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우리 경쟁상대는 댄스연습실, 공연장, 놀이동산“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우리 경쟁상대는 댄스연습실, 공연장, 놀이동산“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5.2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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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타분한 엄숙주의가 지배하던 도서관 시대는 지났다
-드라이브스루로 책 보내고, 빅 데이터 분석 통한 이용자 맞춤 서비스
-독자가 도서관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전자 책과 종이 책의 차이? 오른손도 쓰고, 왼손도 쓰는 이치
[사진= 안경선 PD]

■ 시리즈 기사 연재 순서
“우리는 책에서 답을 찾는 미래 도서관이다”
그들이 있기에 국립중앙도서관이 존재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국립중앙도서관의 변화는 너무 빠르다. 하루가 무섭게 새로움이 쏟아져나온다. 국보급 서적 허준의 『동의보감』을 뉴미디어 기술로 실감나게 재현하기 무섭게 이번에는 로봇 사서의 안내로 가상 현실 공간을 내놓았다. 온통 미래이다.

고리타분한 이미지로 가득했던 국립중앙도서관이 스마트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 셈이다. 언택트 시대에 도서관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사서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것일까. 지식범람 시대 국립중앙도서관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것인가. 궁금증 투성이었다.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을 찾았다. 그는 국내 최초의 개방형 국립도서관장이다. 3년 임기중 1년 9개월을 지냈으니 절반을 돈 셈이다. 재임 기간 중 국립중앙도서관의 모습은 상전벽해였다. 서 관장은 취임전부터 “도서관이 숨죽여 책만 들여다보는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도서관이 선도적으로 나서야한다”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제기한 바 있다.

-취임 1년 9개월이 지났다. 코로나로 힘겨웠을 것 같다.

“2020년 코로나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도서관 직원들과 어떻게 도서관을 운영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미래 전략 TF와 포스트코로나 TF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언택트 시대의 비전과 목표, 전략 등을 수립했다. 조직개편의 시도도 있었는데 미래의 새로운 기술들을 도서관 운영에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는 ‘미래 공방’이라는 실험실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정부조직이라는 게 바뀐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잖나. 우리는 안을 만들어 놓았지만 확정은 되지 않아 일단 임시 조직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요즘 독서 동아리를 하나 하고 있는데 인공지능에 관한 책, 시대를 앞서갔던 여성들의 아젠다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얼마 전 ‘세계 책의 날’ 행사에서 실감서재가 화제가 됐다. 서 관장이 온 뒤 도서관의 분위기가 변해가는 느낌이다. 과거 조용한 이미지를 벗어나 역동적인 모습의 도서관으로 탈바꿈해가고 있는데, 이런 변화를 기획한 이유는 무엇인가.

“도서관이 사회와 같이 성장하는 사회기관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다양한 목적을 지닌 도서관이 많이 있기 때문에 쉽게 정의 내리기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고대의 도서관과 지금 도서관의 모습이 다르듯, 미래의 모습은 또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자와 어떤 정보를 담고 있는 매체 사이에 이 둘을 연결해주려는 도서관의 역할은 달라질 수 없다. 결국은 이용자도, 정보 매체도 모두 변하니 우리도 이에 대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도서관은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변화의 양상을 신속하게 따라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사진= 안경선 PD]

-본인이 원하는 도서관의 모습과 실제 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공공도서관의 모습이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나 혼자 공부하는 방이라는 개념을 가진 분들도 여전히 계시지만 많이 줄었다. 도서관의 모습은 확실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하루아침에 변화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점진적으로 바뀌어 가는데 최근에 많이 바뀌어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까지 바뀌어야할 점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이 있었다. 어떤 지자체에서 일방적으로 특정 책을 선정하고 독후감을 공모하는 형태가 아니라 도서관 이용자들이 책 후보를 추천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토론하는 과정을 거친다. 예컨대 요즘 미세먼지 문제 등 생활에서 접하는 환경 이슈들이 많다. 그러면 환경 문제 관련해서 좋은 책들을 추천하고 해결책까지 같이 논의해 캠페인이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직접 해결방안을 실천해보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독자들이 도서관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참여 민주주의가 올바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 센터로서의 도서관 모델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도서관의 형태가 아닐까 싶다.”

-도서관이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만큼 사서의 역할은 막중하다.

“사서 채용 시험에도 변화가 있었다. 필기 시험 과목을 개편하고 심층 면접 전형을 강화했다. 필기시험에서는 정보학과 도서관 경영 과목을 새로 추가했다. 도서관 운영 전반에서 사서의 리더십, 기획, 예산 등의 일들을 포괄하는 것이다. 필기 시험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한계도 분명히 있어서 심층 면접을 강화했다. 지식만이 아니라 실제 도서관이라는 환경 속에서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과 종합적인 사고 능력이 중요하다. 공무원들이 승진할 때마다 역량평가 시험을 보는데 종합적인 심층면접과 상황 해결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한다.”

[사진= 안경선 PD]

-보통 사서라고 하면 책 출납 관리와 서고정리를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 일들은 조만간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래 도서관 전시를 보면 로봇 사서가 등장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사서가 하는 일을 좁게만 본다면 조만간 사서 직업이 없어질 수도 있겠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사서 업무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진짜 사서의 일은 이용자들이 수많은 책들 중에서 좋은 책들을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주고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주제를 설정해주는 것이다. 단순히 책에 관한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는 좋은 사서가 되기 힘들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독서 환경이 많이 달라졌는데 취임 당시 갖고있던 생각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으로 인해 도서관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환경이 됐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미래 도서관의 모습, 즉 ‘언택트(Untact)’ 서비스가 더 빠르게 촉진된 측면이 있다. 코로나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도서관이 서비스할 수 있는 방안들을 만들어 해왔다고 자부한다. 예를 들어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관외 대출은 하지 않지만 시민들이 공공도서관에 오기 힘드니 ‘택배’나 ‘드라이브 스루’로 책을 받아볼 수 있게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이는 사서들이 수동적으로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인 게 아니고 창의적으로 서비스를 개발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굳이 도서관에 오지 않더라도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통해 학술 저널 원문 제공과 전자책 서비스 확대 등 비대면 서비스는 원래부터 하나의 트렌드였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것을 조금 더 촉진한 느낌이 없지 않다.”

