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당신이 다른 사람이 되기만 한다면… 『스페인 여자의 딸』
[책 속 명문장] 당신이 다른 사람이 되기만 한다면… 『스페인 여자의 딸』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1.05.22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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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필요했던 모든 것, 그러니까 사람들, 장소들, 친구들, 기억, 음식, 고요, 평화, 온전한 정신이 모조리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한 이들의 절망과 같은 기세로 체념이 들이닥쳤다. ‘잃다’라는 동사는 동등하게 만드는 동사, 곧 혁명의 아이들이 우리에게 휘두르는 동사가 되어버렸다.<13쪽>

당시에는 아무도 지폐를 원하지 않았다. 지폐는 가치 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뭐든 사려면 큰 돈다발이 필요했다. (…) 기름 한 병을 사려면 1백 볼리바르짜리 지폐로 탑 두 채를, 가끔 치즈 한 덩이라도 사려면 세 채를 쌓아 올려야 했다. 가치 없는 마천루, 그게 국가 화폐였다.<26쪽>

베네수엘라는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변화를 겪었다. 관으로 탑을 쌓아 밧줄로 묶은 채 운송하는 이사 트럭이 보이기 시작했고, 때로는 묶이지도 않은 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원 미상의 시신들이 비닐에 싸여 라페스테로 던져졌다. 살해당한 수백 명의 희생자가 암매장되는 곳이었다. 그것이 바로 혁명의 아버지들이 권력을 잡으려는 첫 시도였다. 동시에 내가 기억하는 사회 불안과 붕괴의 첫 정의이기도 했다.<54쪽>

혁명의 아이들은 원하는 바를 충분히 이루었다. 그들은 선 하나를 그어 우리를 둘로 갈라놓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믿을 만한 자와 의심스러운 자. 비난을 야기함으로써 그들은 이미 분열이 팽배하던 사회에 또 다른 분열을 더했다.<66쪽>

[정리=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 구유 옮김 | 은행나무 펴냄 | 332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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