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채의 북 리뷰] 글쓰기 책이거나 세상 보는 지침서이거나
[박용채의 북 리뷰] 글쓰기 책이거나 세상 보는 지침서이거나
  • 박용채 편집주간
  • 승인 2021.05.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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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기자 아빠 홍재원의 『글 좀 쓰는 십대』

‘공부량을 줄여라.’‘선행학습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대학 입시를 위해 학원 서너 개는 기본이라고 여기는 학부모가 들으면 경을 칠 일이지만 『글 좀 쓰는 십대』(출판사: 주니어태학)의 저자 홍재원은 후퇴할 기색이 전혀 없다. 오히려 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책도 많이 읽으라는 주문은 애초부터 양립 불가능한 구조라며 공부와 독서 중 어느 한쪽을 고르라면 선행학습을 관두는 게 낫다고 말한다.

『글 좀 쓰는 십대』를 관통하는 주제는 ‘잘 읽어야 잘 쓴다‘이다. 저자는 뇌 근육을 죽이는 적들로 지나친 선행학습과 스마트폰을 지목한다. 이쯤 되면 흔한 글쓰기 책이 아니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에 한양대 언론학 석사, 미 조지아대 연수. 경력 20년 신문기자의 ’잘난 체 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김경일 김포대 영상미디어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 “영상매체 증가는 지식성장에 기여하는 독서력을 감퇴시킨다.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지식분배의 영향이 개인과 계층 간 지식격차를 확대한다”<정보격차 해소방안으로서 미디어교육: 독서교육의 관점에서>

이런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저자는 십대들을 위해 십자군 전쟁에 나선 인물로 규정해도 무방할 듯하다. 독서가 인간의 지식수준 향상은 물론 정체성을 확보해주며 정보를 해석하고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게 하는 고도의 지적능력을 획득하는 유효한 수단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당연한 명제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십대들에게 결코 일반화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책은 도발적이다. 글감도 기존 글쓰기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건드린다. 김훈의 『남한산성』을 펼쳐놓고는 주화파와 주전파간의 다름을 객관적으로 써보라고 하고, 베스트셀러 『원더』를 읽고는 가면사회와 일상을,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쥐』를 통해서는 나치 독일과 일제 강점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통해서는 권력의 통치방식을 논하라고 주문한다.

그 뿐인가.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넬로를 가난의 대물림과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연결지어 사회적 과제로 써볼 것을 권하고,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할까』에서는 욕심의 적정선을 묻는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통해 ‘햄릿=우유부단’이라는 고정관념에 의문부호를 던지며, 버넷의 『세라이야기』(소공녀)를 통해 강자와 약자의 먹이사슬 관계, 장편대서사인 『일리아드』를 읽은 뒤에는 부분으로 전체를 만드는 글쓰기 방법을 주문한다.

각 장마다 ‘이렇게 써보면 어떨까’ 라는 난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도와준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독일이 2차대전에서 이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유대인은 지금도 아우슈비츠에 갇혀있거나, 아니면 모두 학살돼 유대인을 한사람도 찾아볼 수 없게 됐을지 모른다. 연합군의 승리는 필연일지 모른다. 전쟁은 인류가 범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잔혹함을 수면 위로 드러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인류 스스로 경각심을 갖게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이나 미국의 대학입시에서 나올 법한 논술들이다. 사실 책은 처음에는 뻑뻑하지만 한두장 읽다보면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는 이 책이 단순히 글쓰기 책이 아닌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주는 지침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마케팅 대상은 십대만이 아니다. 십대를 앞세워 학부모들을 겨냥한 책이라 해도 무방하다. 따지고 보면 십대의 독서는 학부모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쉽지 않다.

때 맞춰 ‘하늘이 내린 천재 수학자’로 평가받는 허준 미 스탠퍼드대 교수가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구단은 초등학교 2학년때 겨우 외웠다. 어릴적 수학문제집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어 알파벳도 느리게 익혔다. 십대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중학교 때 읽은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이 크게 영감을 줬다.”

경계를 넘나드는 무한 상상력을 키워줄 것인가. 아니면 우격다짐으로 학원을 보내 1~2년 빠른 선행학습을 시킬 것인가. 결과는 선택한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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