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모순
아름다운 모순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1.05.2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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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없는 강물 위에 다리를 놓겠다는 언약이나 다름없었다.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 약속을 믿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인간관계에서 중시해온 게 신의(信義)여서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약속을 할 수 있다는 점 아니던가. 짐승은 무리지어 광야를 질주하다가도 동종끼리조차 종전의 사이좋았던 관계의 약속을 외면한다. 먹잇감 앞에서는 본능인 잔인성을 드러내어 그것을 독차지하려고 서로 물고 뜯는 게 그것이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도덕적 덕목으로써 언행일치를 꼽기도 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 중 판(判)에 해당하는 지혜이기도 하다.

하긴 이 지혜를 스스로 거부하는 게 인간사에 다반사이긴 하다. 인간관계 중 상대방에게 인간적으로 큰 실망을 할 때가 있다. 언행 불일치일 때가 아닐까 싶다. 현대는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세태이기도 하다. 이기심이 팽배하여 무엇이든 자신 본위로 사고하고 행동하잖은가.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말 한마디를 믿고 보름이라는 시일을 기다렸다.

물론 그 안에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매수를 부추기는 전화를 서너 차례 받은 적 있다. 보름 전 그녀의 말을 믿었던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집을 둘러보러 올 때 일 때문이었다. 여덟 살짜리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이를 데리고 와서다. 부부 모두 맞벌이를 한다는 젊은 여인이었다. 자신의 아이가 입학할 초등학교 근처에 우리 집이 있어서 더욱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녀의 이 말에 나 역시 부모로서 공감이 깊었다. 그래 선뜻 다른 매수자에겐 집을 팔지 않겠노라고 철석같은 약속을 한 터이다. 

그녀와 약속을 정한 이 사실을 안 중개인은 그녀 말을 믿을 수 없으니 다른 매수자에게 집을 보여 달라고 간청해 왔다. 중개인의 말은 먼젓번 그녀보다 무려 200만 원의 집값을 더 매겨 당장 계약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섰다고 했다. 그 말에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나는 마음을 굳혔다. 그녀와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한마디로 이를 거절했다.
 
친구들은 물론 가족들조차도 나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단다. 미처 계약금 준비를 못한 탓에 계약금도 안 치룬 그녀였다. 그녀를 기다리는 자체가 어리석다고 했다. 또한 그녀가 제시한 집값보다 무려 200만 원이란 큰 금액을 더 준다는 계약자를 물리치다니, 이런 바보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정작 나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안달이 난 듯하다. 그럼에도 그들의 생각과 달리 구두 언약도 언약이라는 신념엔 변함없었다. 초등학교가 우리 아파트 바로 근접해 있어 그 이유로 집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설명을 했다. 그들은 그 말 앞에서도 나를 모자라는 사람 취급을 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남의 사정을 봐주며 집을 매도하고, 또한 계약금도 안 치룬 사람을 기다리느냐고 힐책하기 바빴다.

이러구러 보름째 되던 날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그녀가 우리 집 계약을 하러 온 것이다. 수년 전 분양 받은 지 2년 밖에 안 된 새 아파트를 매도할 때 일이다. 하지만 지금도 당시 시세보다 200만원 싼 가격에 아파트를 팔았던 일에 조금치도 후회가 없다. 우리 집에 이사하여 그녀의 아들이 안전하게 초등학교를 다니게 돼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세상을 살면서 당면한 일에 직면할 때 눈 저울질이 필요한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지혜로운 마음의 저울이 필요할 때는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어떤 잇속을 안겨주는 사람을 선호한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을 때 관계도 맺기 일쑤다. 물론 인간도 생물학 상, ‘척추동물 문 사족동물 포유강 진포유아강 단자궁족 영장목 진원아목 협비류’라는 용어로 일컫는 동물이다. 그래서일까? 인간의 전쟁도 식량이 부족할 때 일어날 정도라고 하니 우리네가 물질에 현혹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긴 학문도 때론 국가의 이익을 놓고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하잖은가. 특히 수학자의 경우 국가에 많은 이익을 안겨주기도 했다. 어느 내용에 의하면 1941년 나치 독일 침공으로 초토화된 소련의 이야기다. 이때 소련 공군은 민간 항공기를 폭격기로 개조했으나 성능은 기대와 달랐다고 한다. 느린 속도 탓에 폭탄을 목표물에 정확히 맞출 수 없었나보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게 수학자들이었단다. 여기에 스탈린은 마음이 움직인 듯 전후 첨단무기 개발 및 연구에 수학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아끼지 않았고 한다. 이들에게 안정된 직장과 차량, 양식, 아파트 등을 제공한 게 그것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자신에게 주어진 영달엔 계산이 어두웠던 학자가 있었다고 했다. 미국의 유명 대학 교수직 제의도 물리치고 7년간 자신의 고국인 러시아에서 두문불출하며 20세기 수학계 최대 난제의 하나인, ‘푸앵카레 추측’을 100년 만에 풀어내는 업적으로 주목받은 수학자 그리 고리 페렐만이 그다.

그는 이 엄청난 공을 세운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2006년 8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도 최초로 거부한 채 시상식 장에도 안 나타났단다. 이는 세간의 물질적 보상을 수학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신주의에 젖은 탓인지 매사 완벽한 계산만이 손해 보지 않는 삶으로 여기는 우리로선 선뜻 그의 남다른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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