를 시도하고 ‘만족스럽지 않다’ ‘자연스런 연기’ ‘아주 재미있었다’ ‘몰취미하고 지루했다’ ‘파도소리에 뒤섞여 듣기는 좋지 않았으나 노래 속에 담긴 뜻은 인간적이고 진실하다’는 등의 느낌도 남겼다. 또 피사니 모레타 궁, 산 마르코 교회, 파르세티 건물에서 그림이나 천정화, 조각품 등을 보고 “고대에 대한 내 지식의 빈곤함이 그저 유감스러울 뿐이다”라고 자탄한다.

괴테는 “지난 몇 년 동안은 마치 병이 든 것 같았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곳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며 이곳에서 지내는 것뿐이었다”면서 로마방문을 오랫동안 갈구해왔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로마에 도착한 날 일기에서 “마침내 나는 이 세계의 수도에 도달했다! 로마로 가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나 강렬했고 순간순간마다 더욱 높아졌기 때문에 잠시도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면서 여러 경유지를 지나쳤다고 밝힌다.

“어디를 가더라도 새로운 세계에서 친숙한 대상과 마주친다. 모든 것이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이고, 또한 모든 것이 새롭다. 나는 이곳에 와서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없고 아주 낮선 것을 발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의 기존 관념이 여기서는 아주 명확해지고 생생하고 유기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며 감격스러워 한다. 또 “로마에 오니 마치 커다란 학교에 온 것 같다. 하루 중에 본 것이 어찌나 많은지 그것에 대해 감히 이야기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라면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이 감탄한 나머지 저녁이 되면 피곤해서 기진맥진한 상태다”라고 한다.

그는 로마에 와 있던 친구인 화가 티슈바인과 함께 광장, 교회, 바티칸 박물관, 시가중심지 로톤도, 성벽, 성당, 신전, 수도원 등에서 건축물 자체뿐 아니라, 프레스코 벽화, 아폴로 상, 라파엘로의 ‘변용’,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등을 보고는 “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 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된다”고 할 정도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세계의 전 역사가 이 도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마는 하나의 세계이며 진정으로 로마를 알려면 적어도 몇 년은 필요할 것이다. 나는 대충보고 훌쩍 떠나버리는 여행객들이 오히려 부러울 지경이다”라고까지 말한다. “근본으로 돌아가서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완전히 다시 배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을 정도로 로마 자체가 ‘학교’였음을 설파한다.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역마차나 배를 이용했으며 일부 구간에서는 마차를 대절해 놓고는 걸어서 이동하기도 하였다. 베수비오 화산을 오를 때 일부 구간은 노새를 타기도 했고, 걷기도 하였다. 당연히 시칠리아 섬 탐방은 선박을 이용하였다.

구에르치노의 고향인 첸토에서는 ‘부활한 예수’, ‘성모마리아’, 볼로냐에서는 라파엘로의 ‘성 세실리아’ 등을 감상하고는 “예술이란 삶과 같은 것이다. 즉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넓어지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하늘에서는 수없이 많은 새로운 별들이 계속 나타나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하면서, ‘좋아하고 싶으면서도 미칠 지경이 된다’고 한다.

아시시의 미네르바 사원을 탐방하는 도중 무장 괴한이 밀수꾼으로 의심하고 제지하자, 외국인 건축가로 답사 여행을 왔다고 하여 풀려나면서 팁을 주자 예쁜 여자를 추천해주겠다는 제안도 받는다. 빌린 마차가 기다리고 있는 행선지인 폴리뇨까지는 ‘지금까지 걸어 온 길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산책길’이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들만큼 무사태평인데, 생각을 많이 해서 빨리 늙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태도이다. 향락적인 생활을 일삼는 그들은 기나긴 겨울밤을 지낼 양식을 비축하는데 소홀히 하기 때문에 일 년 중 상당 기간을 개처럼 고통받고 지낸다”며 국민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괴테는 “아무 준비도 없이 혼자서 이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를 실감한다. 화폐도 서로 다르고 마차와 물가, 형편없는 여관 따위는 하루도 빠짐없이 겪게 되는 애로사항”이라며 “나의 유일한 소망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나라를 한 번 둘러보는 것이다”고 말한다

괴테는 로마에서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화폐학연구자 뮌터 박사, 『안톤 라이저』와 『영국 여행기』 의 저자 모리츠도 만난다. 또 여행 중에도 『에피게니에』원고를 탈고하며, 우편시스템을 이용해 원고가 잘 도착했음을 확인하는 답신을 받기도 한다.

“나폴리를 보고 죽으라”는 말이 있듯이, ‘나폴리는 천국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도취된 듯한 자기 망각 속에 살고 있다’고 할 정도다. 괴테는 나폴리 거리에서 어릿광대를 보고, 그곳에서 독일화가 크나프를 만나 동행하면서 스케치를 그려 받기로 한다. 괴테는 베수비오화산을 보기위해 세 차례에 걸쳐 산에 올라, 무시무시한 증기를 통과하여 분화구 가까이 접근하고, 용암이 분출하는 광경은 보진 못하나 굳어지는 표층 위를 밟아보기도 한다. 그는 “나폴리 사람들은 먹는 일 자체를 즐길 뿐 아니라, 팔려고 내놓은 상품을 곱게 단장하는 일도 즐긴다”고 평한다.

우편 여객선으로 시칠리아 섬 팔레르모로 건너가 예배 장소로 사용되는 동굴, 해안, 지진이 발생해 폐허가 된 시가지 메시나 도시 등을 둘러보고, 총독의 초대를 받고 식사를 하는 등 체류하다가 프랑스 선박으로 나폴리로 귀환한다. 도중에 카프리 섬 근처에서 해류에 휩쓸려 침몰 직전에 빠져나온다. 시칠리아 여행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괴테는 18세기 후반 독일에서 시칠리아까지의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주로 역마차를 이용하고, 우편을 이용하여 독일과 연락을 주고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국경을 넘어 여행이 가능하고 우편이 가능했던 것은 그 전부터 교류가 있었고, 여행 행로에 걸쳐있는 바이마르, 오스트리아, 베네치아. 로마, 시칠리아 등 여러 나라(공화국) 사이에 협조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국경을 넘을 때의 출입국절차뿐 아니라 각 지역에서 사용되는 돈, 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업무, 여행 중 시비가 있었을 때의 문제해결 등과 관련한 얘기도 언급했다. 또 괴테의 여행경로에는 독일어, 이탈리아어가 통용되는 지역이다. 두 나라 언어가 가능한 괴테는 문제해결이 가능했으나 언어가 불가능할 경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괴테의 경우에는 본인이 여행의 편의를 위해 스스로 독일의 유명작가, 바이마르의 고관임을 밝히지 않고 일반여행자로 여행했다. 하지만 일반인 여행자들은 불한당이 나타나거나, 관리들이 시비를 걸어오는 경우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사소한 시빗거리와 관련한 현지 조치에 대한 기록을 보아도, 이탈리아는 어느 곳이나 ‘국제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일어권인 바이마르 고관으로 여러 공화국을 여행하여 금전 부족 문제는 없었을지 모르나, 많은 지역을 장기간 여행하면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경비를 공급받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는다. 여행기에서는 환전문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모두 현지화로 지불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당시의 조선은 어떠했을까? 조선과 청나라, 조선과 일본 사이의 여행은 어떠했을까? 유럽 여행기를 읽으면서 조선의 인접 국가와의 여행책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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