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당시 미군의 북한 초토화 공습의 진실은
한국전 당시 미군의 북한 초토화 공습의 진실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5.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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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주여성연맹 조사위원들이 보안을 위해 중국 인민복 복장을 하고 신의주 문화회관에서 신의주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도서출판 창비]
국제민주여성연맹 조사위원들이 보안을 위해 중국 인민복 복장을 하고 신의주 문화회관에서 신의주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도서출판 창비]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학살극으로 우리는 흔히 충북 영동군의 ‘노근리 사건’을 떠올린다. 현지 주민들의 증언, 언론의 집요한 취재 등으로 미 정부는 마침내 민간학살을 공식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전 당시 미군의 민간인학살은 노근리 뿐 아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전 직후 미군은 전북 이리(현 익산), 충북 단양 등 여러 곳에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자행했다. 인천상륙작전 직전에도 미 공군은 민간인에 대한 보호조치나 대피 경고 없이 무차별적인 포격 등을 통해 월미도를 비롯한 인천지역에서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초래했다.

어디 남한뿐인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된 자료들에 따르면 한국전 당시 미군이 당초의 전술폭격에서 전략폭격으로 바꾼 뒤 신의주를 비롯해 평양, 원산 등 도심지역에 대규모 공습을 벌여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전략폭격은 전선의 후방에 있는 도시지역의 상업지구 주거지역까지 융단폭격을 실시해 전쟁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1950년 11월 8일의 신의주 공습이다. 신의주를 향한 미군의 공중폭격에는 폭격기 수십대가 동원돼 공습이 이뤄졌다. 1951년 1월 4일 조선민주여성동맹은 「전세계 녀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총 3,017호에 달하는 공공건물 중 2,100호가 파괴되었다. 또 1만1,000호 이상의 일반 주택중 6,800호가 파괴되었다. 5,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살해되었는데, 그중 4,000명 이상이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며 북한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주목해줄 것을 간청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국제민주여성연맹(국제여맹)의 조사위원 21명이 북한으로 향했다. 변호사, 교수, 정치가, 언론인, 공기업 대표 등 이른바 ‘엘리트 여성’ 조사위원들은 10일간 신의주와 평양, 안악과 원산 지역 등에서 포격, 고문, 생매장, 성폭력 피해 등을 조사했고, 그 결과물을 「우리는 고발한다」라는 보고서로 발간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미국에 비판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소련의 정치선전물로 폄하돼 반세기 이상 객관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이상 지나면서 네덜란드 역사학자 프란시스카 더한, 자드위가 E. 피퍼 무니, 엘리자베스 암스트롱, 캐서린 매그리거 등 서구 학계를 중심으로 국제여맹을 재평가하는 연구성과를 잇따라 발표했다.

김태우 한국외대 한국학과 교수가 최근 발간한 『냉전의 마녀들』(창비)은 이런 국제여맹의 움직임을 자세히 조망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본인은 당초 국제여맹의 조사 결과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저자는 그 까닭으로 “황해도 신천과 안악 등의 지역에서 발생한 집단학살사건의 핵심 가해 세력 중 하나가 현지 출신의 우익치안대였지만 국제여맹의 보고서는 그 모든 책임을 미국에 전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미국이 북한의 인구밀집지역을 목표로 ‘초토화 (폭격) 정책’을 펼쳤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달아 발표되고, “국제여맹이 소련이나 국제공산당의 꼭두각시가 아니었다”는 입장을 뒷받침하는 학계 연구 발표가 나오면서 저자는 선입견을 걷어내고 객관적 검증에 나서게 됐다.

검증은 국제여맹의 보고서와 미 공군의 기록, 조사위원들이 남긴 기록 등을 토대로 이뤄졌다. 특히 조사위원들의 북한 방문 이후 행적에 서술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본국 귀환 후 보고서로 인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입장을 번복하지 않은 사실에 주목한다. 소련·중국·동독·체코슬로바키아 등 공산국가 대표를 제외하고, 위원회 과반(12명)을 차지한 유럽 출신이 굳이 북한을 옹호할 이유가 없음에도 북한에서 벌어진 참상을 전하는 데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 조사위원 모니카 펠턴은 귀국 후 반역죄 혐의로 직업을 잃고 법정에까지 불려가야 했다. 국제여맹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이유로 영국 정치인들과 언론으로부터 반역자로 비난받으면서 스티버니지 개발공사 총재직에서 해임됨은 물론 반역죄 명목으로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조사내용을 부인하면 간단하게 피할 수 있는 고초였으나 펠턴은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1956년 인도의 항구도시 마드라스로 이주해 1970년 현지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63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한국전쟁 보고서의 내용을 단 한 번도 부정하지 않았다.” 조사위원들이 북한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전쟁이 언제 끝날까요”라는 질문이었다. 당시 누구도 명쾌한 답변을 할 수 없었으나, 그 누구도 이렇게까지 오랜 기간 전쟁이 지속될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1953년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70년 가까이가 흘렀다. 우리는 북한군의 공격으로 남한에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것만 기억한다. 하지만 미군의 초토화작전으로 북한에서도 민간인 사망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전쟁에서 교전에 따른 살상은 불가피하겠지만 민간인 희생은 최소화해야 한다. 국제여맹 조사위원들이 조사한 끔찍한 전쟁의 참상은 우리에게 남한도 북한도 아닌 한반도는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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