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의 책 한 모금] 꼰대 중년을 위로하는 『오베라는 남자』
[서믿음의 책 한 모금] 꼰대 중년을 위로하는 『오베라는 남자』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5.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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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오베라는 남자']
[사진=영화 '오베라는 남자']

어느 노인이 컴퓨터 상점에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인다. 어떤 사양을 원하느냐는 직원의 말에 노인은 막무가내로 “좋은 컴퓨터”를 내놓으라고 성화다. 직원이 아이패드를 권하자 노인은 ‘왜 키보드가 없냐. 추가 구성품으로 판매하려는 것 아니냐’며 직원을 닦달한다.

소설 『오베라는 남자』(다산책방)속 까칠한 59세 노인 오베. 그는 자신이 정한 원칙 안에서 한결같은 남자다. 일평생 자명종 없이 매일 6시 15분 눈을 떴고, 늘 정확한 양의 커피를 내려 아내 소냐와 나눠 마셨다. 40여년 전 풍성한 고동색 머리칼과 푸른 눈을 가진 소냐를 마음에 들인 건 그의 인생에 가장 큰 ‘결단’이었다. 그는 소냐의 호감을 사기 위해 매일 “엉뚱한 방향으로 약 한 시간 반 동안 (기차) 여행”을 했고, 의아해하는 소냐에게 자신이 근처 부대에서 군복무 중이라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철도회사에 근무할 당시 도둑 누명을 쓰고도 진범인 동료를 지목하지 않았던 그로서는 대단한 일탈이었다. 그런 아내 소냐가 반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나고, 43년 다닌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면서 오베는 삶의 의욕을 잃고 죽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생과의 이별이 쉽지만은 않다. 죽기로 결단하고 실행에 나설 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이 나타난다. 까탈스럽지만 원칙주의자인 오베로서는 목을 매려는 순간 공구를 빌리러 온 이웃을, 철로에 뛰어들려는 순간 자신보다 먼저 몸을 던진 이웃을 외면하기 어렵다. 생전에 아내가 멋지다고 했던 정장을 입고 방해받지 않는 상태에서의 죽음을 시도하지만, 현실에서는 자꾸 오베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고,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자신이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이웃,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건 오베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일요일 아침, 8시 15분이 지나도록 집 앞 눈이 치워지지 않은 걸 이상하게 여긴 이웃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된 오베. ‘조문객 금지, 시간 낭비 금지’라고 유언했음에도 300명이 넘는 조문객이 몰린 오베의 마지막은 이 땅의 숱한 중년 남성에게 큰 위로를 선사했다. 회사와 가정에 충실하지만, 까탈스러운 성미에 꼰대 취급당하기 일쑤인 중년 남성들에게 오베는 까칠한 성격을 품어주는 자애로운 아내, 가시 속 진심을 알아봐 주는 이웃을 곁에 둔 행복한 사내였기 때문이다. 사실 오베의 자살 시도는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라기보다는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에 기인한 소외감으로부터의 탈피 성격이 강하다. 저자는 “한 남자를 이해했던 유일한 사람(아내 소냐)을 땅에 묻어야 할 때, 그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는 산산조각이 난다. 그런 부상은 치료할 수 없었다”고 부연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녔을 법한 용납의 갈망을 그려내 해당 작품을 창작한 건 스웨덴의 칼럼니스트 프레드릭 배크만이다. 유명 블로거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한 작품이 큰 호응을 얻자 2012년 책으로 출간, 38개 언어권에 수출해 28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인구 900만명의 스웨덴에서만 84만부가 팔렸다. 국민 10명 중 1명이 읽었다는 이야기다. 2016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감동 대작으로 호평받았다. 2016년에는 두 번째 작품인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다산책방)를 출간했는데, 해당 소설 역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동화되지 못하는 소녀가 초능력자 할머니를 통해 용납을 경험한다는 감동 스토리를 전했다. 해당 도서는 출간 당월(2016년 4월)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3위에 오를 정도로 크게 주목받았다.

괴짜, 꼰대, 가까이하기에 불편한 존재일지라도 누구나 서로 다른 진실을 지니며, 일단 그 사람의 깊은 속내를 알고 나면 사람 자체가 이해된다는 가르침을 전하는 소설. 기술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접촉하기 쉬워졌지만, 역설적으로 소외감은 더욱 커진 시대상을 예리하게 꼬집는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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