-도서관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도서관이 시장 바닥처럼 왁자지껄할 필요는 없지만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허용하지 않는 식으로 가는 건 아니라고 본다. 도서관에 오는 이용자들이 다양한데 획일적으로 통일하는 건 곤란하다. 우리나라 도서관은 엄숙주의 문화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런 도서관이 많은데 ‘도서관에서 게임 관련된 책을 보면 안 된다’든가 하는 곳도 있다. 예전에 미국의 어느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도서관 한 켠에 있는 트렘펄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더라. 도서관 어린이실의 인테리어가 놀이동산 수준이었다. 다른 어떤 도서관에서는 게임을 빌려준다. 중앙도서관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도서관 어린이실에 들어갔더니 가장 눈에 띄는 게 게임기였다. 깜짝 놀랐다. 물론 해외 사례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요즘 우리나라 도서관도 바뀌고 있다. 댄스 연습실이 있는 도서관, 스탠딩 음악 공연장이 있는 도서관, 작곡 공간이 있는 도서관 등 우리도 많이 바뀌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도서관은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내 열람만 가능한 전자책의 관외 열람도 가능해지면서 법적 논쟁이 이슈가 됐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도서관협회출판계 일각에서는 도서관 공공대출권 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관외 대출을 하지 않는 국립중앙도서관은 공식적인 입장은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우리는 출판계, 도서관계, 유통계가 함께 논의하는 협의체를 준비 중이었다.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협의를 통해 공통적으로 만족할만한 해결책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협의체를 만들어서 이제 막 가동을 하려던 차에 이슈가 생겨 잠깐 멈췄다. 중앙도서관은 얼마든지 협의체를 조직하고 운영할 의향이 있다.”

[사진= 안경선 PD]

-미래 도서관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갈까.

“개인화 서비스는 계속 발전하리라 본다. 방금 전한 것처럼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발전해가는 한 축이 있다면, 개인 맞춤형 서비스의 발전은 또 다른 하나의 축이다. 예전에는 도서관이 이용자들이 원하는 책 출납 관리만 했다면 지금은 선제적으로 이용자들에게 미리 책을 추천해주고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용자들에 대한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게 됐다. 이용자들의 예상되는 수요를 미리 맞추어서 그에 해당되는 정보들을 도서관이 미리 패키징 해놓는 '큐레이션' 서비스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의달 이벤트가 있다고 하면 가족의 의미라든가 변화하는 가족에 대해서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해 세부적인 카테고리를 만들어 그에 맞게 패키지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이용자들의 관심에 맞게 미리 사전에 준비해 놓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한 맞춤형 추천이 개인의 확증편향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사서의 업무는 알고리즘이 알려준 정보를 맹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균형을 갖출 수 있게끔 돕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입맛에 맞는 관심사를 제공해주고, 사서가 그것을 바탕삼아 균형있게 소비할 수 있는 패키지 이벤트를 만든다. 예를 들어 가족의 파편화와 변형 가족에 대한 소식이 화제가 된다고 하면, 가족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있겠고 또 급진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겠다. 생각의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는데 이용자들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니라 골고루 균형 잡게 하는 게 목적이다. 도서관 서비스 이용자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돕고 나아가 토론을 통해 사고가 편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사서의 존재는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본다.”

-이제 영상 시대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종이 책’을 소비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내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인지 과학자인 메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라는 책을 인용하고 싶다. 그 책이 이 질문에 대해서 명확하게 대답해준다고 생각한다. 뇌과학, 아동심리학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지만 난독증 환자에 대한 연구에서도 탁월함을 보인다. 저자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터넷이라든가 전자매체가 워낙 발전하면서 어린이들만 책을 읽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었고 뇌가 어느 정도 발달해 있는 사람도 책을 읽지 않고 전자기기만 계속 보게 된다면 뇌가 변한다. 소위 말하는 ’깊이 읽기‘라는 능력이 퇴화된다는 것이다. 눈으로 글을 읽을 수는 있으나 텍스트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사유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수용만 한다. 전자책 같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도 단편적으로 지식을 빨리 얻을 수는 있으나 깊이 읽기를 위해서는 종이책을 읽는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매체는 접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양손잡이 읽기를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하는데 우리가 오른손도 쓰고 왼손도 쓰는 것처럼 단편적인 지식을 빨리 습득하는 데에는 디지털 매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뇌과학적인 시각으로 전한다. 이 책을 사서나 교사, 부모들에게 꼭 읽어야될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임기가 1년 3개월 남았다. 남은 과제는 뭔가.

“서고 이전 작업이 일단 급선무다. 현재 평창 국가문헌보존관 건립에 대한 국제설계 공모가 진행 중이다. 서고가 완성되도 공간이 많이 남는다. 중앙도서관뿐만 아니라 다른 도서관들과 공무원들, 대학 교수들이 머리를 맞대 어떻게 하면 남는 공간을 활용해 서비스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려 한다. 그 다음으로는 디지털 서비스 3개년 계획(2021~2023)을 준비하고 있다. 신기술을 토대로 차세대 도서관 서비스를 연구 개발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중앙도서관 이용자들이 쉽고 효율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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